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의 시간 / 믿음 003
예수님이 두 번째로 가버나움으로 들어가셨을 때의 일이다. 어떤 사람의 집에 예수님이 계신다는 소문이 났고, 그로 인해 많은 사람이 모여들어 문 앞까지도 들어설 자리가 없게 되었다.
그런 북새통 속에 한 중풍 병자가 침상에 누운 채 네 사람에 의해 들려 왔다. 당연히 무리 때문에 집 안으로 한 발자국도 옮길 수 없었다. 그렇지만 그들(중풍 병자 포함)은 병자의 치유가 너무 간절하였기 때문에, 포기하지 않고 예수님만 바라보며 그분이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 병자가 누운 침상을 달아 내렸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자에게 놀라운 말씀을 하셨다.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다”(막 2:5). 그뿐만 아니라 걷게 되는 이적도 선물로 안겨 주셨다.
이 대목에서 이런 궁금증이 하나 생긴다. ‘그렇다면 중풍 병자는 어떻게 예수님이 인정할 정도의 믿음을 소유하게 되었을까?’ 성경은 그에 대한 직접적인 근거를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지 않지만, 전후 관계, 즉 문맥을 살펴보면 그 원인을 금방 유추해 볼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에 대한 소문’이다.
중풍 병자가 예수님께 나아오기 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 첫 번째로 가버나움에 들어가신 예수님은, 안식일에 회당에서 가르치셨고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에게서 그 귀신을 쫓아내셨다. 그리고 그런 예수님의 소문은 곧바로 온 갈릴리 사방에 퍼졌다(1:28). 또 이런 일도 있었다. 예수님이 나병 환자를 낫게 하신 후 그에게 그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하셨다. 하지만 나음을 받은 나병 환자는 너무 기쁜 나머지 그 일을 많이 전파하여 널리 퍼뜨렸다(1:45).
그 소문은 중풍 병자의 귀에도 당연히 들렸을 것이다. 더구나 중풍 병자는 귀신 들린 사람이나 나병 환자와 비슷한 처지에 있었기 때문에, 그 소문을 그 어떤 사람보다 더 귀담아들었을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우리는 중풍 병자의 믿음이 바로 거기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쉽게 추측해 볼 수 있고, 그것을 통하여 믿음은 듣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는 것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중풍 병자와 같이 병도 낫고 죄 사함도 받는 경험을 하기 위해서는 그 무엇보다 먼저 예수님의 소문, 즉 그 소문이 기록되어 있는 성경 말씀을 귀담아들어야 한다.
성경은 믿음과 듣는 것, 그리고 말씀의 관계를 이렇게 밝히고 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 10:17). 그러므로 우리는 듣되 다른 어떤 것이 아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즉 그분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 성경을 들어야 한다.
성경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고 말씀하고 있다.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고전 15:3-4). 이렇게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해 주신 일을 ‘복음’이라 한다. 성경은 그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영접하면, 다시 말해서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기만 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가 주어진다고 약속하고 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12). 이 약속은 오늘도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우리를 향하여 활짝 열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