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의 시간 / 행복 001
혹시 유럽의 작은 나라 벨기에의 '모리스 마테를링크'라는 사람을 알고 있는가?
많은 분이 모를 것 같은데, 아마도 그가 쓴 작품을 들면 그가 누구인지 금방 생각날 것이다. 그는 '파랑새'라는 작품을 쓴 작가이다. 1908년 '파랑새'를 비롯하여 여러 작품을 발표하였고, 마침내 1911년에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파랑새'는 어린이를 위해 쓴 희곡 작품으로, 여기에서 파랑새는 '행복'을 상징하고 있다. 두 아이가 파랑새를 찾기 위해 여기저기 헤매지만 결국 집에서 찾게 되는 모습을 통해, 행복은 먼 곳이 아니라 가까운 곳에 있다는 메시지를 던져 주고 있다.
당신은 그 파랑새를 찾았는가? 지금 이 순간 행복한가?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직 파랑새를 찾지 못한 것 같다. 그러한 현상은 '행복 지수'를 보면 알 수 있다.
영국의 신경제재단(NEF)은 해마다 기대 수명, 삶의 만족도, 생태 발자국 등을 토대로 국가별 행복 지수를 발표하는데, 2017년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68위에 머물러 있다. 이 수치는 많은 사람이 아직도 파랑새를 찾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가리킨다. 가장 행복하다고 느낀 나라는 어디일까? 중남미의 코스타리카이다. 이어서 도미니카, 자메이카, 과테말라, 베트남 등이 상위 5개국에 자리하고 있고, 콜롬비아, 쿠바, 엘살바도르 등이 그 뒤를 잇고 있다. 중국은 20위에 머물러 있고,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 일본 등은 한국보다 순위가 낮고, 심지어 초강대국인 미국은 114위에 놓여 있다. 이 통계를 보면, 행복 지수가 경제 수치와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파랑새를 찾을 수 있을까? 하나님의 뜻대로 하면 된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뜻이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살전 5:16-18).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고 있는 상태가 행복을 누리는 삶이다. 그래서 국어사전도 행복에 대해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함, 또는 그런 상태." 여기에서 '충분한 만족'은 '감사'라는 단어로 바꾸어도 무방하다.
사도 바울이 이렇게 강조할 수 있었던 근거는 어디에 있을까? 그것은 바로 예수그리스도 때문이다. 하나님의 뜻은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 앞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라는 전제가 들어 있다. 만약 그리스도가 없다면 우리는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할 수 없다. 이는 역으로 우리에게 그리스도만 있다면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왜 그리스도만 있으면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할 수 있을까? 다시 말해서 우리에게 그분만 계시면 언제 어디서나 행복할 수 있을까? 그것은 바로 그분이 우리의 행복을 방해하는 모든 것을 제거해 주셨기 때문이다.
행복을 방해하는 것은 '죄'이다. 모든 사람은 그 죄로 인해 하나님과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잘못되거나 깨져 있다. 성경은 이렇게 잘못된 관계, 깨어진 관계를 '죄'로 정의하고 있다. 하나님을 향해서는 그분을 믿지 않고 불순종하면서 죄를 범하고, 사람들을 향해서는 사랑을 실천하지 않고 악을 행하면서 죄를 범한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우울함, 불안감, 긴장감, 억압된 감정 등을 느끼고, 그 결과 행복이 아닌 불행을 맛보면서 살아간다.
이에 대한 치료 방법은, 근본적인 원인이 되는 죄를 도려내는 것이다. 마치 의사가 수술하는 과정에서 날카로운 매스로 암 덩어리를 제거하듯이, 그렇게 우리의 모든 죄를 도려내야만 근본적인 치유가 가능하다. 2천 년 전에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십자가에서 짊어지신 채, 거기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써 이미 그 일을 모두 해결해 주셨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벧전 3:18).
바로 그분을 주님으로 영접할(믿을) 때, 우리는 그토록 소원하는 행복의 파랑새를 잡을 수 있다(요 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