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행선의 교점 # 25

by 청화

장마는 계속 됐다. 비가 적게 내리는 날에는 동네 작은 도서관을 찾았다. 그곳은 시간이 멈춘 듯 변한 게 없었다. 사서의 자세도 똑같았고, 노인의 들끓는 가래소리와 삼촌의 팔짱도 여전했다. 고장난 컴퓨터 한 대도 그대로였다. 나는 책을 반납하고 서고를 돌아보다가 아무 책이나 꺼내 대충 읽어나갔다. 몇 쪽을 그냥 넘겨 읽기도 했고, 눈에 드는 문단을 꼼꼼히 읽기도 했다. 책을 읽다가 지쳐 밖으로 나갔다. 처마 아래에 서서 흩날리는 빗방울을 올려다보는데, 휴대폰의 진동이 울렸다. 인영의 문자였다.


인영 | 학교 또 언제 와요?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답장했다.


영수 | 내일 갈까 해요. 얼굴도 볼 겸.

인영 | 괜히 올 필요는 없어요.

영수 | 아니에요. 원래 갈 생각이었어요.

인영 | 그럼 혹시 나랑 카페에서 놀래요? 꼭 학교로 오지 않아도 돼요.

영수 | 학교가 편해요. 점심 먹고 갈게요.

인영 | 좋아요. 그럼 내일 봐요 :)


다시 책을 읽었다. 이미 제목도 잊은 책의 글자들을 읽어나갔지만, 뜻을 이해하지는 못했다. 삶과 죽음에 대해 무슨 중요한 말을 하는 것 같았는데, 그런 걸 이해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내게는 너무 먼 이야기였다. 내게 가장 가까운 죽음은 인영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일이었다. 글자 위로 인영의 슬픈 표정이 떠올랐다. 죽음에 대한 설명으로 내게는 책보다 인영의 표정이 훨씬 더 실감나게 다가왔다.


이튿날 느지막이 이부자리에서 일어나 밥을 먹고 학교로 갔다. 비는 멎었지만 물속을 걸어 다니는 듯 습한 날씨였다. 인영과 나는 도서관 앞에서 만났다. 어쩐지 인영의 얼굴이 더 밝아진 듯 했다.


나는 말했다. “어디 카페 갈래요?”


“만날 도서관 옆에 가니까, 이번에는 다른데.” 잠시 고민하는 눈치였다. “학교 앞, 사거리 카페?”


“정말 거기면 되겠어요?”


인영은 밝게 웃으며 말했다. “응.”


우리는 카페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나는 물었다. “오늘도 도서관 가서 공부했어요?”


“그렇죠.” 인영은 등에 멘 가방을 슬쩍 들어올렸다. “저는 수학을 계속 전공하고 싶다고 했잖아요. 저한테는 시험이 목표가 아니에요. 대학원 진학이 진짜 제 목표죠.”


“그럼 미리 책을 보는 거예요?”


“사실 그러고 싶은데, 혼자서는 힘들어요. 강의에 사용하는 전공 교재 같은 걸 미리 보는 정도가 전부예요. 대학원 진학 스터디에 들어갔는데, 아직 학년이 낮아서 엄청 쉬운 부분만 발표 준비를 하고 있어요. 보통은 선배들이 돌아가면서 준비를 하고요. 근데 요즘 걱정이에요. 방학 시작할 때는 나까지 다섯이었는데, 이제 세 명 됐어요.”


“나머지 두 명은요?”


“갑자기 안 나오시던데요.”


“그래도 대단하네요. 벌써 그런 걸 결정하고 준비를 하다니.”


“사실 별 거 아니에요. 실제로 제가 하는 건 거의 없어요. 선배들한테 물어보고 정보 주워듣고 그러는 거죠. 근데 다들 진짜 똑똑해요. 그렇게 생각하면 교수님들은 도대체 얼마나 똑똑한가 싶은 거예요. 강의에 들어올 때 보면 무슨 동네 아저씨 같잖아요. 길거리에 지나가면 못 알아볼 것 같은데 사실은 엄청난 사람들이었던 거죠. 선배들이 설명하고 말하는 것만 봐도 대단하거든요, 교수님들은 어느 정도인지 실감도 안 나요. 겉으로 보면 그런 지식이라고 해야 할까,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 말이에요, 그런 게 어느 정도일지 가늠도 안 되잖아요. 사실 그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홀로 증명을 하고 있는 거예요. 멋있지 않아요?”


“저는 교수들이 아직 그렇게 대단해 보이지는 않아요. 학년이 올라가면 좀 다르게 보이려나?”


인영은 갑자기 손가락으로 도로를 가리켰다. 청색 신호등이 깜박이고 있었다. 우리는 사거리 횡단보도를 급하게 뛰어 건넜다. 인영은 주변을 둘러보더니 어딘가를 가리키며 괜찮은지 물었다. 나는 인영이 어디를 말하는지 알지 못했지만 대충 그 방향을 보고 나서 괜찮다고 답했다.


우리는 카페로 들어갔다. 추천메뉴로 밀크티 두 개와 케이크 하나를 시켰다. 인영은 내가 멀리 학교까지 왔으니 자신이 사겠다고 했다. 다음에는 내가 사겠다는 약속을 받아내고 인영이 결제하도록 내버려두었다.


밀크티를 받아오자마자 빨대로 한 모금 빨아 마시자 입 안 가득 단맛이 돌았다. 인영도 음료를 마시더니 날숨을 길게 내쉬고 고개를 숙였다.


속삭이듯 말했다. “너무 단데요?” 나는 조용히 고개만 끄덕였다. “괜찮아요?” 나는 말없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근데 왜 아무 말도 안 해요?”


“못 먹을 만한 것도 아니라서.”


인영은 똑같아 보이는 내 음료를 가지고 갔다. 그러더니 내가 입을 댄 빨대를 물고 나의 밀크티를 마셨다. 내 빨대를 그대로 사용하는 인영의 모습에 이상한 기분이 들어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녀가 말했다. “똑같네. 혹시 덜 다나 해서.”


인영은 나의 음료를 다시 돌려주었다. 인영은 다시 자신의 음료를 마셨다. 나도 잔을 들었는데, 인영이 입을 댄 빨대를 그대로 사용한다는 것도 묘했다. 이런 공유가 인영에게는 아무 일도 아닌 건지 좀 의아했다. 그렇다고 새로운 빨대를 가져다가 사용한다는 것도 억지스러워서 그대로 빨대를 사용했다. 마시면서 나도 모르게 인영의 입술을 보았다. 음료는 여전히 달았다.


인영의 입술이 움직였다. “저번에 한 말 생각해봤어요.”


“제가 무슨 말을 했죠?”


“그러다가 감정이 문제로 남는 건 아닌지.”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마요. 그냥 나는 궁금해서 물어본 거예요.”


“알아요. 근데 그게 나한테는 중요한 질문인 것 같아요. 그 후에도 계속 생각이 들었거든요. 정말로 나의 감정이 여전히 계속 문제로 남아 있는 느낌이었어요. 아주 거대하게 말이에요. 근데 도대체 그걸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알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다시 만나서 얘기를 하고 싶었어요. 그러면 조금씩 알아갈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나는 그에 대해 할 수 있는 말이 전혀 없어요. 가까운 누군가가 세상을 떠난 경험이 없거든요.”


“같이 얘기 해보면 왠지 알아낼 수 있을 것 같아요. 스터디 선배가 같이 문제 풀다가 막히면 하는 말이 있어요. 머리가 세 갠데 문제 하나 못 풀겠냐고. 그럼 제가 뭐라고 하는지 알아요?”


“뭐라고 하는데요?”


“제 머리는 빼주세요, 그래요.”


“나도 그렇게 말하고 싶어요. 내 머리는 빼줘.”


“엄청 신기한 게, 같이 있으면 혼자 고민할 때는 생각하지도 못한 게 떠오르기도 해요. 그럴 때 나는, 나 좀 똑똑해진 건가? 그랬거든요. 근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문제를 풀기 위해 같이 고민하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 거예요. 각자의 논리를 들으면서 나도 따라서 생각해보고 가장 옳은 방법을 체득하는 거죠. 같이 있으면 영향을 받지 않을 수가 없어요. 아주 자연스럽게 함께 머리를 맞대고 문제를 풀어 나가요. 우리도 그렇게 해보자는 거예요. 당장 답을 내지 못해도 상관없어요. 이건 난제거든요. 수식으로 쓰지도 못하는 문제. 아마 시간도 엄청 오래 걸릴 거예요. 진짜 문제는 우리가 그 문제를 해결할 마음이 있는가 하는 거죠.”


“물론.”


“좋아요. 혹시 그런 적 없어요? 어떤 기억이나 생각 때문에 불안할 때.”


“글쎄요. 없는 것 같아요.” 그렇게 대답하자마자 바로 두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하나는 빨간 풍선이 터진 일이었고, 다른 하나는 수진 앞에서 눈물을 쏟아낸 일이었다. 그럼에도 더 말을 잇지는 않았다. 인영은 빨대로 음료를 먹고 살짝 눈가를 찡그렸다.


“그럴 것 같았어요.”


“그럴 것 같았다고요? 왜요?”


“음…….” 인영은 잠시 말을 뜸들이다가 시선을 나의 뒤로 슬쩍 넘기고 말을 붙였다. “조금 창피하지만 고백 하나를 해도 될까요?”


“고백?”


“나는 한영수라는 사람을 몰래 지켜보고 있었어요.”


많은 물음이 떠올랐지만, 가장 간단한 질문을 골랐다. “나를?”


“네. 강의실에서 말이에요. 지금은 스터디에도 들어가서 사람들도 만나지만 학기 초에는 사람을 대하는 게 힘들었어요. 아무래도 아빠 일이 있었으니까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나 봐요. 반드시 혼자 있어야만 했고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게 동시에 불안했어요. 학기 초부터 동기들은 서로 인사하고 자리도 같이 앉고 친하게 지내는 것 같은데, 나는 늘 혼자니까 좀 외롭기도 했고 복잡했어요. 그렇다고 무슨 시도를 하고 싶지도 않았고, 할 수도 없었어요. 그러면서 계속 불안만 커지는 거죠. 이러다가 학교에서 완전히 외톨이가 되는 건 아닌가 하고. 나중에는 말을 걸어보기도 했는데, 예전처럼 자연스럽게 되지 않는 거예요. 마치 고장난 것처럼 행동하더라고요. 그러다가 한 사람을 발견했죠.”


“항상 맨 뒤에 앉는 이상한 녀석을 봤구나.”


“맞아요. 이상한 녀석. 근데, 그 이상한 녀석은 애들이 몰려다녀도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아 보였어요. 불안해 보이지도 않고. 그냥 자기 할 거 하고.”


“그렇게 보였구나.”


“아니었어요?”


나는 지난 학기를 돌이켜보았지만, 자세히 떠오르지는 않았다. “나도 몰려다니는 애들을 보면서 대학에서는 저렇게 해야 되는 건가, 하고 생각은 했어요. 근데 그게 내가 애초에 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아서 체념했다고 해야 하나? 불안하지는 않았어요. 처음에는 내가 적응을 못하는 건가 싶었는데, 조금 지나보니까 뭐 그런 것도 아니더라고요.”


“그러니까. 그런 게 전혀 아니었어. 지금은 알겠는데 그때는 엄청 불안했어요, 엄청 많이. 누구랑은 다르게.”


“지금은 어때요?”


“덕분에 좋아졌어요.”


“덕분에? 나는 한 게 없는데요.”


“저번에 만나서 아빠 얘기를 꺼낸 게 나한테는 정말 큰 도움이 됐어요. 다른 사람한테는 처음 꺼냈거든요. 아빠가 돌아가시고 나서 아무한테도 그 얘기를 못했어요, 당연히 쉽게 할 만한 얘기도 아니지만. 나는 내 안에서 홀로 그 일을 모두 해결하기를 바랐어요. 그런 힘들고 슬픈 일로 다른 사람까지 힘들게 하지는 말자고 생각했어요, 칭얼대지도 말고. 그래서 엄마한테도 아빠 얘기는 안 해요. 나 혼자서 어떻게든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사실 나는 되게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 감정들은 여전히 문제로 남아 있었던 거예요. 다 착각이었죠. 그때 우리가 대화하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릴 때 확실히 알았어요, 나는 아직 해결하지 못했다는 걸. 머리로는 누군가한테 힘들다고 얘기해야 된다는 걸 아는데도, 정작 나 자신은 그게 잘 안 되고 있었어요. 우연히 영수한테 아빠 얘기를 하고 난 후로 나는 빠르게 좋아졌어요. 혼자서 끙끙댈 때보다 훨씬 빨리 나아지더라고요. 조금씩 문제가 풀리기 시작하는 기분이었어요.” 인영은 나를 빤히 쳐다보다가 작은 목소리로 입을 뗐다.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어요.”


“인영이 잘 한 거예요, 이거는.”


“그래도 고마워요. 아빠 얘기를 들어준 처음 사람은 분명히 영수잖아요. 그러니까 혹시 힘든 일 있으면 뭐든지 나한테 얘기해요. 내가 잘 들어줄게요. 혹시 요즘 힘든 일 없어요?”


“아직은.” 나는 밀크티를 들고 빨대를 빨았다.


“안 달아요?”


“달아요.”


“그럼 그만 먹어요. 안 먹어도 돼요.”


“앞에 있으니까 나도 모르게.”


인영은 내 잔을 들어 살폈다. “나는 반이나 남겼는데, 이걸 다 마셨잖아요.”


인영은 다시 나의 음료를 마시고는 잔을 옆으로 밀었다. 나는 동네 도서관에 대한 이야기를 인영에게 했다. 매일같이 오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말했다. 가래 노인, 팔짱 삼촌, 타자 중년에 대해서도 말했다. 인영은 걱정되는 눈빛으로 내게 그 도서관에 가지 말라고 했다. 나는 괜찮다고 했다. 이제는 중년의 여성이 오지 않는다고 말하자 인영은 안심하는 듯했다. 우리가 대화를 하는 중에 인영은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스터디에서 고민했던 문제 중에 풀만한 문제가 있었다면서 내게 보여주었다. 어렵기는 했지만, 손도 못 댈 만한 문제는 아니었다. 인영은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더 하지는 않았고, 스터디에서 만난 선배들에 대해 말해주었다. 사람이 없어 걱정이라고 했다. 이러다가는 혼자서 공부하게 생겼다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우리의 대화는 계속 이어졌고, 조각케이크도 다 먹었다. 한참 후에 인영이 학원에 일하러 갈 시간이라며 몸을 일으켰다. 인영은 오늘 너무 즐거웠다고 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얘기를 했다고, 내게 고맙다고 했다. 그녀는 내게 학교를 다시 오게 되면 꼭 연락하라는 말을 남기고 버스를 타러 갔다. 나는 지하철에 몸을 싣고 빈자리에 앉아 차내의 진동에 몸을 맡겼다. 눈을 감고 유리창에 뒤통수를 기댔다. 단맛이 텁텁하게 입안에 돌았다. 혀를 굴려 입안을 닦았지만 소용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