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빚진 이슬이

유아의 일기장 06

by 박준택


종종 남편과 가난한 날의 행복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눕니다. 이슬이를 임신하였을 때 우리의 신혼 보금자리는 산 위에 있었습니다. 이화여대 정문 옆 비탈길을 올라가면 ‘두산(斗山)이라고 하는 아파트입니다. 초롱초롱한 별이 걸려 있는, 경사가 심한 산꼭대기에 우리들의 둥지가 있었던 거죠.


남편은 입덧이 심한 저를 불러내어 하나라도 더 먹일 양으로 이것저것 사 먹였지만, 저는 입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죄다 토해내곤 하였습니다. 남들은 입덧을 무기로 남편에게 한밤중에 ‘이거 사 와라, 저거 사 와라’ 한다지만, 도통 먹고 싶었던 것이 없던 저로서는 호강 한 번 못하고 입덧의 힘겨운 시간을 보내야만 하였습니다.


그런데, 유일하게 광어회만큼은 소화를 잘 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이슬이 녀석의 입맛이 워낙에 고급에다 까다로워서 광어회만 찾았지만, 우리의 경제 수준이 그것을 감당하기에는 너무 버거웠습니다.




하도 못 먹어 얼굴이 보트피플처럼 야위어 갈 때, 드디어 남편이 결단을 내리더군요.

“팬티를 팔아서라도 광어회 사 줄게!”


그 후 저와 남편은 그 꼭대기에서 비틀비틀 무거운 몸을 이끌고 광어회를 먹으러 종종 산 아래로 내려왔습니다. 먹을 때는 정말로 행복하였습니다. 돌아서서는 일주일 분의 생활비를 걱정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저와 남편은 손을 꼭 잡고 다시 산꼭대기에 있는 우리의 둥지를 향하곤 하였지요. 그런 연고인지 우리 이슬이는 밥을 먹을 때 꼭 생선이 있어야만 밥을 먹습니다.

‘녀석 까다롭기는......’


그런데 무거운 배와 부어오른 다리 때문에 산꼭대기로 올라갈 수 없는 거예요. 그럴 때면 남편은 우리의 둥지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차를 향하여 달려가 애원의 눈빛으로 이렇게 말하였어요.

“아내가 임신 중이라 저 꼭대기까지 가는 데 힘들어합니다. 같은 방향이면 좀......”

그때마다 친절한 분들이 저희 부부를 태워 주었습니다.




지금도 그분들을 생각하면 너무나 감사합니다. 어떤 분은 주차할 곳을 찾다가 저희 남편의 애원 소리를 마다하지 않고 꼭대기까지 태워다 주기도 했어요. 파이팅을 외쳐 주면서.


이런 따뜻한 분들이 있었기에 이슬이도 건강하게 세상으로 나왔습니다. 그때 차가 없어서 사랑을 입었던 저희는, 행여 저희와 같은 상황에 있는 분들을 만나면 아주 기꺼이 태워 드립니다. 3년 전 그 이야기를 나누면서.


사랑을 받고 자란 이슬아, 너와 나는 이 세상 사람들에게 사랑의 빚을 졌단다. 우리에게 있는 사랑을 힘껏 나누어 주면서 살자꾸나. 사랑을 줄 수 없을 만큼 가난한 사람도 없고, 사랑을 받지 않아도 될 만큼 부유한 사람도 없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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