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기름에 구운 아니 튀긴 야채
날 베이컨을 먹어 본 적 있는가? 나는 있다. 내가 어렸을 때는 남대문 시장에서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물건을 팔았다. 초코칩 쿠키니, 냉동 피자니 하는 것들 말이다. 그렇게 가끔 맛본 미제 식품들 중 베이컨 통조림이 있었다. 어린 내 품에 꽉 차는, 아마 1킬로는 나갔지 싶을 어마어마한 깡통 안에 베이컨이 더 쑤셔 넣기도 힘들 정도로 들어차 있었다. 베이컨은 지금도 비싸지만 그때는 정말 비쌌다. 한 팩 사와 봤자 식구도 많으니 한두 장씩이 다인 게 서러웠는데 이 베이컨은 먹어도 먹어도 끝이 없었고 식빵에 다섯 장씩, 끼우는 게 아니라 얹어 먹기도 했다(그래야 빵 한 쪽당 베이컨. 섭취량이 늘어난다).
따져 보면 날 베이컨은 아니었다. 입천장이 까질 정도로 바삭바삭하게 쪼그라든 데다 흘러나온 기름이 다시 굳어서 껴있었으니 아마도 깡통 째 가열했을 것이다. 하지만 불을 쓰지 않고 그냥 깡통째 퍼먹을 때의 신나는 기분, 그 야만적인 통쾌함은 문자 그대로, 날것이 주는 해방감이었다. 베이컨 팩을 뜯어 프라이팬에 올려놓으려다 말고 한입이라도 그대로 먹을까 하는 유혹을 나는 아직도 느낀다. 목숨이 아까워서 못 그러고 있지만 말이다.
괜찮지 않나? 날로 먹는 햄은 많잖아. 소금물에 재고 훈제까지 했으니 괜찮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내부 온도가 63도 이상으로 올라가지 않는다면 박테리아는 박멸되지 않으며, 요새는 연기를 직접 쐬는 대신 훈연액을 뿌려서 풍미만 낸 제품도 많다. 그렇기에 해방감이고 나발이고 일단 포장의 설명부터 읽어야 한다.
베이컨은 보통 날로 먹을 수 없고, 햄이나 소시지도 안 되는 제품도 많으며 훈제 오리도 익히는 편이 안전하다. 포장을 반드시 확인하되 애매하면 안전한 길로 가자. 그리고 그김에 이런저런 야채를 같이 굽는 것이다. 오리 기름에 튀기듯 구워진 야채에 한번 맛들리면 야채 먹으려고 오리를 굽고 그런다.
훈제오리
당근
고구마
1. 당근과 고구마를 흐르는 물에서 칼로 긁어 가며 깨끗이 손질한다. 껍질을 벗길 필요는 없지만 너무 두껍거나 싫어한다면 물론 얘기가 달라진다.
2. 1을 동글동글 썰어서 내열 접시에 겹치지 않게 깐다.
3. 2를 전자렌지로 익힌다. 먼저 5분을 돌린 후 딱딱하면 3-5분 더 돌린다. 흐물흐물하면 안 되고 2/3쯤 익혀 설겅거리는 것을 목표로 한다.
4. 3에 훈제 오리를 겹치지 않게, 그러나 빼곡하게 올린다.
5. 오븐 그릴(구이 기능)에서 한 번 뒤집어 가며 10분 가량 굽는다. 행여 오리기름이 흘러내리는 사각지대가 생겨 소외되는 야채가 없도록 주의한다. 당근과 고구마가 빠짐없이 절여지는 게 중요한데, 섬세한 요리가 아니므로 가끔 열어보며 확인해도 괜찮다.
6. 감자나 양파 등 다른 야채를 사용해도 물론 괜찮은데 덜 단단한 야채, 이를테면 양배추의 경우 전자렌지에 익히는 단계를 생략할 수 있다. 좋아하는 야채 혹은 냉장고에서 죽어가는 야채로 이것저것 도전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