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의 시간 05
갈릴리 호수 북쪽 해안에는 '가버나움'이라는 성읍이 있다. 이곳은 예수님 당시에 로마 군대가 주둔하고 세관도 있었던 큰 성읍이었다. 누가복음 4장에는 고향 나사렛에서 배척당한 후에 이곳 가버나움으로 내려오신 예수님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예수님이 회당에서 가르치고 있을 때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크게 외쳤다.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입니다"(34절). 또 해 질 무렵 사람들이 온갖 병자들을 데리고 나아왔을 때, 예수님은 일일이 그들 위에 손을 얹어서 고쳐 주셨다. 그때에도 병에 걸렸던 여러 사람에게서 귀신들이 나가면서 이렇게 소리 질렀다.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41절).
재미있는 것은 위 두 사건에서 귀신들이 예수님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더러운 귀신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거룩한 분으로, 다른 귀신들도 그분을 하나님의 아들로 알고 있었다. 귀신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그리스도 예수님이 '하나님의 거룩한 아들'이시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은 그분이 삼위일체 하나님이심을 나타내는 말이기도 하다. 또한 '거룩함'은 하나님의 속성 중에 가장 핵심이 되는 성품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 이전에 왔던 선지자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이 예수님을 대적하였던 귀신들의 입에서 나왔다는 것은, 역으로 그 사실에 대한 신빙성을 더해 준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실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 것일까? 두 가지의 의미가 있다. 첫째, 거룩하신 그분을 높이고 예배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너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높이고 그 성산에서 예배할지어다 여호와 우리 하나님은 거룩하심이로다"(시 99:9). 둘째 의미는, 그분이 거룩하시기 때문에, 우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전에 알지 못할 때에 따르던 너희 사욕을 본받지 말고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벧전 1:14-16). 하지만 귀신들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또 그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대하여 명확하게 알고 있었지만, 그 의미의 반대 방향으로 반응해 버렸다. 그러므로 우리도 그분의 정체성과 그 안에 담긴 의미를 알고 있다 하더라도 그 의미 앞에서 올바르게 반응하지 못하면 귀신과 똑같은 존재가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더러운 귀신의 말을 통하여 알 수 있는 두 번째 사실은, 거룩하신 예수님이 악의 세력을 멸하러 오신 분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라고 한 귀신의 말은, 그 속에 '왜 우리를 방해하십니까(혹은 괴롭히십니까)'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리고 그 방해는 구체적으로 더 이상 악한 일을 하지 못하도록 그들을 진멸하시는(완전히 없애버리는) 그분의 심판이 포함되어 있다.
이렇게 귀신과 예수님 사이에 흐르는 팽팽한 긴장 관계는, 양측이 서로 말을 나누기 전부터 이미 형성되어 있었다. 귀신은 죄악으로 물든 ‘더러운’ 존재이다. 그에 반해 예수님은 ‘거룩한’ 분이시다. 빛과 어둠이 함께할 수 없는 것처럼, 더러움과 거룩함도 공존할 수 없다. 다툼이 일어날 수밖에 없고, 그 싸움에서 패한 쪽은 소멸될 수밖에 없다. 더러운 귀신이 싸워야 할 상대는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거룩한 아들이시다. 한 마디로 상대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더러운 귀신은 예수님의 꾸짖음에 제 스스로 알아서 도망갔던 것이다.
도망가게 놔두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다. 허점이 보이면 다시 찾아와 발톱을 세울 것이 너무도 빤하기 때문에, 두 번 다시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아예 뿌리를 뽑아버리는 것이 최선이다. 즉 더러운 귀신이 자신의 입으로 말한 대로 '멸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더러운 귀신을 소멸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선택하신 방법이 바로 예수님이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지셨던 십자가이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엡 2:14-16).
예수님은 하나님의 거룩한 아들이시다. 그분은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하나님과 원수 된 것을 소멸시켜 주셨다. 그분이 이렇게 하신 목적은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는 데 있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자명하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는 것이다(요 1;12). 그렇게 자명한 일을 거스르는 것은 귀신들이나 하는 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