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행선의 교점 # 15

by 청화

기말고사 마지막 시험을 마치고 재준과 함께 건물을 나섰다. 따가운 햇볕이 내리쬈고, 날은 벌써부터 후끈했다. 우리는 가로수가 우거진 길로 방향을 잡아 걸었다. 중간고사가 끝난 날처럼 오늘도 재준과 술을 마셔야 하는 건지 고민했는데, 이른 시간에 시험이 끝난 탓에 음주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다행히도 재준에게는 다른 일정이 있었다. 방학에도 착실히 자신의 계획을 진행해 나갈 것이라며 이번 방학에는 반드시 여자 친구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곧장 오늘부터 착수할 예정이었다. 저녁에 바로 약속이 있다고 했다. 재준의 그 식지 않는 열정이 한편으로는 대단하다고 느꼈다. 나는 반드시 해낼 수 있다며 진심으로 응원했다. 재준은 방학에 연락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후문으로 향했다. 나는 괜히 아쉬운 마음도 들어 재준과 후문까지 동행했다.


나는 재준을 보내고 잠시 그늘 아래 걸음을 멈춰 서서 주변을 두리번댔다. 많은 학생들이 어디론가 바삐 걸어갔다. 누군가는 학교로 들어오고, 누군가는 나갔다. 누군가는 혼자였고, 다른 누군가는 친구들과 함께였다. 아직 네 시를 넘지 않은 때. 이미 방학이었고 더 이상 학교에 볼일도 없었지만, 집에 바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적당히 시간을 죽이다가 학생식당에서 밥을 먹고 퇴근 시간을 피해 늦게 집으로 돌아갈 심산이었다.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좋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도서관이 가장 먼저 생각났지만, 시험도 끝난 마당에 도서관에는 들어가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교정을 마냥 돌아다녔고, 열기에 지치면 흡연시설이 붙어 있지 않은 벤치를 골라 한참을 앉아 있기도 했다. 지나는 사람을 구경했다. 심심찮게 시험이 망했다는 학생들의 말소리가 들려왔고, 그 일이 그다지 중요하게 들리지는 않았다. 시험이 망했다고 하는 학생들의 표정도 심각하지는 않았고, 오히려 즐거워 보이기까지 했다. 나는 시험기간 특별메뉴로 알차게 구성된 한식세트를 먹었다. 보쌈과 상추가 알뜰히 담겨 나왔다. 나는 식사를 마치고 인적이 드문 단과대 화장실에서 양치를 하고, 다시 교정을 걷기 시작했다. 하늘은 어느새 어두워졌고, 가로등의 불빛이 번졌다. 나는 그 아래를 오랫동안 쏘다니다가 지하철로 향했다.


퇴근 시간이 지난 후라 사람은 많지 않았다. 앉아서 갈 수는 없었지만, 모르는 사람을 품에 안고 가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지하철이 출발하자 창밖은 검은색으로 변했다. 그 위로 비친 나의 모습은 힘이 없어 보였다. 나는 일부러 어깨를 펴고 가방을 고쳐 멨다. 나의 의지와는 별개로 방학은 이미 시작됐고, 내일은 학교에 가지 않는 날이었다. 방학에 하고 싶은 건 없었다. 오히려 걱정이 앞섰다. 오랜 시간 동안 집에 있을 생각에 벌써부터 유쾌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방학에도 1시간이 넘도록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학교에 온다는 것도 심히 귀찮은 일이었다. 나는 집 주변에 갈만한 장소를 궁리했다. 각각의 장소가 기억나지는 않았고, 오르막길과 언덕이 한 덩어리처럼 떠오르더니 머릿속을 가득 메우는 것처럼 먹먹한 기분이 들었다. 몸 상태가 안 좋은 것 같았다. 시험을 대비한다고 무리를 했는지도 몰랐다. 나는 앉고 싶었지만 자리가 나지는 않았다.


지하철 안으로 경쾌한 클래식 곡이 울리며 환승역에 도착했다.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사람들과 나는 내렸고, 지하철을 갈아탔다. 고작 몇 개월 만에 집과 학교를 다니는 길을 몸이 모두 외우고 있었다. 아무 생각을 하지 않아도 몸은 지하철을 탔고, 때가 되면 내렸다. 지하철은 나를 대신하여 열심히 선로 위를 달렸다.


전철에서 내려 출구로 나갔다. 거리는 가게의 간판과 가로등으로 밝았다. 그 아래에서 얼굴이 새하얀 두 여자가 누군가를 붙잡고 말을 거는 중이었다. 나는 발걸음을 서둘러 옮겨 그들을 지나쳤다. 대로를 벗어나 골목으로 들었다. 길바닥 위에는 방금 새로 덧칠한 것처럼 하얀 화살표와 글자가 쓰여 있었다. 가로등의 불빛이 등 뒤에서 비췄다. 검은 그림자는 화살표 곁에 길게 드리웠다. 나는 흰색 글자로 쓰인 ‘일방통행’을 밟으며 골목으로 들어갔다. 마침 휴대폰이 한 차례 진동했다.


인영 | 방학 잘 보내요. 혹시 학교 오면 연락해요.

영수 | 연락 할게요. 방학 잘 보내요.


나는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언덕을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