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의 시간 / 사랑 004
고린도후서 8장에는 연보, 즉 헌금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예루살렘 교회의 구제 사업에 참여하기를 원하였다. 고린도 교회는 일 년 전부터 연보를 시작하였지만, 무슨 연유인지 그 시점까지 그 일을 마무리하지 못하였다. 이에 바울은 마케도니아 교회들의 본을 제시하면서 그들처럼 고린도 교회도 동참하기를 바랐다. 그는 마케도니아 교회들이 그 일에 ‘자원하였고’, ‘힘에 지나도록 넘치게 드렸다’라고 소개하였다. 그뿐 아니라, 바울 일행이 바라던 것 이상으로 그들이 먼저 자신을 주님께 드렸다고 전하였다. 여기에서 ‘먼저’는 시간과 중요도의 측면에서 우선성을 나타내는데, 이는 그 무엇보다도 먼저 자신을 주님께 바쳤다는 의미이다.
이것을 통하여 우리는 마케도니아 교회들이 지녔던 신앙의 척도를 알 수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생명을 얻었고, 그들이 가진 모든 것도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먼저 자신들의 생명까지 바쳐서 하나님께 헌신하기 원하였다. 또한, 그들은 그들의 소유가 자신들의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언제든지 주님을 섬기고 형제들을 돕는 일에 그것을 바쳐야 한다고 믿었다. 이것을 통하여 우리는 그들이 청지기 정신에 얼마나 투철하였는지를 알 수 있다.
‘청지기 정신’은 연보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청지기는 주인의 재산을 맡아 관리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청지기에게 맡겨진 재산은 그의 것이 아니라 주인의 것이다. 따라서 청지기는 그 재산을 임으로 사용할 수 없고 반드시 주인의 명에 따라 사용해야 한다. 우리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그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기쁜 마음으로, 그리고 넘치도록 후히 베풀기 원하시는 분이다. 마케도니아 성도들은 바로 이 점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그래서 주인이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예루살렘 교회를 돕기 위하여 ‘자원하여’ ‘넘치도록’ 헌금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이런 모습을 예루살렘 교회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그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이라”(행 4:32-35). 자기 재물을 자기 것이라고 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밭과 집을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주었기 때문에, 그들 중에 가난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이처럼 교회 안의 모든 성도가 청지기 정신에 투철하면 혁명과 같은 일이 일어난다.
현대 사회는 과거보다 빈부의 격차가 더욱 심하다. 이런 모습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 현대 교회에서도 똑같이 재현되고 있다. 이것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은 무엇일까? 이는 교회 안에서 청지기 정신이 사라졌다는 증거이다. 교인들은 주님이 맡기신 재물을 자기 것으로 여기면서, 주님의 뜻이 아닌 자기 마음대로 사용한다. 이런 행위는 강도나 도둑이 하는 짓이다. 이 얼마나 낯뜨거운 교회의 민낯인가.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현주소를 눈물로 철저히 회개하고, 우리의 소유를 주님과 가난한 이웃에게 내려놓아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진정한 의미의 연보가 시작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