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아무렇지 않나 봐
쉽게 비유할 거니
금세 이해될 거야.
근대 한국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알 거야.
다시 힘내어 살아가려고 할 때,
스스로 설 수 없어 앞선 세계로부터 모방한 게 많았지.
한국가요를 예를 들어 보기로 해.
1950년 이후, 외국곡, 번안곡 등 듣던 노래가 있었고
그리 다양하지 않았지.
그런데 시대가 변하면서
트로트, 포크송, 발라드, 댄스, 락 등
한국가요가 빠르게 다양해졌지.
예전 한국가요뿐만 아니라
팝송도 들었다지만
쉽게 다양하고 수많은 노래를 들을 수 없었던 때였고
몇몇 세계 다양한 노래를 들었던 사람들로부터
한국에 다양한 노래가 등장하기 시작했어.
왜 그렇게 다양한 노래가 등장했는지 그 이유를 알 거야.
가깝게는 일본 멀게 유럽, 미국 등 세계 어느 노래를 가져다
스스로 또는 다른 한국가수가 노래를 불렀어.
그 당시 한국사람에게 그 새롭고 다양했던 가요가
천채같은 몇몇 사람들로 창작되어 불러진 줄 알았어.
하지만 그때 작곡도 하고 노래도 하는 사람들
세계에 이미 있었던 노래를 모방한 거야.
그들이 앞서 세계에 불러졌던 노래를 알았던 것이고
이제는 그들 외 많은 사람들도 세계로부터 다양한 노래를 알고
유튜브 등 인터넷을 통해 세계 수많은 노래를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지.
한국에 그 다양했던 노래가
세계에 이미 있었던 노래와 똑같다는 걸 알게 된 거야.
대표적으로 누구는 현재 대중매체에 등장하지 못하고 있지.
예전 한국에서 유명하던 작곡가 또는 가수 그리고 노래
요즘 잘 등장하지 않아.
1900년 중반 이후, 한국에서 어떻게든 살아나려는 한국사람들은
한국이란 우물 속에서 모방한 노래를 듣고 새롭다며 좋아했던 거야.
한국 밖 세계에서 불러졌던 노래를 알던 몇몇 사람들이
그렇게 자기가 작곡했던 거처럼 자랑했었던 때였던 거지.
물론 지금도
세계 어디에 이미 등장한 노래를 가지고
비슷하게 자기가 작곡한 척 만들고 노래 부르도록 하고 있지.
이제는 누가 따라 만들었나 찾아낼 수 있고
따라 만든 노래가 얼마나 사람들에게 알려졌냐에 따라
유명해졌다가 들키고 더 이상
대중 앞에 드러나지를 못하게 되었어.
반대로 떳떳하게 자신을 드러내며
거짓말하고 아무렇지 않은 척 노래를 부르기도 해.
한국가요와 비교해서
한국미술은 어떨까.
아무것도 못 보던 걸
사람은 표현할 수 없어.
창의, 상상 등 앞서 본 게 있어야
가능한 거야.
한국가요보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이 별로 없어서 그렇지
한국미술계에서도 알만한 곳에서
작품과 더불어 놀랍게
작업이야기까지 따라한 사람 많아.
한 두 번이 아니야.
은근 다행이라면 누군가 원래 작품을
본 적이 없었다면 모방한 것도 몰랐을 거야.
예전부터 한국가요처럼
한국미술도 똑같아.
누군가 외국에서 뭘 보고
따라서 한국에서 하면
한국에서 최초라며 떠들어 주거나
대부분 한국에 살고 있어 외국에 이미 있는 건지 모르니
좋다며 같이 떠들어 주었어.
지금은 안 그러냐 묻는다면
그냥 따라한 거라고
자신 있게 떠들며 작업을 하지.
진부하게 반복되는 낱말, 오마주라 말하면서 그래.
게다가 요즘은 황당하게 무리지어
똑같은 표현을 하고 있어.
앞서 음악과 미술이 세계에 있어 왔지.
어떻게 한국에 다양한 대중음악과 미술이 있었겠어.
누가 듣고, 보고는 따라 했던 거야.
그런데 그 다음이 없어.
지금은 어떠냐고 한다면
여전히 한국가요에서는 누가 누굴 모방했다는 얘기가 나오고
미술 역시 더 이상 새로울 게 없다며
비슷한 표현만 묶여 등장하고 있지.
그나마 넓게 보고 말하면 한국에서 열심히 세계미술을
잘 모방해 왔고, 세계미술과 비슷해 보일 수 있게 되었어.
그래서 이제는 한국미술만이 모방하고 정체된 상태가 아니라
세계미술 역시 정체된 상태야.
안타깝다면 한국미술이 아직도 모방단계에 있다는 거야.
쉬운 한 예로, 겉보기 좋고 속 빈 미술관 따라 짓기가 있어.
속 채울 좋은 작품은 없는데 그래.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