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름과 무기력의 원인

日常

by Telos

한 때 대한민국에서 가장 게으르게 산 적이 있다. 치열한 대학 입시를 마친 뒤, 대학생의 첫 여름 방학이 주는 특권이었다. 매일 12에 일어나 배달음식을 먹고 영화를 보다 낮잠에 들었다. 해가 지면 귀신같이 깨어나 밤공기를 즐기다, 돌아와서 다시 영화를 보며 새벽 4시에야 잠드는 생활이 반복됐다.



그해 여름 본 영화만 해도 200편은 훌쩍 넘었을 것이다. 그런데 개강이 다가오자 이런 신선놀음은 더 이상 행복하지 않았다.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속도가 현저히 느릴 뿐 아니라, 회복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시간이 한참 흐른 후 무기력의 정체를 어렴풋이 깨닫게 됐다. 무기력한 그 시절을 인생의 슬럼프라고 치부하기엔 20살의 나는 딱히 이루거나 실패한 게 없었다. 곰곰이 곱씹어보니 무기력은 게으름에 대한 방어기제에 불과했다. 무기력이란 심리가 아니라 게으름이라는 행동을 점검해야 했던 것이다.



게으름은 명확한 행동적 차원의 문제다. 한 번 나태해지기 시작하면 일주일이고 한 달이고 끝없이 그 상태에 머물게 된다. 외적으로는 아무것도 안 하는 상태인 것은 틀림이 없는데, 실제로는 제대로 쉬지 못한 채 더 깊은 무력감 속으로 빠져든다. 이런 심적 무정부 상태를 벗어나려면 탈출 속도를 넘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들지만, 이 또한 귀찮음 때문에 현실에 안주하며 더욱 큰 게으름의 소용돌이에 빠진다.



이처럼 게으름은 무기력이란 심리적 흠결을 동반한다. 행동으로서의 게으름이 반복되면 도파민·세르토닌과 같은 호르몬 메커니즘이 무너지고, 결국 마음속엔 무기력이란 심리가 정착하게 된다. 행동이 내면에 직접적인 타격을 가하는 셈이다. 무기력을 타개하기 위한 새로운 도전을 하려 해도 준비 과정이 번거로워 또 다른 무기력만 양산할 뿐이다. 게다가 무기력은 우울감과 매우 돈독한 친구라 만성적 무기력은 우울증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게으름의 원인은 무엇일까? 이러한 악순환의 근본원인은 "귀찮음에 따른 유예"에 있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해야 할 일이 쉽거나 의미가 없는 단순 반복적 행위라고 판단될 때 사람은 귀찮음을 느끼게 되고, 그 일을 미루게 된다. 그리고 미뤄둔 일들이 쌓여 어느 순간 아주 귀찮은, 심지어 어려운 일로 돌변해 가슴을 철렁 내려앉게 만든다.



결국 이 악순환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심리·행동·태도의 세 가지 차원을 모두 돌아봐야 한다. 특히 "귀찮음에 따른 유예"는 삶을 대하는 애티튜드 차원의 문제이자, "무기력-게으름" 연쇄사슬의 근본적 원인이다. 본인의 삶에 대한 태도를 바꾸지 않는다면 무기력한 게으른 인생은 바뀌지 않는다.



어설픈 태도를 쉽사리 바꾸지 않았던 나는 짐승과 다를 바 없는 시간 속에서 여러 상처를 견뎌야만 했다. 말초적 달콤함에 매몰되어 중추신경을 흔드는 쾌를 향해 달려가지 못했다. 눈 앞에 있는 나태의 성배를 마셔, 비참하다 못한 비굴한 결과를 마주해야 했다.



게으름과 무기력은 깊게 생각을 해봐야 할 요소이다. 대부분의 요즘 젊은이들의 마음 한 켠을 차지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일단은 두고 봐야겠지만 이들에게 내린 잠정적인 처방은 있다. "아무리 무기력해도 씻기·청소·빨래·운동과 같은 일상적 요소는 반드시 챙기자."



일상적인 것은 사소하기에 미룰 대상이 아니라, 하루(日)에 반드시 해내야 하는 상수(常數)가 되어야 한다. 이 작은 상수들이 쌓이면 태도, 행동, 심리의 악순환을 끊어 낼 탈출 속도의 역치가 점점 낮아질 것이다.



조급해하지 않되, 느긋해하지도 않는 그 균형이 진정한 변화의 시작일 것이다.


《아비정전》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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