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있는 시간이 힘들지는 않았다. 집으로 아버지가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 나를 힘들게 했다. 불쑥 아버지가 찾아온다면 감당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차라리 집에 아무도 없다면 아버지가 왔다가 그대로 돌아가리라는 기대가 일었다. 나는 부리나케 동네 주변의 도서관을 검색했다. 예상 외로 가까운 곳에 도서관 하나가 있었다. 언덕을 반대로 넘어가는 내리막길 중간쯤이었다. 안내사항으로는 아주 작은 도서관이었고, 운영시간도 길지 않았다. 상당히 외진 곳이어서 사람이 없을 것 같았고, 어쩌면 이미 도서관이 사라졌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는 그 도서관이 아직 남아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다행히도 도서관은 운영되고 있었다. 오륙층쯤 되는 빌라 사이에 자리한 도서관이었다. 도서관은 단층짜리 건물이었고 큼지막한 창문이 나 있었다. 외관은 꽤나 세련되었고, 앞에는 자판기와 국기 게양대도 있었다. 도서관에 들자 의자에 앉은 사서 한 명이 힐긋 나를 쳐다보고는 다시 눈을 내리고 자기 할 일을 했다. 내부는 역시 모든 곳이 한눈에 들 정도로 규모가 작았다. 대학 도서관처럼 외따로이 떨어진 자리는 없었다. 입구 쪽에는 6인용 책상 3개가 일렬로 붙어 있었고, 자리는 그게 전부였다. 책도 많지는 않았고, 신간도 별로 없었다. 누리끼리하게 낡은 책도 많았다. 어떤 쾌쾌한 향도 여기저기서 올라오는 듯했다.
나는 집을 비워두기 위해서라도 날마다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었지만, 한 권을 완전히 읽는 경우는 드물었다. 날마다 새로운 책을 집어 읽을 때가 더 많았다. 내가 읽는 책은 자주 바뀌어도 도서관을 오가는 사람은 거의 바뀌지 않았다. 며칠 지나지 않아 나처럼 동네 도서관을 매일 찾는 사람들이 눈에 들었다.
나보다 항상 먼저 도서관에 앉아 있는 할아버지는 입구와 가장 가까운 의자에만 앉았는데, 한동안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그의 옆으로 지팡이 하나가 책상에 기대어 있어서, 아마 거동이 불편하기 때문에 그럴 거라고 짐작했다. 노인은 언제나 골몰히 책을 읽었고 가래침이 잔뜩 섞인 숨소리를 내었다. 숨을 쉴 때마다 목 끝에서 무언가 들끓는 소리가 들렸는데, 일부러 내는 것은 아닌 듯했다. 그 소리를 듣고 있으면 내 목까지 간지러워 헛기침이 나오기도 했다.
어느 날은 도서관 안으로 휴대폰 벨소리가 커다랗게 울렸다. 아무래도 노인의 것인 듯했다. 모든 이의 이목이 노인에게 집중된 후에야 그는 천천히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소리는 더 커졌다. 노인은 물끄러미 휴대폰의 화면을 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허리가 구부정했다. 항상 앉아만 있던 노인이 기립한 모습은 어색했다. 노인은 왼손에는 휴대폰을, 오른손에는 지팡이를 들고 걷기 시작했다. 노인의 걸음은 느렸다. 걷는다기보다 발을 반발자국씩 번갈아가며 바닥에 끄는 수준이었다. 벨소리는 그칠 줄 모르고 계속 울렸다. 도서관 사서는 그 모습을 보고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다시 자기 할 일을 했다.
벨소리는 노인의 걸음을 재촉하듯 끊이지 않았고, 노인은 힘든 걸음을 계속해서 옮겼다. 노인이 드디어 문 앞에 도착해서 손잡이를 당기자 휴대폰 벨소리가 뚝 끊겼다. 노인은 휴대폰 화면을 확인하더니, 나갈 때와 같은 속도로 다시 돌아오기 시작했다. 반발자국씩 다리를 끌 듯 앞으로 전진 했다. 아주 천천히, 이번에는 정적 속에서, 한참을 걸려 제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나는 그 모습을 모두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무릎이 뻐근했지만, 노인이 제자리에 앉는 모습까지 모두 지켜보고 숨을 길게 내쉬었다. 내가 돌아와 다시 책을 몇 줄 읽지 않았을 때, 다시 조금 전과 똑같은 벨소리가 우렁차게 울렸다. 노인은 다시 지팡이를 들고 문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나는 노인의 느린 걸음을 끝까지 지켜보았다.
도서관을 매일 찾는 사람은 노인만이 아니었다. 그 중 한 명은 학교 도서관 열람실에서 살고 있던 삼촌뻘의 사람들과 흡사한 몰골이었다. 비슷한 운동복을 입었고 슬리퍼를 신었다. 그는 도서관에 나보다 먼저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그는 항상 입구 앞에서 두 번째 책상을 독차지했기 때문에 나는 가장 안쪽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삼촌은 무슨 자격증 시험이나 고시를 준비하는 모양이었다. 노트북으로 인터넷강의를 매일 들었다. 내용은 알 수 없었지만, 수학만큼이나 어려워 보였다. 나는 그의 공부에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 나름 행동거지를 조심히 했지만, 삼촌이 자주 한숨을 쉬는 탓에 종종 그를 눈에 담았다.
그는 매일같이 이어폰을 끼고 강의를 듣는 것 같았는데 자세히 살펴볼수록 강의를 듣는다기보다 TV를 틀어놓고 시청하는 것 같았다. 초점 흐린 눈이 그 사실을 확실하게 나타내고 있었다. 강의를 보며 필기도 하지 않았고, 오랜 시간을 팔짱을 낀 채로 있었다. 때때로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는 것처럼 가냘픈 콧소리를 내며 어깨를 연신 들썩이기도 했는데, 그 이유를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팔짱을 낀 지 1시간 정도가 지나면 그는 반드시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한동안 들어오지 않았다. 화장실에 다녀오다가 그를 우연히 보았는데,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도서관 앞을 서성이고 있었다. 시간이 한참이나 지났는데도 삼촌은 들어오지 않았다. 그의 자리에는 노트북과 공책이 그대로 놓여 있었다. 나는 다시 화장실에 다녀오면서 삼촌의 행적을 살폈다. 그는 여전히 종이컵을 들고 도서관 앞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에게는 시간이 흐르지 않는 것 같았다. 천천히 걷다가 종종 자판기 커피를 홀짝였다. 종이컵의 커피도 줄지 않는 듯했다. 삼촌은 인터넷강의를 시청한 시간만큼 밖에 있다가 도서관에 들어왔다. 담배를 피우고 왔는지 삼촌의 곁을 지나가기만 해도 쓰고 역한 냄새가 났다.
사서처럼 도서관을 출근하듯 오는 나머지 한 사람은 중년의 여자였다. 그 사람은 나보다 늦게 도서관에 도착했고, 가지고 있는 짐이 많았다. 몸통만한 가방을 멨고, 양 손에도 커다란 가방을 서너 개씩 들고 다녔다. 그는 항상 도서관에 도착하자마자 컴퓨터 자리에 앉았다. 도서관 가장 안쪽에는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 컴퓨터가 두 대 있었는데, 그마저도 하나는 고장이었기 때문에 중년의 자리는 지정석이나 다름이 없었다. 중년의 여자는 컴퓨터로 도대체 무얼 하는 건지 한시도 쉬지 않고 중얼중얼 대면서 키보드를 두드렸다. 가끔은 짧은 쌍욕을 내지르기도 했다. 나는 그때마다 그녀를 쳐다보았는데, 사서와 할아버지 그리고 삼촌까지 아무도 그녀에게 눈길을 보내지 않았다. 나만 그녀의 욕을 들었는지 착각까지 들었다. 빠른 타자 소리와 욕이 주기적으로 반복됐다. 급기야 나는 궁금한 마음에 일부러 책을 고르는 척, 컴퓨터 자리 앞을 지났다. 그녀는 타자연습을 하고 있었다. 책의 내용을 옮기는 것도 아니었고, 중요한 내용을 정리하는 것도 아니었다. 컴퓨터에 설치된 기본 타자연습 프로그램으로 긴 글을 따라 쓰고 있었다. 그는 글의 내용을 입으로 빠르게 말하면서 타자를 치는 것이었다. 타자 속도는 상당히 빨랐지만, 실수를 하면 그녀는 욕을 내뱉었다. 하지만 아무도 그를 제지하지는 않았다. 모두가 그녀를 내버려뒀다.
유일한 도서관 사서는 입구 앞 책상에 앉아 컴퓨터 모니터만을 바라볼 뿐, 별 다른 일을 하지 않았다. 종종 반납한 책을 제자리에 꽂았고, 점심시간이 되면 카운터 위에 ‘식사 중’이라는 빨간색 문구가 적힌 안내판을 올려놓고 밖으로 나갔다. 1시간쯤 지나면 다시 나타나서 머그잔에 커피를 타서 홀짝였다. 사서의 머리는 짧게 올린 스포츠 머리였고, 옷은 후드 티나 단색 맨투맨을 입었다. 젊은 그가 어떤 이유로 작은 도서관의 사서로 일하고 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나는 매일 같이 도서관에서 그들을 보았지만, 어느 누구도 서로에게 인사를 하거나 아는 체하지 않았다. 매일 서로를 처음 본 사람처럼, 그리고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것을 했다. 그 사람들 이외에는 간혹 한두 사람이 도서관에 오갔고, 보통 책을 골라 대출을 할 뿐 도서관에 오래 남아 있지는 않았다.
나의 하루는 되풀이됐고 방학도 보름쯤 지났다. 새벽에 어김없이 어머니의 식사 소리와 기도를 들으며 잠에서 깼고, 다시 잠에 들었다. 늦은 오전에 몸을 일으켜 김밥을 먹고 동네 도서관으로 향했다. 도서관으로 들어가자 정적이 흘렀고, 주기적으로 그르렁대는 노인의 숨소리가 들렸다. 사서는 같은 또래로 보이는 사람의 신규 회원가입을 돕고 있었다. 나는 종이가 누렇게 바랜 책을 집어 가장 안 쪽 자리에 앉았다. 두 번째 책상 위에 노트북은 덩그러니 놓여 있었고, 어쩐 일인지 삼촌은 하나 남은 컴퓨터 자리에 앉아 있었다. 나는 매일 앉은 자리에 앉아 책을 읽어 내려갔다. 읽어도 내용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읽은 문단을 몇 번이나 다시 돌아와 읽어도 머리에 남지 않았다. 나는 거듭 시도했다. 그 시도를 도서관에 있는 어느 누구도 알지 못할 것이었다. 그런 생각에 이르자 각자가 하는 일도 나의 시도와 비슷한 일인 것 같았고, 거듭 시도해도 해결이 되지 않는 어떤 일을 모두가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잠시 후 중년의 여자가 무거운 짐을 한가득 들고 나타났다. 망설이지 않고 컴퓨터 자리로 직행했다. 이미 삼촌이 앉아 있었다. 여자는 멀뚱히 서서 삼촌을 내려다보더니 대뜸 소리를 질렀다.
“얼른 나와요!”
이번에는 모두가 그녀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삼촌이 말했다. “네?”
“나오라고요!”
“저 아직 쓰고 있어요.”
“노트북 있잖아요! 그거 쓰면 되지, 왜 이걸 써요?”
“갑자기 노트북이 먹통이라 그래요. 근데 왜 이렇게 소리를 질러요?”
“나 못 쓰게 일부러 그러는 거죠!”
“그런 거 아니에요. 제가 왜……. 아니, 그리고 이 컴퓨터는 공용이에요. 누구나 쓸 수 있다고요. 아줌마만 쓸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내 자리라고요! 내 자리!”
“별 꼴을 다보겠네, 진짜. 조금만 기다려요. 거의 다 했어요.”
“지금 당장 나와요. 얼른 나와요. 얼른!”
“좀 기다리세요.”
다시 정적이 흘렀다. 노인은 소란 속에서도 다시 책을 읽었고, 사서는 슬쩍 삼촌과 여자의 모습을 보면서 회원가입 절차를 마무리했다. 회원가입을 마친 사람은 책도 빌리지 않고 곧장 도서관을 나갔다. 사서는 아무렇지 않게 카운터에 앉았다. 짐을 든 여자가 갑자기 사서에게 다가갔다.
“저기요!”
“네. 무슨 일이시죠?”
“왜 안 고치는 거예요!”
“자세히 말씀해주시겠어요?”
“컴퓨터 자리, 하나 고장 난 거 언제 고쳐요!”
“수리 의뢰를 한 상태입니다.”
“지금 당장 고쳐요!”
“저는 고칠 줄 모릅니다.”
“도대체 고장 난 지가 언젠데!”
“죄송하게도 지금은 도움을 드릴 수가 없네요.”
“다른 사람이 계속 앉아 있잖아요! 나 컴퓨터 써야 하는데!”
“저 자리는 누구나 쓸 수 있습니다. 잠시 기다렸다가 저 분이 쓰고 난 후에 사용하세요.”
“저 사람이 계속 쓰면 못 쓰잖아요!”
사서는 깊은 한숨을 내쉬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삼촌에게 다가갔고, 중년은 짐을 가득 들고 낑낑대며 사서를 뒤따라갔다. 사서가 다가가자 삼촌이 고개를 돌렸다.
“뒤에 이용하고 싶은 분이 계셔서 너무 길게 이용하는 건 삼가주세요.”
삼촌은 깎듯이 대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사서는 무표정으로 몸을 돌려 자리로 돌아왔다.
중년은 물끄러미 삼촌을 내려다보았다. 타자를 치다가 실수를 한 것처럼 외쳤다.
“시발!”
그녀는 도서관을 뛰쳐나갔다. 다시 정적이 흘렀다.
다음날부터 그녀는 도서관에 오지 않는 것 같았다. 적어도 내가 도서관에 있는 동안은 볼 수 없었다. 타자 소리와 쌍욕은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도서관 안으로 노인의 가래 섞인 숨소리와 삼촌의 코웃음만이 간혹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