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호랑이를 물었어요

유아의 일기장 03

by 박준택


이슬이는 동화책 읽기를 아주 좋아합니다.


혼자 거실 구석으로 가서 동화책 읽는 시늉도 하고, 곰돌이에게 동화책을 읽어 주기도 합니다. “...뭐뭐뭐 했어요. 끝!” 하고는 다른 책을 집어 듭니다.


어느 날, 저는 다리미질을 하고 녀석은 곰돌이에게 동화책을 읽어 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슬이가 곰돌이에게 들려주는 옛날이야기의 내용이 제가 아는 버전과 다르지 뭐예요.


“호랑이가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하였다가 “할머니가 호랑이를 물었다.” 하면서, 갖고 놀던 곰돌이를 꽉 무는 게 아니겠어요? 아직 어려서 내용 정리가 안 되어 그런가 보다 하고 그냥 넘어갔습니다.




그날 저녁 이슬이는 동화책을 가지고 가서 아빠에게 읽어 달라고 합니다. 업무에 시달리고 돌아온 아빠가 숟가락을 놓자마자 아이의 성화가 시작된 거죠.


설거지하면서 들으니까 이슬이 아빠는 정말이지 가관입니다. 두 부자가 침대에 누워 책을 읽는데, 아빠가 너무나도 피곤하였던지 이렇게 읽어 주네요.


“호랑이가 자꾸만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하니까, 할머니가 화가 나서 호랑이를 물어버렸어요.”

그리고는 음냐음냐 금방 곯아떨어집니다.


비로소 저는 이슬이가 왜 할머니가 호랑이를 물었다고 하였는지 알 수 있었지만, 굳이 남편에게 따질 수가 없었답니다. 그 피곤한 와중에 동화책을 읽어 주려고 하니 혀가 꼬이고 말이 꼬였겠지요. 지금은 이슬이 부자의 엉터리 옛날이야기를 굳이 고쳐주고 싶지가 않네요. 왠지 코끝이 알싸해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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