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행선의 교점 # 23

by 청화

우리는 자리를 옮기기로 했다. 그녀가 밥값은 따로 내자고 했지만, 재준의 충고대로 내가 계산했다. 하늘은 흐렸지만 때마침 비는 거의 오지 않아 우리는 우산을 접고 걸었다. 또 다시 그녀가 묵묵히 앞장섰고, 어떤 골목으로 빠르게 들어가더니 금세 작은 카페 앞에 섰다. 사람은 주인 이외에는 없었다. 우리는 따뜻한 아메리카노 두 잔을 시키고 자리에 앉았다.


“여기 분위기 괜찮지?”


나는 카페 내부를 둘러보았다. 벽도 하얗고, 액자도 하얗고, 탁자도 하얗고, 의자도 하얬다. 하얀 색이 아닌 사물을 찾기 힘들었다. 가장 희지 않은 것은 우리와 우리의 우산이었다. 빨간색 우산은 빈 의자에 나란히 걸려 있었는데, 하얀 카페 안에서 유독 눈에 띄었다. 시선이 카페를 한 바퀴 돌아 그녀에게로 돌아왔을 때, 그녀는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자꾸 왜 그렇게 봐?”


“네가 돌아봤을 때, 너의 뒤를 봤어. 뒤통수나 뒷목 그리고 귀도.” 그녀는 자신의 귓불 뒤를 손가락으로 누르며 말을 이었다. “이런 데 말이야.”


“거기를 왜?”


“너는 살면서 한 번도 직접 본 적 없을 거 아니야.” 나는 수빈의 말을 이해할 수 없어 뒷말을 기다렸다. “여기도 신체의 일부인데, 우리는 죽을 때까지 직접 그곳을 볼 수는 없어. 귀 뒤뿐만 아니라 신체에 여러 부위가 그렇잖아. 눈썹이라거나, 눈 주위도 거울이 없으면 절대로 볼 수가 없잖아.”


“그런 데를 봐서 뭐해?”


“너에 대해 알아가는 거지. 그것도 너의 일부이지만 너는 잘 모르잖아. 중요한 건 너보다 내가 더 많이 아는 너의 어떤 부분이 생긴다는 거야. 나는 이제 너보다 너의 귀 뒤에 대해서는 더 잘 알아.”


“나의 뒤가 어때?”


“음……, 뭐랄까. 여리고 귀여워. 무뚝뚝한 표정이랑은 다르게.”


“그 부위는 누구나 다 그래.”


“아니야. 다 그렇지는 않아. 나는 꽤 많은 사람들의 뒤를 봤어. 내가 확실히 말할 수 있는데, 전부 그렇지는 않아.”


“너 주변에서 이상하다는 얘기 안 들어?”


그녀는 유쾌한 미소를 지었다. “많이 들어. 나 이상한 애 맞아.”


나도 모르게 그녀를 따라 미소를 지었다. “그건 또, 왜 이렇게 쉽게 인정해.”


“나는 보통 사람이 아니니까. 인정할 건 인정하는 거야. 인정할 수밖에 없는 걸 인정하지 않으려고 애쓰면 힘들기만 하거든. 너는 어때? 너도 이상한 사람이야?”


“나? 글쎄. 잘 모르겠어.”


“뭐야 그것도 몰라. 네가 생각할 때는 어때?”


“보통 사람인 것 같기도 하고, 이상한 사람 같기도 하고.”


“너, 머릿속이 복잡하구나?”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주문한 음료가 나왔고, 나는 아메리카노를 가지고 자리로 돌아왔다. 하얀색 머그잔에 검은색 아메리카노가 가득 담겨 있었다. 그 위로 하얀 김이 모락모락 올랐다. 그녀는 코를 컵 위에 바짝 대고 향을 맡았다.


“커피 향 좋다.” 그녀는 잔을 들어 수면을 몇 번 불어 마시고는 말을 이었다. “우리 진실게임하자.”


나는 당황한 기색을 감추며 머그잔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우리 이름도 모르잖아.”


“서로에 대해서 빨리 알아가도록 하는 거야.”


그녀는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일이 관심의 표현이 아니라 마치 서로에 대한 의무인 듯했다.


“무슨 진실게임?”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 한 가지씩 말하기.”


“한 가지?”


“그래. 내가 방금 묻는 순간에 떠오른 거, 그거. 절대로 다른 걸로 바꾸면 안 돼. 알았지? 방금 머릿속에 바로 떠오른 그걸 말해야 해. 약속이야.” 내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자 곧바로 말을 붙였다. “너부터 해.”


수빈이 나를 똑바로 쳐다보는 바람에 슬쩍 시선을 피하다가 빨간 우산에 눈길이 닿았다. 나는 망설였다. 오늘 처음 본 이름도 나이도 모르는 사람에게 나의 과거에 대해서 말을 꺼낸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크나큰 도전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쉽게 속내를 끄집어내기도 했고, 다소 심각한 이야기마저 아무렇지 않게 다루었다. 나는 신기하게도 그런 이야기를 마음에 들어 했다. 인영의 충고가 떠오르기도 했다. 때로는 힘들다고 말해야 한다는 것. 내가 가진 문제를 꺼내보는 것. 그런 생각들이 나를 순간 어디론가 이끄는 듯했다. 나는 다시 빨간색 우산을 눈에 담다가 머그잔을 들어 커피를 후후 불어 마셨다. 뜨거운 아메리카노가 목구멍을 타고 흘렀다. 따끔거렸다.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 얘기는 풍선이 터진 일이야.”


“거짓말. 가장 처음 떠오른 기억을 말하기로 했잖아.”


“거짓말 아니야. 진짜로 그게 가장 기억에 남아. 어쩌면 그게 기억의 끝이라는 느낌도 들어.”


“기억의 끝?” 그녀의 눈빛이 사뭇 진지해졌다.


“너랑 내가 나이대가 비슷하다면 우리는 어렸을 때 IMF를 겪었잖아. 기억해? 음, IMF가 터지고 나서 집이 말 그대로 풍비박산이 났어. 그 전에는 아파트에서 살았는데, 갑자기 단칸방으로 이사를 간 거야. 옆집에는 주인이 살고 있고, 화장실도 밖에 있는데다가 푸세식이고, 그런 데 말이야.”


“나도 IMF때 부모님이 힘들어 했던 기억이 나.”


“아마 그때 대부분 그랬겠지? 나한테는 기억이 아니라 체험이야.”


“더 말해 줄 수 있어?”


“그때 우리 집이 얼마나 가난했냐면, 집에 먹을 게 하나도 없는 거야, 돈도 없고. 그래서 아버지가 돈 벌러 나가신 어느 날이었어. 그날도 우리는 굶고 있었거든. 너무 배고픈데, 너무 배고파서 배고프다고 말도 못하겠는 거지. 그때 어머니가 장롱을 열어서 옷을 다 꺼내시는 거야. 단칸방 안으로 옷이 쌓여갔어. 나는 가만히 앉아서 그 모습을 지켜봤어. 솔직히 그때 무서웠어. 어린 내가 봐도 어머니가 무슨 미친 사람 같았으니까. 그런데 갑자기 어머니는 옷 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했어. 여름옷 겨울옷 할 것 없이 다 꺼내서. 주머니에서 조금씩 동전이랑 가끔 지폐도 나오기 시작했고, 알고 보니 그걸 모으려는 거였어. 어머니는 그 돈을 들고 집 앞에 슈퍼에 가서 미역을 사왔어. 그리고 빨래 삶는 아주 큰 통에다가 미역국을 잔뜩 끓이는 거야. 며칠을 그걸로 버텼어. 밥도 없었어. 간도 안 맞고.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어. 배는 불릴 수 있었으니까.”


그녀는 나의 눈을 꿰뚫듯 바라보았다. “그럼 풍선은 무슨 이야기야?”


나는 의자에 걸린 우리의 우산을 물끄러미 응시하다가 입을 뗐다. “그때 내가 아마 초등학생이었을 거야. 방학이 됐는데, 어머니랑 나는 그 좁은 단칸방에만 있었어. 아버지는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일하러 나가셔서 매일 바쁘셨고. 근데 어느 날 부모님이 모두 시간을 내서 나를 데리고 놀이동산에 갔어. 부모님이 갑자기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는데, 어린 나는 내심 너무 신났지. 내색은 하지 않았던 것 같지만 말이야. 이것저것 놀이기구를 타고 그랬던 것 같아. 주변에 신기한 장난감도 많아서 다 가지고 싶었는데, 아무리 어려도 대충 집안 사정은 알잖아. 사달라고 조르지는 못했고, 그 앞에서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어. 당연히 부모님은 내 마음을 아셨겠지. 미안해하면서 돈이 없다고 때마다 나를 돌려 세우셨어. 그래서 내가 놀이동산에서 유일하게 골라서 산 게 빨간색 풍선이었어. 그거 있잖아. 길고 하얀 막대 끝에 빨간색 풍선이 달린 거.” 그녀는 나와 눈을 맞추며 말없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걸 한 손에 들고 집으로 돌아왔어. 풍선이 너무 소중하니까 돌아오는 내내 한 손에 꼭 붙잡고 집에 왔어. 녹슨 대문을 열고, 작은 마당을 지나서, 주인집 바로 옆에 셋방으로 들어가. 가로등 빛도 들지 않는 담벼락 쪽에 어둑한 길로 들어가는 거야. 아버지는 먼저 들어가서 문을 열고, 나는 뒤에서 기다렸지. 문이 열리고 나는 단칸방으로 들어가는 거야. 근데 풍선이 거친 벽면에 닿아 쓸리면서 터져버렸어. 팡, 하고 터진 거지. 나는 그 소리에 너무 놀라서 몸이 얼어붙었어. 옆으로 빨간색 고무 조각이 바닥으로 떨어지고 내 손에는 하얀색 막대만 남아 있는 거야. 놀이동산에 놀러갔다가 내가 유일하게 골라서 산 건데.”


“어떡해…….”


“기억을 더듬다 보면 결국에는 이 기억에서 멈춰. 그곳에 어린 나만이 남아 있어. 풍선이 터진 순간, 아무도 알려주지 않아도 딱 그런 느낌이 드는 거야. 자, 오늘 충분히 즐거웠지? 이제 꿈과 환상의 시간은 끝났어. 여기가 원래 너의 현실이야. 자, 이제 다시 괴로울 시간이야. 실제로는 며칠 후에 아버지가 집을 나가셨고 한참 후에 다시 집으로 돌아오셨을 때는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망가진 상태였어. 허구한 날 술로 하루하루를 보냈고. 어머니를 때리고 나를 못살게 굴었어.”


말을 마치자 슬픈 감정이 올랐다. 내가 왜 처음 본 그녀에게 이렇게까지 나에 대해, 그리고 과거에 대해, 그리고 아버지에 대해 쏟아내고 있는지 스스로 의아했다. 그저 말을 시작했을 뿐인데, 저절로 그 다음 이야기와 생각 그리고 예감이 저절로 이어졌으며, 나의 이야기에 집중하는 그녀의 눈빛이 나의 어딘가를 자꾸만 건드려 말을 토해내게 했다. 나는 낯선 감정에 당황하여 몰래 그녀를 훔쳐보았다. 그녀의 눈시울이 서서히 붉어졌다. 그녀는 손등으로 눈가를 훔치면서도 나에게서 눈을 떼지 않으려 노력했다. 나도 그녀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뜨거운 머그잔의 표면을 손가락 끝으로 만지작거렸다. 그녀의 눈동자가 나의 손에 머물더니 팔을 뻗어 나의 손등 위에 손을 살며시 얹었다. 그 접촉이 생경하여 주춤했지만, 그녀는 괜찮다는 듯 손을 끌어 잡았다. 이상했다.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그런 감촉의 존재를 완전히 잊고 있었던 것처럼 어색했지만, 그녀는 그 촉감을 다시 내게 알려주려는 듯 거듭 시도했다. 촉감이 일 때마다 목 끝에서 쑤시는 통증이 올랐다. 먹먹했다. 그녀의 감각이 내게 각인되는 듯한 착각까지 들었다. 나는 그 촉감의 기억을 천천히 더듬으며 다시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하면서도 낯선 느낌에 저항했다. 이름과 나이도 모르는 그녀 앞에서 나는 다시 초등학생 아이가 된 기분이었다. 나는 너무도 작고 여렸다. 그 사실이 들통날 것 같았다. 창피했다. 어디론가 숨고 싶었다. 카페는 어딜 보나 하얀색이었다. 나는 우리의 붉은 우산을 번갈아 응시할 뿐이었다.


그녀가 나의 손을 끌어 탁자에 내려놓고 보듬으며 말했다. “어린 아이야. 이제 괜찮아. 이제 정말 다 괜찮아. 괴로운 시간은 끝났어. 앞으로 좋은 일들만 있을 거야. 이제 다 괜찮아.”


그녀의 주문 같은 말이 끝나자마자, 내 눈에서 눈물이 쏟아졌다. 나는 당황스러웠다. 거부하듯 그녀의 손아귀에서 나의 손을 빼내려고 했지만, 그녀는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괜찮아. 정말이야. 안에서 나오는 걸 막지 마. 그냥 그대로 둬. 부탁이야.”


이름도 모르는 그녀가 내게 이상한 걸 부탁했고, 나는 그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나의 손을 차분히 접촉했다. 그 맞닿음 사이에서 일어나는 피부의 진동이 나의 몸 어딘가에 숨어 있던 여린 감정을 불러오는 것 같았다. 그녀 앞에서 완전히 발가벗겨진 기분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최대한 고개를 숙이는 일이었다. 주변은 지나치게 하얬다. 고개를 숙이고 얼굴을 감춰 그 속에서 눈물을 흘렸다. 진정되지 않은 나의 감정에 몹시 혼란스러웠다. 도대체 내게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다. 돌이킬 수 없었다. 그녀는 나의 옆으로 자리를 옮겨 나의 어깨와 등을 쓸어내렸다. 그러더니 나의 귀와 뺨 언저리를 쓰다듬었다. 나는 흠칫 놀라 얼굴을 뒤로 뺐지만, 그녀의 손은 나를 따라왔다. 귓바퀴와 귓불과 턱까지 세심하게 그녀의 손이 훑고 지나갔다. 마지막까지 저항하려 했던 나의 고집은 그녀의 손길 앞에 완전히 녹아내렸다. 나의 얼굴은 그녀의 손에 맡겨졌고, 나는 아무 저항 없이 쏟아냈다. 마음껏 울었다. 곁에서 그녀는 말이 없었다. 마치 나의 감정을 함께 바라보는 기분이었다. 나는 차츰 감정과 멀어지며 진정할 수 있었다. 낯부끄러움이 다시금 나를 사로잡았고 나는 고개를 들어 통유리로 된 카페의 현관을 바라보았다. 간혹 사람들이 지났고, 다시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녀가 나의 뺨에서 손을 거두며 말했다. “이제 괜찮아?”


“미안해. 갑자기 나도 모르게. 사실 이런 적 처음이라…….”


“나는 네가 좋아. 너를 좋아할 수 있을 것 같아.”


헛웃음이 났다. “갑자기 무슨 소리 하는 거야.”


“말 그대로야. 나, 너를 좋아하고 싶어.” 나는 무엇이라 답을 해야 할지 어려웠다. “너도 나를 좋아하기를 강요하는 건 아니야. 부담 갖지 마. 너는 나를 좋아하지 않을 수 있어.”


“아니. 뭐 꼭 그런 건 아니지만…….”


“좀 걸을래?”


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바깥바람을 쐬고 싶었다. 우리는 커피를 몇 모금 마시지도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