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사 에스라와 함께하는 산책의 시간 02
에스라서 2장은 예루살렘과 유다 도(province)로 돌아온 사람들의 명단과 인원수를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70절로 이루어진 2장에서 장장 93%인 65절을 할애하고 있는데, 그것을 한두 구절로 요약하여 제시하지 않고 구체적으로 밝힌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서이다.
첫째, 구체적인 명단을 제시함으로써 1차 귀환 사건의 역사적 객관성을 제공해 주고 있다. 지도자들이 누구였는지, 평민들은 어느 가계와 지역 출신이었는지, 그리고 성전 봉사자들도 맡은 역할에 따라 누가 얼마나 귀환하였는지를 이름과 숫자로 낱낱이 밝힘으로써 역사적 사건에 대한 구체적인 진실성을 더해 주고 있다. 즉 이 사건이 소설과 같은 픽션이 아니라는 것이다.
둘째, 구체적인 정보를 통하여 귀환자들에 대한 구체적인 정황을 파악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그것은 우리에게 어느 가계 어느 지역 자손들이, 또 어떤 계층 사람들이 성전 재건과 신앙 공동체 재건에 얼마나 참여하였는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가계'를 알 수 있는 자손들 가운데 예수아와 요압 자손은 가장 많은 2,812명이, 두 번째로 많은 바로스 자손은 2,172명이 돌아왔다. 이 두 가문의 합계가 4,984명인데, 이는 전체 24,144명 가운데 21%를 차지하는 인원이다. 또 '지역'에 따라 나눈 귀환자 가운데 여리고 근방으로 추정되는 스나아의 자손은 3,630명으로 전체(8,540명)의 과반수에 육박하는 43%를 차지하고 있다. 그들은 예루살렘 성전의 '어문'(fish gate) 공사에 참여하였던 사람들이다(느 3:3). '어문'은 '중문'(middle gate)이라고도 하는데(렘 39:3), 예루살렘 둘째 구역(대하 34:22), 즉 예루살렘의 확대된 신도시 북쪽 벽에 있었던 문이다. 갈릴리나 두로 등지의 생선들이 주로 이 문으로 반입되어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이런 정보 등은 앞서 제시한 구체적인 명단과 인원수에 기초해서 나온 것들이다. 즉 본문에서 일차로 제시한 구체적인 정보는 이와 같은 이삼 차 정보를 알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자료가 된다.
셋째, 둘째 내용과 관련하여 귀환자들이 이루고 있는 공동체의 성격을 제공하고 있다. 고레스 칙령에 따라 귀환한 공동체는, 엄밀한 의미에서 이전 왕국(국가)의 회복을 추구할 수는 없었다. 그들은 여전히 바사(페르시아) 제국의 지방 백성으로 간주되었고(1절), 그러므로 국가와 국민이라는 이름 대신 오로지 성전 재건을 위한 종교적인 실체, 즉 회중으로만 존재할 뿐이었다. 이러한 점은 명단 속에서도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다. 그들은 비록 예전의 이스라엘 공동체와 연속성을 지니고 있었지만, 명단의 내용에는 왕가의 직계 후손이자 다윗 왕의 상속자에 대한 언급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명단이 지닌 이런 특징을 통하여, 이들에 의해 형성된 공동체가 이전에 가졌던 왕국 개념이 아닌, 새롭고 영원한 공동체인 하나님의 나라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또한 그 공동체는 일부 영향력 있는 한두 사람이나 특정 계층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유다 사회의 다양한 계층들의 참여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넷째, 이 사건을 주관하신, 역사의 주인공이신 하나님의 관심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제공하고 있다. 하나님의 관심은 성전을 재건하고 새로운 사회를 건설할 공동체를 향하고 있었지만, 그 와중에도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각 사람, 즉 개인을 향해서도 잊지 않고 집중되어 있었다. 그러한 관심은 계층, 가문, 지역 등을 세분해서 또 그 숫자를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꿰는 데까지 이르고 있다. 그래서 누가는 먼지와 같은 한 사람을 귀하게 보시는 하나님을 우리의 머리털까지도 다 세시는 분으로 소개하였던 것이다(눅 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