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주인공

학사 에스라와 함께하는 산책의 시간 01

by 박준택

인류 역사에는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 종종 일어나기도 한다.




이스라엘 남쪽 왕국을 이루고 있던 유다는, 기원전 586년 바벨론에 의해 멸망하였다. 그때 수도 예루살렘과 솔로몬 성전은 점령군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다. 참상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수많은 백성이 포로가 되어 바벨론으로 끌려갔다. 그런데 그곳에서 70년 가까이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을 재건하기 위해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이와 같은 일은 아무리 긍정적으로 보아도 불가능한 것이었다. 불가능이 가능으로 바뀐 그 사건은,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계셨기 때문에 이루어졌다.




그 사건을 소개하고 있는 책이 바로 '에스라서'이다. 바사(Persia)의 고레스 왕은 즉위 원년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포로 귀환(1차)의 내용이 담긴 칙령을 내렸다. 그것을 '고레스 칙령'이라 하는데, 거기에는 이런 내용이 들어 있었다.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한다.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세상 모든 나라를 내게 주셨고 나에게 명령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 하셨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 신이시다. 너희 중에 그의 백성 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라. 그는 예루살렘에 계신 하나님이시다."(1:2-3) 칙령의 내용 속에는 역사의 주인이 고레스 왕이 아니라 그에게 명령하신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이 들어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떤 점에서 역사의 주인(주관자)이 되시는 것일까? 그 이유가 고레스 왕의 고백 속에 모두 들어 있다. 즉 그분이 하늘의 하나님이시고, 참 신이시고, 또 세상 모든 나라를 자신이 지정한 왕에게 주고 명령하실 뿐만 아니라, 예루살렘에 계신 존재이시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하늘의 하나님'은 '하늘'이 상징하는 우주와 그 가운데 계신, 만물을 창조하신 주인이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뜻이다. '참 신'은 '거짓된 신'과 대조되는 말이다. 거짓은 그 안에 공허한 부재와 나쁨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반대로 참은 그분의 실재하심과 선하심을 나타낸다.


'나라를 주신다'는 말은 그 일에 대한 주도권이 세상의 왕들이나 다른 어떤 존재들에게 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있다는 뜻으로, 역사에 주권적으로 개입하시는 그분의 속성이 들어 있다. 하나님의 이러한 속성은 모든 회중 앞에서 송축하였던 다윗의 고백 속에도 그대로 녹아 있다. "여호와여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물의 머리이심이니이다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물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대상 29:11-12).


또한 '예루살렘에 계신다"는 말은 그분이 하늘에 앉아 팔짱을 끼고 계시는 분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예루살렘에 거하시면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하신다는 뜻이다. 그 계심을 직접적으로 나타내 보이신 증거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시기도 하지만 친히 그분 자체이시기도 하다(눅 5:17-26;요 1:1,14;14:9).




이 사건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라는 것이다. 고레스 왕은 그렇게 했다. 바사의 전성기 때에는 동쪽으로 인더스 강, 서쪽으로 이집트와 그리스 반도, 남쪽으로 티그리스 강, 북쪽으로 아르메니아 산맥과 카스피 해까지 거대 제국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렇게 거대한 제국의 왕도 그렇게 하였다면, 우리는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렇게 하였다. 그들은 인정과 순종의 대가로 장장 4개월 동안이나 험난한 귀환 길에 올라야만 하였다. 바벨론에서 이미 구축하였던 생활 터전을 버렸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도 황폐화된 땅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이 이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