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의 시간 / 성령님 002
유월절 마지막 만찬을 나누는 자리였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고 당부하셨다. 이런 예수님의 말씀에는 제자들의 근심이 전제되어 있다. 여기에서 ‘근심하다’(terassetho, 헬)라는 단어는, ‘요동하다’, ‘뒤흔들리다’, ‘불안하게 하다’라는 의미이다. 이 단어가 부정어 수동태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외부에서 오는 어려움으로 마음이 뒤흔들리는 상태, 즉 불안해하고 두려워하는 상태를 나타낸다.
마음이 이런 상태로 계속 노출되면 영혼은 질병에 걸리거나 죽게 된다. 제자들의 마음은 바로 이런 상태에 있었다. 예수님은 그런 그들에게 근심하지 말고 “나를 믿으라”고 하시면서 그들의 마음을 다독이셨다.
그뿐만이 아니다. 자신을 믿어야 하는 이유(근거)도 제시해 주셨다. 바로 약속이었다. 그 가운데 네 번째로 제시하신 약속은, 보혜사 성령님을 그들에게 주어 영원토록 그들과 함께 있게 하시겠다는 것이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요 14:16-17).
‘보혜사’(parakletos, 헬)는 ‘곁에서 돕기 위하여 부름을 받은 자’라는 뜻으로, 성령님을 가리킨다. 성령님은 진리의 영으로, 우리와 영원히 함께하신다. 우리는 ‘또 다른 보혜사’라는 말을 통하여, 예수님도 보혜사이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요일 2:1). 그분은 세상에 계실 때 제자들과 동고동락하시면서 그들의 모든 것을 도우셨다. 그분이 하셨던 것처럼 성령님도 제자들과 함께하시면서 사도행전에서 볼 수 있는 놀라운 일들을 행하셨다.
예수님이 약속하신 대로 그들과 함께하셨던 보혜사 성령님은, 지금도 우리와 영원히 함께하신다. 사도 요한은 바로 그분이 우리를 지키시므로 악한 자가 우리를 만지지도 못한다고 못을 박았다(요일 5:18).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상황에 있든지 근심할 필요가 전혀 없다. 항상 함께하시는 그렇게 든든한 보디가드가 있고, 그렇게 온전한 진리의 영이 있고, 그렇게 친밀한 친구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가 근심에 빠져 있다면, 이는 아이러니 중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러함에도 이런 아이러니는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버젓이 눈을 뜨고 있다.
이런 현상이 근절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단순하다. 영원히 함께하시려는 성령님을 우리가 밀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분과 함께하면 내 마음대로 하지 못하니까 밀어내는 것이다. 그 결과 근심은 우리의 마음속에 쑥쑥 뿌리를 내리고, 그것은 어느덧 잡초가 되어 평안이라는 알곡을 병들고 죽게 한다. 이러한 모습은 성령님을 밀어내는 자유가 실상은 우리를 파멸로 몰아가는 그릇된 자유라는 반증이 되기도 한다.
우리에게는 성령님과 함께하는 자유도 주어져 있다. 그리고 그 자유가 우리를 평안으로 인도한다. 예수님은 그 자유를 기대하시면서, 2천 년 전 제자들에게 하셨던 말씀을 우리에게 반복해서 들려주신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요 1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