학교는 제법 넓었지만, 내가 주로 가는 곳은 도서관 4층이었다. 문학서가 있는 층이었고 소설을 읽으러 갈 때뿐만 아니라 공부를 할 때도 갔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서고와 서고 사이를 따라 가장 안쪽 창가로 들어서면 그곳에는 작은 책상 4개가 나란히 놓였고 거의 항상 비어 있었다. 4층에 올라오자마자 대형 탁자가 여러 개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구석까지 들어와서 책을 읽을 생각은 하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그나마 구석 자리가 마음에 들어 비는 시간이면 4층의 끝을 자주 찾았다.
나는 창가 곁에 홀로 앉아 강의 내용을 공책에 정리한 후에, 손 가는대로 뽑아온 소설책을 읽기 시작했다. 한참 읽고 있는데 어디선가 걸음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주변을 두리번대다가 다시 책에 집중했다. 옆에서 인기척이 났다. 구석 자리에 누군가 찾아왔다. 혼자서 구석 자리를 누릴 수 있어 좋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아쉬운 마음이 들면서 글이 잘 읽히지 않았다. 나는 가볍게 헛기침을 하고 다시 글에 집중했다. 그때 누군가 내 옆에서 속삭이듯 말했다.
“안녕하세요. 또 뵙네요.” 나는 놀라 고개를 돌렸다. 그녀였다. 축제 첫날 우산을 함께 쓴 그녀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무슨 책 읽으세요?”
나는 책을 덮고 그녀에게 제목을 보였다. 그녀는 흥미로운 듯 가만히 살펴보다가 말을 이었다.
“사 층에 자주 오시는 것 같은데, 책 읽으러 오는 건가 봐요. 왔다 갔다 하다가 몇 번 뵀거든요.” 우리는 어색하게 서로 눈을 마주쳤다. “혹시 과제 하셨어요?”
그녀는 내 앞에 종이 하나를 내어 보였다. 자세히 보니 과제 유인물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녀는 조용히 말을 이었다. “너무 어려워서요. 지금 시간 괜찮으시면,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요.”
나는 책가방과 짐을 외진 책상에 두고 일어났다. 우리는 도서관 1층 휴게 공간으로 내려가 자리를 잡고 마주 앉았다. 어색했다. 나는 재준이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얻은 성공적인 대화 주제를 더 자세히 물어볼 걸 그랬다고 잠시 후회했다.
그녀가 말했다. “같은 수학과인 건 아시죠?”
“네, 근데 이름을 몰라요.”
“맞네요. 저는 박인영이에요.”
박인영. 전공 기초 과목 일 등이었다.
“저는 한영수라고 해요.” 우리 사이로 잠시 정적이 흘렀다.
먼저 정적을 깬 건 인영이었다. “이번 과제 어렵지 않았어요?” 그녀는 가방에서 노란색 연습장을 꺼냈다. 수식이 길게 적혀 있었다. 그녀는 손가락으로 수식의 한 부분을 짚으며 말을 이었다. “저는 여기까지 했어요.”
과제는 특수한 형태의 삼차방정식의 근의 공식을 유도하는 과정이었다. 그녀는 나에게 풀이를 설명했다. 그녀의 말씨는 조곤조곤하고 성실했다. 나는 인영의 설명을 따라 수식을 확인했다. 뒤이어 충분히 시간을 들여 증명하기 시작했다. 단번에 모든 과정을 알려줄 수는 없었다. 일방적인 전달 방식은 상대방에게 큰 결례였다. 상대가 직접 고민하며 익혀야 할 경험을 앗아가는 일이었다. 인영도 자신에게 어려운 그 지점을 정확히 짚고 나의 설명을 들었다. 설명이 지나치지 않도록 막아 세우기도 했다. 수식 한 줄을 내려갈 때마다 나는 인영에게 고민할 시간을 주었고, 풀이 방향이 알맞은지 함께 검토했다. 우리는 함께 마지막 줄에 다다랐다. 그녀는 수식의 맨 마지막 줄 오른쪽 끝에 손톱 크기만 한 정사각형을 그리더니 펜으로 그 속을 시커멓게 칠했다. 교수가 나누어진 유인물에서도 증명의 마지막 줄 끝에 등장했던 기호였기 때문에 나는 호기심이 들어 물었다.
“이 기호는 무슨 뜻이에요? 맨 마지막에 그린 검은색 네모 상자.”
“자세한 건 모르지만, 증명이 끝났다는 뜻이래요. 사실 어려운 명제를 증명하고 붙여야 이 기호도 그럴 듯한데, 이런 문제를 풀고 붙이는 건 좀 초라하기는 하죠.”
“그런 뜻은 아니었어요. 그냥 궁금해서 물어봤어요.”
인영은 어색하게 웃더니 펜을 내려놓고 말했다. “책 읽는 거 좋아하시나 봐요.”
“혼자 있는 게 편해서요. 그러다 보니 책도 읽게 되더라고요. 사실 도서관 왔다 갔다 하면서 저도 몇 번 뵀어요.”
“맞아요. 저도 자주 오는 편이에요.”
“요즘 읽는 책 있어요?”
인영은 가방에서 두꺼운 책 하나를 꺼내 보였다. 제목은 [유리알 유희]였다.
“읽어본 적 있어요?”
“아니요. 제목도 처음 보는데요.”
“헤르만 헤세 선생님이 썼어요.”
“헤르만 헤세. 그 분이 쓴 다른 책은 읽어 봤어요. [데미안]이요.”
“진짜요?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는요? 아주 예전에는 [지와 사랑]이라는 제목으로 나왔다는데.”
“아니요. 그것도 안 읽어 봤어요. 정말 책 많이 읽나 봐요?”
“저는 헤르만 헤세 선생님이 쓴 책이 왠지 모르게 다 좋아요. 읽었던 책도 몇 번이나 또 읽어요.”
“왜 좋아요?”
“그냥 뭔가 정신과 관련된 내용인 것 같아서요. 읽기 어렵지만 읽을 때마다 새로운 게 보이는 것 같고,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걸 깨닫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요. 가끔은 원래 내가 말하고 싶었던 건데 언어능력이 부족해서 말하지 못했던 어떤 부분을 대신 써놓았다는 생각도 들고요. 음…….” 인영은 눈을 굴렸다. “계속 생각해보니까 제가 좋아하는 이유는, 말하기 어려운 걸 그가 말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보이지 않는 걸 말하려 하기 때문에 어려울 수밖에 없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러니까 그 책을 좋아하는 이유는 어렵기 때문이라는 건가요?”
“맞아요. 어렵기 때문에. 사실 수학도 그렇잖아요. 수학도 어렵기 때문에 계속 좋아할 수 있다고 해야 할까요?”
“어렵다는 게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이유가 될 수 있다고는 생각 안 해봤어요.”
“저도 그래요. 지금 처음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수학이 어려운 만큼 수학을 할 때는 적어도 불안하지 않은 것 같아요.” 인영은 잠시 생각에 잠긴 듯했다, 나는 그녀를 기다렸다. 인영은 대화를 잇지 않고 내게 질문했다. “무슨 책 좋아해요?”
“저는, 글쎄요. 좋아하는 작가가 있지는 않아요. 그냥 여기저기서 본 책들 보고, 서가에 꽂힌 책 중에 괜찮아 보이는 책을 적당히 집어서 봐요. 중간까지만 읽고 끝까지 보지 않을 때도 있고요. 혹시 읽고 좋은 책 있으면 가끔 추천해줘요. 시간 되면 저도 읽어 볼게요.”
“좋아요. 좋은 책 있으면 서로 알려주기로 해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집에 책 많아요?”
“꽤 많죠? 다른 취미는 없어도 책을 사 모으는 걸 좋아했거든요. 지금은 자취를 하고 있어서 별로 없지만요. 영수,” 인영은 잠시 눈을 굴리고 다시 나를 보았다. “영수, 는요?”
호명이 너무도 어색했다. 인영도 어색해하는 눈치였다. 나는 빠르게 대답했다.
“저는 없어요.”
“없어요? 하나도?”
“네. 하나도 없어요. 자주는 아니지만, 꼭 읽고 싶은 책이 있으면 도서관에서 대출해서 보거든요. 그래서 방에는 책이 하나도 없어요.”
“특이하네요. 혹시 읽고 싶은 책 있으면 얘기해요. 저한테 있으면 빌려줄게요.”
“고마워요.”
“아니요, 제가 고맙죠. 과제 도와준 것도 고맙고, 생각지도 못하게 같은 과에서 책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을 알게 된 것도 고맙고요.”
“다음에 저도 문제 풀다가 모르는 거 있으면 물어볼게요.”
“좋아요. 언제든지.”
우리 사이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인영은 눈웃음을 짓고는 가방을 쌌다.
“다시 올라가실 거죠?”
“네. 책도 위에 있고.”
인영은 손인사를 했다. “저는 이만 갈게요. 다음에 봐요. 오늘 고마웠어요.”
“저도 저번에 우산 고마웠어요.”
인영은 도서관 로비로 나갔다.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시 4층으로 올라갔다. 나는 읽던 책을 반납하고 [데미안]을 대출했다.
그 이후로 강의실에서 인영을 마주치면 가볍게 눈인사 정도를 나눴다. 그리고 강의가 모두 끝나면 약속이라도 한 듯이 우리는 4층 창가 자리에 만났다. 서로 나란히 앉아 소설을 읽거나 공부를 했다. 서로를 그다지 의식하지는 않았다. 오롯이 자기 할 일을 했다. 집에 같이 돌아가는 날도 드물었다. 보통은 인영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고, 우리는 조용히 인사를 했다. 그리고 다음 날, 강의가 모두 끝나면 다시 도서관 4층 가장 구석 자리에서 만났다. 물론 인영과 이런저런 대화도 했다. 저녁때가 되면 같이 식사하기도 했고, 쉬는 시간에는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기도 했다. 서로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알고 지낸지 오래된 친구를 만나는 것처럼 편안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휴대폰 번호를 주고받았어도 따로 연락을 하지는 않았다. 그저 도서관 가장 깊숙한 그곳에서 우리는 약속한 듯 매일 만났고, 당연한 듯 서로의 곁에 머물렀다.
금세 기말고사 기간이 가까워왔고, 인영과 나는 함께 시험공부를 했다. 같이 도서관에 있다가 학생식당에서 저녁을 먹은 후였다. 커피를 사들고 도서관으로 들어가는 길에 인영이 말했다.
“혹시 필즈상이라고 들어봤어요?”
“필즈상? 처음 들어요.”
“수학계에 노벨상 같은 거예요. 당연한 얘기지만, 이 상을 받기가 엄청 힘들대요.”
“감도 안 잡혀요. 어느 정도로 대단한 걸 증명해야 받는 건지.”
“저도 잘 모르겠는데, 아, 그거 알죠?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그건 알죠. 페르마가 종이의 여백이 충분하지 못해서 증명을 쓰지 못한다고 남겼다는…….”
“맞아요. 그 문제는 희한한 게, 보통 난제는 문제 자체를 이해하는데도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데, 그 문제는 고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이해하기 쉽다는 거예요. 아무튼, 그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증명한 수학자가 필즈 특별상을 받았어요.”
“특별상?”
“원래 필즈상은 마흔 살 미만의 수학자들만 받을 수 있거든요. 페르마 마지막 정리를 증명한 사람은 아쉽게도 이미 마흔이 넘은 상태였고요, 그래도 그 업적이 대단하잖아요. 몇 백 년 동안 아무도 풀지 못한 걸 푼 거니까.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증명하기 위해서 육 년인가, 아무튼 아주 오랫동안 그 문제를 붙잡고 있었던 거예요. 그런 거 보면 수학자나 소설가나 비슷한 것 같지 않아요? 아무도 모르게 책상에 앉아서 무언가를 계속 쓰고 있는 것부터, 사실은 그게 어디에도 닿지 못 할지도 모른다는 것까지요. 소설의 퇴고는 끝이 나지 않을 수도 있고, 명제는 증명되지 못할 수도 있잖아요.”
“수학을 진짜 좋아하나 봐요. 그런 것도 다 알고 있고.”
“저는 수학이 정말 좋아요. 아니, 사랑해요. 고등학교 때 했던 수학이랑은 다르지만, 저는 지금 수학이 더 마음에 들어요.”
“그렇게 말할 수 있다니, 좀 이상한 사람 같네요.”
“아마도 좀 그렇죠? 수학이 안 좋아요?”
“저도 뭐, 수학이 꽤 좋아요. 다른 좋아하는 게 그다지 없어서 그런 것도 같지만요.”
“그것도 좋아하는 거 맞잖아요.”
“그렇죠. 근데 좀 찝찝해서요. 딱 하나를 정해서 마음에 드는 게 아니라, 마음에 드는 게 없다보니까 마지못해 정한 것 같아서요. 그래서 언젠가 뭔가 엄청 좋아할만한 게 튀어나올 것 같은 거예요. 그러면 내가 좀 바보 같잖아요. 지금까지 수학을 좋아했다고 생각했다는 게.”
“그럼 그것도 같이 좋아하면 되죠. 책이든, 공부든, 놀이든, 사람이든, 좋아하는 게 있다는 건 그 자체로 좋은 거예요.”
“혹시 수학 말고 또 좋아하는 거 있어요?”
“책이랑. 음……” 인영은 잠시 고민했다. “가족.”
“가족?”
“너무 소중한 사람들이라.” 나는 선뜻 동의할 수 없어 말없이 고개를 위아래로 흔들었다. 인영이 말했다. “무슨 생각해요?”
“아니, 아무것도.”
“이제 그만 들어갈까요?”
우리는 도서관으로 들어갔고, 인영은 곧 자리를 떠났다. 인영이 떠나고 나면 나는 혼자가 되었다. 구석 자리까지 들어오는 사람도 없었기 때문에 편했다. 늦은 밤, 구석 자리에서 내가 주로 하는 일은 공부는커녕 작은 창으로 밖을 내다보는 일이었다. 길 위로 사람들이 지났고, 가로등이 불을 밝히고 있었다. 주변의 건물들을 구경하기도 했다. 밝은 빛이 새어나오는 정사각형의 창문이 많았다. 해 저문 학교에서만 할 수 있는 은밀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