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의 시간 / 의사 누가와 함께하는 01
1. 누가복음 이전의 기록들
사복음서 가운데 책의 서두에 저술 배경, 즉 저술 목적과 방법에 대하여, 그리고 수신자에 관하여 밝힌 책은 누가복음이 유일하다. 비록 요한복음도 그 끝에 저술 목적을 밝히고는 있지만(요 20:31), 그 대상과 기록한 방법에 대해서는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지 않다. 누가복음의 가치는 바로 이런 독특성에서 빛을 발하기도 한다.
누가복음 1장에는, 누가복음 이전에도 많은 저술이 있었다는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처음부터 목격자와 말씀의 일꾼 된 자들이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1-2절). 수많은 저자가 목격자와 복음의 일꾼들이 전해 준 그대로 기록을 남겼는데, 그렇다면 그들이 저자에게 전해 준 기록의 원천 콘텐츠의 내용, 즉 그 ‘내력’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이다. 처음부터 그 사실을 목격하고 영향을 받은 복음의 일꾼들이 전해 준 내용을 많은 저자가 있는 그대로 그 사실을 기록하였다.
따라서 그러한 기록들이 담고 있는 내용, 즉 ‘예수 그리스도의 내력’은 다음과 같이 세 가지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째, 그 내력은 ‘그들 가운데 이루어진 사건’이었다는 점이다. 그 일은 그들이 직접 경험한 사건이었다. 둘째, 그들 가운데 이루어진 사건들은 모두 ‘사실’이었다는 점이다. 소설처럼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로 목격한 역사적 사실이었다.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을 만들어 왜군의 함선을 격파한 것처럼, 그 내력은 역사 속에서 실제로 생생하게 이루어진 사실(fact)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난중일기’를 통하여 이순신의 인격과 행적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것처럼, ‘복음서’를 통하여 그분의 모습과 행적을 사실로 받아들일 수 있다. 셋째, 그들 가운데 이루어진 사실(fact)은 그들의 인생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는 점이다. 그들 대부분은 복음의 일꾼, 즉 복음을 전파하고 가르치는 사람이 되었다. 한낱 촌구석에서 그물질하거나 세리가 되어 로마의 앞잡이 노릇을 하던 그들이, 죽어가는 이들의 생명을 구하고 굶주린 이들의 삶을 풍성하게 하는 사람이 된 것이었다. 만약, 그들이 경험하고 목격한 것이 소설과 같은 허구였다면, 그들의 삶을 그렇게 극적으로 변화시킬 수는 없었을 것이다.
2. 누가복음의 저술 목적과 방법
그들 가운데 이루어진 사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내력을 기록한 많은 저서를 바탕으로, 누가는 이전과 다른 목적과 방법으로 누가복음을 저술하기 시작하였다.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았노니 이는 각하가 알고 있는 바를 더 확실하게 하려 함이로라”(3-4절). 그가 붓을 든 목적은 ‘데오빌로’라는 한 사람을 위한 것이었다. 데오빌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내력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 내용과 거기에서 비롯된 믿음은 온전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누가는 그가 알고 있는 바를 ‘확실하게’ 해 주기 위하여 붓을 들었다.
그는 이를 위하여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행적을 기록하고 있는 모든 기록물을 수집하고,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살피는 작업을 선행하였다. 마치 의사가 환자의 병력을 정확히 알아내기 위해서 면밀하게 조사하여 그 정보를 캐내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내력을 추적하였다. 그런 점에서 의사였던 누가는, 자료 수집가이자 자료 분석가이기도 하였다.
모든 정보를 모으고 그에 대한 분석을 마친 누가는, 이제 붓을 든 목적에 맞게 누가복음을 기록하였다. 데오빌로를 ‘각하’라고 호칭하는 것을 볼 때, 그는 로마의 고위 관리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논리학과 수사학 등으로 무장한 행정 분야의 전문가인 그에게 어떻게 하면 그 내용을 효과적으로 또 확실하게 전달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던 누가는, ‘차례대로’ 쓰면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여기에서 ‘차례대로’는 문자적으로 ‘순서에 따라 차례로’라는 뜻이다. 이는 연대기적 순서대로 쓰는 것을 뜻할 수도 있고, 내용을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조정하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헬라 문학에서는 주로 후자의 의미로 사용되어, 저자가 꼼꼼하게 조사한 자료들을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구성하는 것을 말한다. 이런 방법으로 의사인 누가가 로마 고위 관리인 데오빌로를 위하여 저술한 책이 바로 ‘누가복음’이다.
3. 예수 그리스도의 핵심 내력
그렇다면 데오빌로에게 더 확실하게 알도록 도와주기 위하여 누가가 차례대로 써서 보낸 내용, 즉 예수 그리스도의 핵심 내력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복음’(Gospel)이다. 그 복음을 소개하기 위하여 누가복음 1장 4절 이하부터 24장에 걸쳐 예수 그리스도의 내력을 차례대로 기록하였다. 그리고 그 복음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사건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분은 자신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이렇게 말씀하셨다.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요 10:10-11). 여기에서 ‘도둑’은 사탄을 지칭한다. 사탄이 온 목적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선한 목자 되신 그분이 오신 목적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한 삶을 누리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양에게 생명과 풍성한 삶을 주시기 위하여 선한 목자 되신 그분은,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버리시고 부활하셨다. 바로 이것이 복음의 시작이고 끝이다. 복음은 그 안에 모두 들어 있다.
복음의 내용을 심층적으로 들여다보면, 다음과 같은 사실이 전제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생명을 얻기 전의 상태인 ‘죽음’이 전제되어 있고, 더 풍성한 것을 얻기 전의 상태인 ‘빈곤’과 ‘부족함’이 전제되어 있다. 그러므로 선한 목자 되신 그분이 쳐 놓은 울타리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 사람들, 다시 말해서 그분을 주님으로 믿지 않는 사람들은 죽음 가운데 있고, 또 죽음 가운데 있으므로 그 결과 항상 빈곤과 부족함을 경험할 수밖에 없다. 꼴이 풍성한 들판에서 평화롭게 뛰놀던 양들은 해가 지면 목동의 인도에 따라 안전한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하지만 그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양들은 어떻게 될까? 길을 잃거나 늑대의 먹잇감이 될 수밖에 없다.
4. 선택의 문제
이제 우리 앞에 놓인 문제는 하나밖에 없다. 그것은 바로 그분이 만들어 놓으신 울타리의 ‘문’을 활짝 열고 들어가느냐, 아니면 그 앞에서 머뭇거리다 발길을 돌리느냐 하는 문제이다.
사도 베드로는 그분을 못 박아 죽인 사람들을 향하여 이렇게 외쳤다.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행 3:19). 그런가 하면 사도 요한은 우리에게 믿음을 이렇게 강조하였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12).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지금 우리가 바로 그 문 앞에 서 있는데, 그 안으로 들어가기를 주저할 이유가 있을까? 하나도 없다. 생명을 얻고 또 더 풍성한 삶을 누리는 것보다 더 중요하고 긴박한 일은, 이 세상에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