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 도서관은 닫혀 있었다. 나는 유리창 가까이 눈을 붙여 안쪽 이곳저곳을 훑어보았다. 책상과 의자, 서고와 책. 모든 사물들이 어둠 속에서 고요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노인과 삼촌, 그리고 중년의 여성이 없는 도서관은 낯설었다. 멍하니 건물 앞 벤치에 앉아 휴대폰으로 날을 확인했다. 일요일이었다. 습관이 되었는지 나도 모르게 도서관을 찾은 것이었다. 나는 잠에서 덜 깬 듯 얼떨떨한 채로 잠깐 앉아 있다가 괜히 언덕 중턱을 배회했다. 그다지 갈 곳이 없어서 결국 집으로 돌아왔다.
어머니가 교회에서 돌아온 모양인지 현관에 어머니의 신발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낡은 운동화를 발견하자마자 나는 절로 멈칫했다. 가슴이 크게 오를 때까지 숨을 한껏 들이켰다. 빠른 걸음으로 들어가면서 거실을 힐긋 보았다. 역시 아버지가 거실에 누워 있었다. 잠깐 어머니와 눈이 마주쳤지만 우리는 동시에 눈을 피했다. 나는 곧장 방으로 들어 문을 잠그고는 어떤 소리도 밖으로 새어나가지 못하도록 거동을 조심했다. 밖에서는 요란한 청소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과연 어머니가 어디를 청소할지 모르겠지만, 꽤나 오랜 시간 동안 시끄러울 것이었다. 나는 조용히 불을 끈 후, 이불을 깔고 누웠다. 아주 깊은 잠에 들고 싶었지만, 아무리 편한 자세로 누워도 잠은 오지 않았다. 나는 뜬 눈으로 몸을 뒤척이다가 하늘을 보고 누웠다. 살짝 열어 놓은 창문으로 햇볕이 들어 벽과 천정에 세로로 긴 흔적을 남겼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눈을 감았다. 잠이 오기는커녕 감각이 더욱 곤두섰다.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로 어머니와 아버지의 행동을 유추했다. 유추하고 싶지 않아도 저절로 되는 일이었다. 아버지는 여전히 누워 있는 것 같았다. 어머니는 냉장고를 열었고 무언가를 꺼내기 시작했다. 창밖으로 개 짖는 소리가 거듭 울리다가 다시 조용해졌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느닷없이 누군가가 나를 깨웠다. 소름이 바짝 돋았다.
“한영수!”
아버지의 목소리였다. 나는 눈을 뜨고 몸을 일으켜 자리에 앉아 숨을 죽였다.
“내 아들 어디 있어!”
‘도대체 내가 얼마나 더…….’
나는 나의 오랜 질문을 속으로 잘근잘근 곱씹었다.
“아빠가 왔는데, 잘 다녀오셨어요, 인사해야지! 응?”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냥 잠이나 자! 술 좀 작작 마시고!”
“이놈의 여편네가! 남편이 술 좀 먹을 수 있지 뭐, 응?” 그리고 다시 외쳤다. “영수야!” 지체할 수 없었다. 나는 잠긴 문고리를 돌리고 거실로 나갔다. 아버지가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아들! 여기 앉아 봐.”
아버지는 술기운으로 가득했다. 그의 눈은 흐리터분해서 정말로 나를 보고 말하는 건지, 아무한테나 내키는 대로 아들이라 부르는 건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내가 그의 말을 따르자, 아버지는 붉은 얼굴 위로 너그럽고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내 뺨을 툭툭 쳤다.
“아들, 아빠는 아들이 너무 보고 싶었다. 응?”
다시 그에게 나의 몸을 내었고, 아버지는 나의 목덜미를 잡아 자신에게로 끌었다. 술 냄새와 정체를 알 수 없는 역한 냄새가 올랐다. 점차 그의 얼굴이 나에게로 다가왔다. 얼굴을 비비려는 것 같았다. 나는 반사적으로 얼굴을 뒤로 뺐다. 순간 아버지의 눈빛이 달라졌다.
“영수 엄마! 애를 어떻게 키운 거야? 아빠가 집에 왔는데.” 어머니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듯 냉장고 안을 닦고 닦았다. “영수 엄마!”
나는 후회했다. 아버지의 성미를 건드리고 말았다. 그 탓에 주의가 예상치 못하게 어머니에게로 흐른 것이었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의 손길대로 나를 내맡겨야만 하는 것이었다. 나는 아버지 앞에서 살짝 고개를 숙이고 방바닥을 응시했다.
아버지가 소리쳤다. “내 말이 말 같지가 않아? 내 말이 말 같지가 않냐고!”
그의 표적을 내게로 돌려야 했다. 나는 숨을 고르고 입을 뗐다. 나도 모르게 언성을 높여 말했다. “이제 그만 좀 하세요!”
나는 얼어붙었고, 아버지는 내게로 시선을 돌렸다. 눈알도 얼굴처럼 붉게 올랐다. 그의 오른손이 올랐다가 나의 얼굴로 날아들었다. 나는 옆으로 쓰러졌다. 얼얼했다. 어머니가 급히 다가와 나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영수야? 영수야, 괜찮아?” 어머니가 소리를 질렀다. “그만 좀 해! 정말로!”
아버지는 미친 사람처럼 히죽거리다가 다시 드러누웠다. 아마 술을 깨고 나면 어떤 것도 기억하지 못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나의 기억과 감각은 생생했다. 얼굴과 목덜미에 통증이 강하게 올랐다. 오랜만이었다. 고등학생 때부터는 아버지가 손찌검을 하지 않았는데, 단지 그건 우연이었다. 그가 변한 것이 아니었다. 그대로였다. 다시 나를 때렸다. 고작 얼굴을 뒤로 뺐기 때문에 나를 쳤다. 반사 작용이 화근이었다. 저항이 잘못이었다.
어머니가 물었다. “영수야?”
산 재물을 바치는 시간은 아버지의 수면으로 끝이 났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이 정도면 큰 재앙 없이 잘 넘긴 것 같았다. 나는 어머니를 보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들었다. 재빠르게 웃옷을 걸쳤다. 현관에서 신발을 신을 때, 어머니가 외쳤다.
“어디 가려고!”
나는 답 없이 집을 나와 버렸다.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우선은 걷고 싶었다. 밖으로 나와도 머리가 뜨거웠고, 하늘은 불그스름했다. 나는 곧장 언덕을 내려갔다. 끝까지 내려가도 갈 곳이 없어 언덕과 평지의 경계를 따라 배회했다. 쓸데없이 길 중앙에 올라와 있는 돌멩이들을 발로 툭툭 차면서 주변을 걸었다. 나는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다가 재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참이 지나도 받지 않았다. 고민하다가 인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짧은 침묵이 흘렀고, 인영의 걱정스런 목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 있어요?”
“어떻게 알았어요? 무슨 일 있는지.”
“목소리도 그렇고. 전화하는 건 처음이잖아요.” 나는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무슨 일인지 물어봐도 돼요?”
나는 잠시 망설이다 입을 뗐다. “지금 학교예요?”
“네. 도서관.”
“그럼 지금 학교 가면 만날 수 있어요?”
“네? 아, 네.”
“그럼 지금 학교로 갈게요. 도착해서 연락할게요. 한 시간 정도 걸릴 거예요.”
“갑작스럽기는 하지만, 알았어요. 도착해서 연락해요.”
전화를 끊고 큰길로 나가자마자 얼굴이 하얀 두 여자를 발견했다. 그들은 멍한 눈빛으로 길을 거닐고 있었다. 내가 인도에 오르자 두 여자는 서로 무엇이라 얘기를 나누더니 내게로 다가오는 듯했다. 착각이기를 바라며 모른 척 시선을 피했다. 나는 재빨리 그 길을 통과하려 했지만, 그들은 멀리서부터 나를 주시하더니 곧장 내게로 다가왔다. 키 차이가 두드러지는 두 여자가 나를 막아 세웠다. 키 큰 여자는 또 다시 내게 대학생인지 물었고, 지난번과 똑같은 질문을 했다. 취하는 표정과 행동까지 완전히 똑같았다. 두 여자 중에 어느 한 명도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듯했다. 나는 바쁘다는 핑계를 대면서 걸음을 재촉했다. 그들은 아쉽다며 나를 한 번 더 붙잡았지만, 나는 고개를 숙이고 서둘러 그들에게서 빠져나와 역으로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