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핸드폰 사 주세요.”
벌써 며칠째 핸드폰 타령입니다. 밥 먹는 중에도 “핸드폰”, 혼자 놀기의 진수를 보이다가도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핸드폰”, 잠자리에 들어서도 제 몸을 친친 감고 목을 조르면서 “핸드폰” 합니다.
그저께는 외할머니 생신이라 모든 식구가 외식하러 나갔습니다. 물왕리에 있는 ‘담원’이라는, 제법 분위기 있는 한정식집에서 코스 요리를 시켰습니다. 동대문에서 옷가게를 하는 처남도 중국 광저우에서 생신을 축하하러 귀국하여 함께하고 있네요.
축하 파티의 흥을 돋우기 위해 삼촌이 아들을 꼬드깁니다. 노래 세 곡을 뽑으면 핸드폰을 사 주겠다고. 우리 아들, 노래 세 곡 뽑는 거야 가볍죠. 핸드폰을 머리에 그리면서 수저를 마이크 삼아 제법 가수답게 부릅니다. 몇 곡만 더 부르면 진짜로 사 준다는 삼촌의 새로운 제안에 그것이 삼촌의 간교한 꾀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안 아들은, 얄밉고 원통해서 삼촌하고 무지막지한 싸움판을 벌이기도 합니다. 이단 옆차기, 삼단 앞차기, 세 번 돌아 정권 지르기 등등의 고난도 기술을 발휘하면서.
식사를 마친 후 온 식구가 식당 앞 정원에 앉아 모처럼 정담을 나누고 있습니다. 무엇이 좋은지 흥에 겨워 혼자 흥얼거리고 있던 아들이 갑자기 맨바닥 위에서 뒹굴며 먼지를 일으킵니다. 식구들이 말릴 겨를도 없이 데굴데굴 난리를 칩니다. 알고 보니 아들이 할머니와 식구들을 위하여 깜짝 축하 공연을 한 것입니다. 열 살밖에 안 된 녀석이 글쎄 얼마나 춤을 잘 추는지. 온몸으로 바닥을 구르며 이곳저곳을 쓸고 다니는 게 비보이 춤인가 봅니다.
한 판 신명 나게 추고 난 아들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사악' 지으면서 할머니께로 다가갑니다. 이 녀석이 왜 이럴까요? 저녁 식사할 때 이런 행동을 유발할 만한 별 이상한 반찬은 없었는데 말입니다.
“할머니, 핸드폰 사 주세요.”
아뿔싸, 저 잔머리를 누가 당할까요? 전략적으로 누구를 공략하면 되는지 알아버린 겁니다. 할머니가 우리 가정의 최고 수장이고 최고 결정권자인 것을. 누가 할머니 말씀을 거역할 수 있겠습니까. 할머니는 깔깔거리면서 배꼽을 잡고 웃으시네요. 옆에 있던 처형과 처제, 처남도 두 손 두 발 다 들고 뒤로 나자빠집니다. 아빠가 “너어~” 하면서 하얀 이빨을 으르릉거리며 두 눈에 쌍심지를 돋우고 아들을 위협해 보지만 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서현 아빠야, 얘 핸드폰 하나 사 줘라!”
사실 녀석에게는 핸드폰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아들의 필요에서라기보다는 아빠 엄마가 필요해서 말입니다. 삼 일 전, 현충일이었습니다. 방 안에서 이리 뒹굴고 저리 뒹굴고 있던 아들이 도저히 견딜 수 없었나 봅니다.
“아빠, 밖에 나가서 자전거 타고 놀면 안 돼요?”
“자전거 타고 싶어? 그 대신 아파트 안에서만 타야 한다. 지금 열한 시니까, 열한 시 사십 분까지 놀다가 들어와라.”
“네!”
“아파트 중앙 광장에 시계 있는 거 알지? 그 시계 보면서 늦지 않게 시간 맞춰서 들어와야 해!”
아빠는 인터넷 서핑을 하고 화초에 정성스럽게 물을 주기도 합니다. 오랜만에 아내와 허브차를 앞에 놓고 대화의 시간을 갖기도 하고요. 시계를 보니 열한 시 오십 분입니다. ‘곧 오겠지.’ 하며 살짝 고개를 내미는 걱정을 누르며 조금 더 기다려 봅니다. 열두 시가 넘어가자 엉덩이 아래 뭉개져 있던 걱정이라는 녀석이 자꾸 고개를 내밉니다. ‘이 녀석 보게. 무슨 일이 있나?’
“여보, 서현이가 왜 이렇게 안 들어오죠?”
아내가 먼저 걱정이 되는지 한 마디 던집니다.
“글쎄, 시간은 잘 지키는 녀석인데.”
“혹시 사고 난 건 아니겠죠?”
“아파트 안에서만 놀기로 했는데 사고 날 리가 있겠어요?”
“서현이한테 연락할 방법도 없고. 제가 한 번 일 층으로 내려가서 기다려 볼게요.”
오후 네 시 정도 되었을 때 아들이 또 밖에 나가 놀겠다고 떼를 씁니다. 조금 전 일로 인해 외출 금지령이 암묵적으로 내려져 있는 상태라 눈치를 살피면서 방 안에서만 보내고 있던 아들이 도저히 견디지 못하겠나 봅니다. 동화책을 읽기도 하고 딱지치기를 하기도 하면서 오후 내내 집 안에 머물러 보지만, 가슴 속에서 일렁이는 바깥 공기를 향한 십대의 힘찬 기상과 팔다리로 오르내리는 왕성한 혈류를 녀석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벅찬가 봅니다. 간질간질 근질근질하겠지요.
“서현아, 그러면 요 앞 놀이터에서만 놀 수 있겠니?”
“네!”
앞뒤 잴 게 있나요, 밖으로만 나갈 수 있다면야 그깟 약속쯤은.
집 앞에 있는 놀이터에서만 논다면 안심입니다. 16층에서 내려다보면 개미처럼 작게 보이지만, 그물 타기와 미끄럼틀에서 뛰노는 아들의 모습이 잘 보입니다.
“서현아, 꼭 거기서만 놀고 이따가 부르면 잽싸게 올라와라.”
16층에서 아들을 향하여 보낸 메시지가 놀이터를 울리고 아파트 각 층을 울리면서 우리 집에까지 메아리쳐 올라옵니다. 소음으로 지역 주민에게 민폐를 끼쳐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네요.
삼십 분 후에 녀석이 잘 있겠지 하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아빠가 베란다 난간에서 아래를 내려다봅니다. 혹시나가 역시나가 되어 버렸습니다. 서현이 비슷한 녀석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네요. 수탉이 되어 아래를 향해 목을 빼고 울어 보지만 아들은 대답이 없습니다. ‘이 녀석, 기어코 아빠 말을 듣지 않네.’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옵니다. ‘들어오기만 해 봐라. 그냥 콱!’
아빠 엄마가 이런 일을 경험하지 않기 위해서는, 그리고 그 일로 아들이 곤경을 치르는 악순환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핸드폰이 필요합니다. 학교 수업은 끝났는데 일찍 들어오지 않고 연락이 없을 때, 학원 갔다가 시간에 맞춰 집으로 들어오지 않을 때, 놀러 나갔다가 소식이 닿지 않을 때, 서현이에게 핸드폰이 있었다면 아빠의 머리 위에 근심의 똬리도 틀지 않을 것입니다.
반 아이들 가운데 절반 넘게 이미 핸드폰을 갖고 있다고 하지만, 그래도 왠지 초등학교 삼학년인 아들에게 핸드폰을 사 주기는 너무 이르다는 생각이 듭니다. 핸드폰 게임에 빠질 수도 있고 멋모르고 유료 사이트에 들어가 천문학적인 사용료를 물어야 할 수도 있으니까요. 무엇 하나 잘 챙기지 못하고 잘 흘리는 녀석이 핸드폰을 사 주면 사 주는 대로 잃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