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도 마음도 어른이니까
나는 생굴을 좋아하는 어린이였다. 초구추장도 없이, 굴뿐 아니라 해삼과 멍게와 낙지를 주는 족족 받아먹었다. 어른들이 반쯤 감탄하고 반쯤 기겁하는 것을 즐기기도 했지만 일종의 자부심이이 더 컸다. 나는 다른 어린이와 다르다는, 지극히 어린이다운 자부심 말이다.
요즘은 생굴보다 익힌 굴을 즐겨 먹는다. 나이들면 입맛에 이런저런 변화가 생기는데 나는 굴뿐 아니라 다른 식재료도 대체로 익혀 먹는 것을 선호하게 되었다. 아마 절정기를 지난 육체가 본능적으로 위험을 피하려는 게 아닌가 싶다. 문자 그대로, 더 이상 어린이가 아닌 것이다.(물론 어른의 관심을 갈구하지도 않는다)
쌀쌀한 날씨엔 전골이 최고다. 다양한 재료를 갖추는 것도 좋지만 지친 몸으로 귀가해 두세 가지만 넣고 후다닥 끓여먹는 것도 좋다. 나는 육수를 따로 내지 않는 편이다. 국물을 적게 잡으면 재료에서 나오는 국물로 충분한데 겨울 냄비 요리에 가장 좋은 것은 단연 굴이다.
굴
양배추
파
1. 굴을 소금물에서 재빨리 흔들어 더러움과 혹시 남아 있을 지 모르는 껍질을 제거한다.
2. 양배추를 필요한 만큼 한 장씩 뜯어내 씻은 후 먹기 좋은 크기로 썬다(통째로 썰면 마른 단면을 영원히 먹어야 한다).
3. 파를 고명으로 넣고 싶다면 얇게, 야채로 간주한다면 도톰하게 썬다. 열렬한 파 애호가로서 나는 언제나 후자다.
4. 전골냄비나 프라이팬에 양배추를 담고 물을 붓는다.
5. 양배추가 익으면 굴을 넣는다.
6. 굴을 넣어서 내려간 국물 온도가 회복되면 맛을 보아가며 소금으로 간한다. 굴에서 짠맛이 나오니 소금을 평소보다 적게 넣어야 한다.
7. 파를 넣고 다시 내려간 온도가 회복되자마자 불에서 내린다.
양배추 대신 배추나 청경채를 넣어도 괜찮고, 좋아하는 버섯을 넣는 것도 좋다. 넣고 싶은 것을 에라 모르겠다 몽땅 넣어도 뭐, 말릴 생각은 없다. 전골이란 그런 것이다. 재료가 계량되지 않은 거도 그런 이유에서다. 먹고 싶은 것을 먹고 싶은 만큼 먹을 수 없다면 뭐하러 어른을 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