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강도의 다른 반응

산책의 시간 24

by 박준택

누가복음 23장에는 예수님이 골고다(해골)에서 로마 군인들에 의해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그날 십자가형을 언도받은 사람은 그분 외에 두 사람이 더 있었는데, 그들도 각각 그분의 좌우편 십자가에 못 박혔다. 누가는 그들을 '행악자'로 표현하고 있다(39절). 마태와 마가는 그들을 '강도들'이라고 하면서 죄목을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다(마 17:44;막 15:27). 이 두 사람은 똑같은 죄를 범하였지만, 예수님에 대해서는 각기 다른 반응을 보였다.




먼저 '강도 1'은 예수님을 비방하였다.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39절) 여기에서 '비방하다'는 말은 헬라어로 '신성 모독적인 발언을 하다'는 뜻이다. '비방하다'는 단어가 능동태 미완료형으로 사용된 것을 볼 때, 그가 예수님을 향해 한 번만 비방한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그렇게 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에 비하여 맞은편에 매달려 있던 '강도 2'는 다른 반응을 보였다. 그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였기 때문에,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였다. 또한 그분을 '행한 것에 옳지 않은 것이 없는 분'으로 인정하고 있었다. 모든 행위, 즉 그분의 행동과 말씀이 모두 옳다는 그의 인정 속에는, 그분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시고 또 그분이 친히 하나님이 되신다는 사실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들어 있다. 그는 이것에 기초해서 자신을 예수님께 의탁하였다. "예수님,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42절).


그러자 예수님도 분명하고 확신에 찬 어조로 그에게 구원을 약속해 주셨다.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43절). '낙원'은 주님과 함께 거하는 곳이다(16:22-31;고후 12:1-4). 예수님은 먼 미래가 아닌 바로 '오늘' 그곳에서 그와 함께 있을 것이라고 약속하셨던 것이다.




그렇다면 '강도 1'은 왜 예수님을 계속 비방하였을까? 그 이유는 그가 예수님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오류는 그가 주위 사람들로부터 들었던 잘못된 정보에서 비롯되었다. 처형장에 있던 사람들은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을 재미있게 구경하면서 그분이 신성 모독죄를 범한 죄인이라고 조롱하였다. 종교 지도자들과 로마 군인들도 예수님을 향해 비방하면서 그와 똑같은 말을 마구 내뱉었다. 더구나 예수님이 못 박히신 십자가 위에는 '유대인의 왕'이라 쓴 패도 있었다. 수많은 말과 패에 쓰인 글은, 그렇지만 음모에서 비롯된 조작된 진실에 불과한 것들이었다. 그의 눈과 귀가 바로 이런 것들을 집중하였기 때문에, 그의 인식은 오류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이다.




성경은 사람에 대하여 이렇게 평가하고 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롬 3:9-12).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사람의) 마음이라"(렘 17:9). 그래서 성경은 모든 사람을 죄인으로 규정하고 있다(롬 3:23).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이에 반하는 사람들의 말과 글은 대부분 믿을 만한 것이 못 된다.


따라서 '강도 1'은 우리에게 반면교사의 역할을 하고 있다. 즉 그와 같이 사람들의 말과 글에 눈과 귀를 집중하지 말고, 오직 성경에만 집중하라고.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만이 오직 참되고 그 말씀에 의지하는 사람들을 온전하게 하기 때문이다(딤전 3;16). '인식'은 '믿음'을 낳는다. 그리고 그 믿음은 '구원'에 이르는 갈림길이 된다. 그렇다면 우리의 눈과 귀는 어디를 향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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