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기사

산책의 시간 02

by 박준택


누가복음 2장에는 예수님의 출생 기사가 소개되고 있다. 당시의 로마 황제였던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는 칙령을 내려 로마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에게 호적을 등록하도록 명령하였다. 이 첫 번째 호적 등록은 총독 구레뇨가 시리아를 통치하고 있을 때 이루어졌다.




그 칙령에 따라 모든 사람이 호적을 등록하기 위하여 각기 자기 고향으로 갔다. 여기에서 '호적을 등록한다'는 것은 호주를 중심으로 하여 그 집에 속한 사람들의 본적지, 성명, 생년월일 등의 신분에 관한 사항을 기재하는 것을 말한다. 기원전 27년에 원로원으로부터 황제 칭호를 부여받은 아우구스투스가 이런 칙령을 내린 이유는, 인구 조사를 통하여 세금 수입을 확정하기 위한 것이었다. 당시 로마의 호적 제도는 자신이 현재 거주하는 지역에서 인적 사항만을 기록하는 쉽고 간편한 방법을 시행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유대는 그 방법을 따르지 않고 자신들의 관례대로 각 사람의 고향으로 가서 시행하였다. 여기에는 로마 치하에서 그래도 최소한의 민족적 자존심을 지키려는 그들의 의지가 반영되어 있다.




요셉은 다윗 가문의 자손이었기 때문에 그의 본적지도 당연히 다윗의 출생지와 같은 베들레헴이었다. 따라서 그는 황제의 칙령을 지키기 위해 갈릴리 나사렛에서 본적지인 베들레헴까지 올라가야만 하였다. 그 길에 이미 잉태하여 해산할 날이 찬, 약혼자인 마리아도 함께하였다. 출산을 앞둔 여인에게 그 여정은 말로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로 힘든 길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도착한 베들레헴에서도 호적 등록을 위하여 올라온 수많은 사람으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기 때문에 여관을 잡지 못하였다. 그래서 그들 부부는 첫째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를 축사 안에서 출산할 수밖에 없었고, 또 강보에 싸서 가축의 여물통인 구유에 눕힐 수밖에 없었다(7절). 한편 예수 그리스도의 베들레헴 탄생에 대하여 선지자 미가는 이렇게 예언하고 있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미 5:2). 그 예언의 말씀이 그때 베들레헴에서 실제 사건으로 이루어졌던 것이다.




누가는 다른 복음서와 달리 예수 그리스도의 출생 시점과 장소, 그리고 출생 과정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이것이 우리에게 시사하고 있는 점은 무엇일까? 마가복음과 요한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출생에 대한 기록이 없다. 마태복음에는 동방으로부터 온 박사들이 베들레헴에 있는 '집'에 들어가 아기 예수께 경배하고 돌아가는 모습만 소개하고 있다. 마태의 이러한 점은 출생의 당사자인 '그 가정'의 입장에서 육하원칙에 따라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는 누가의 기록 방법과 차이를 보인다. 누가의 이런 선택은 여타 복음서 기자들과 다른 저술 배경에 따른 것이다. 그의 일차적인 관심은 데오빌로를 향한 것이었다. 로마의 고위 관리로 추정되는 데오빌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내력을 알고는 있었지만 '차례대로' '확실하게' 알지는 못하였다. 더욱이 논리학과 수사학으로 무장한 행정 전문가인 데오빌로를 고려할 때, 그의 관심은 '구체적인 실제 내력과 전후 관계'를 '논리적으로' 아는 데에 있었을 것이다. 데오빌로의 이러한 관심을 연장하면 그의 선택은 당연히 마태가 아닌 누가의 것이 된다.




현대인들은 여러 면에서 데오빌로와 유사한 성향을 가지고 있다. 과학 기술의 발달은 모든 판단의 기준으로 이성에 기초한 객관성을 요구하고 있다. 따라서 현대인들은 그 기준에 따라 사실 여부를 판단한다. 비록 지금처럼 과학 기술이 발달하지는 않았지만 로마의 법과 행정은 지금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런 유사성은 데오빌로를 위하여 쓴 누가복음이 오늘날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정보라는 결론에 이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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