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의 일기장 04
이슬이는 여우짓을 잘합니다.
얼마 전에 목포 할아버지, 할머니, 개봉동 외할머니, 엄마, 아빠 이름을 가르쳐 주었더니 금방 따라서 합니다. 그런데 아빠까지는 이름 뒤에 ‘씨’ 자를 붙이는데, 엄마 이름 뒤에는 절대로 ‘씨’ 자를 붙이지 않습니다. 고이얀~.
어제는 목포 할아버지 집에 전화해 달라고 성화를 부려서 전화를 연결해 주었더니, 수화기에 대고 시키지도 않은 말을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습니다.
“열 나서 약 먹었어요. 콜록콜록 기침했어요. 할아버지 많이 보고 싶어요. 우리 집에 놀러 오세요. 한진아파트 백땀 동 따백따 호요.”
이 정도면 27개월치고는 대화가 되는 수준이죠?
그런데 문제는 서현이가 전화를 한 번 걸면 절대 끊지 않으려고 한다는 겁니다. 여러 차례 주의시키고 억지로 수화기를 빼앗기도 해 보았지만, 녀석은 전화기에다 노래자랑까지 하고서야 끊습니다.
어르고 달래서 겨우 전화를 끊고 녀석을 혼냈습니다.
“이슬아, 너 왜 엄마 말을 안 듣니? 엄마가 전화 끊으라고 하면 끊는 거야. 다른 사람이 우리 집에 급하게 전화하려고 해도 너 때문에 전화할 수 없잖아!”
그러면서 머리에 꿀밤을 주었습니다.
녀석은 억울해 못 살겠다는 듯이 엉엉 울더니 갑자기 "엄마 안아 줘! 엄마 사랑해요!" 하고는 저에게 찰싹 달라붙었습니다. 하지만 거기에 넘어갈 어미가 아니죠.
“안 안아 줄 거야. 엄마도 너를 사랑하지만, 오늘은 벌 줄 거야. 무릎 꿇고 손들어!”
그러자 녀석이 갑자기 큰 소리로 이렇게 외치는 게 아니겠습니까.
“김-정-숙-씨!”
이 상황에 웃어야 할지 혼내야 할지 난감하기만 합니다. 하지만 어쩌겠어요, 이슬이도 이 어미를 닮아 잔머리의 대가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