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常
어릴 때부터 나는 행복을 인생의 궁극적 목표라고 믿어왔다. 자유가 곧 행복이라고 생각했기에, 내가 원하는 대로 사는 인생이 곧 행복한 인생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이 정의는 너무 포괄적이고 모호했다. 누군가를 골탕 먹이고 얻는 만족감을 자유의지의 발현이자 행복이라고 할 수 없듯, 자유와 행복을 같은 말로 쓰는 건 순진한 착각임을 깨달았다.
그쯤 나는 행복은 "질 좋은 쾌락"이라고 다시 정의해 보았다. 말초신경을 건드리는 일시적 즐거움부터, 중추신경을 흔드는 성취감에 이르기까지 쾌락의 스펙트럼은 다양하다. 그중 중추신경을 흔드는 쾌락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여기는 행복의 개념에 가깝다. 예컨대, 1달 내내 공부해서 좋은 성적을 받았을 때 느끼는 만족감과, 매일 러닝을 해서 마라톤 대회를 완주했을 때 느끼는 희열이 그렇다.
그러나 이런 행복을 얻기 위해서는 고통과 노력이 필연적으로 뒤따르며, 얻어진 행복의 지속기간도 그리 길지 않다.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 행복이 인생의 목표라는 전제가 참이라면, 행복하지 않은 순간은 실패이지 않는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불행해야만 한다. 귀류법적으로 전제가 틀렸다는 것일 테다.
이러한 고민 중 조던 피터슨의 강연을 접하게 됐다.
그는 인생의 목표는 행복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단언한다. 행복은 우리가 느끼는 일시적 ‘기분’ 일뿐, 삶 전체를 이끌어 줄 나침반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대신 행복이라는 현상이 찾아왔을 때 그 원인을 분석하라고 조언한다. 행복이 온 것은 당신이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행복 대신 무엇을 추구해야 할까? 피터슨은 두 가지를 제시한다.
첫째, ‘내가 될 수 있는 사람’을 향해 나아가라.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내가 쌓아온 결과물일 뿐이며, 아직 드러나지 않은 가능세계 속의 나를 끊임없이 이끌어 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만의 '최고의 선'에 대한 개념을 확립해나가야 한다. 내가 본질적으로 어떤 천성과 잠재력, 적성과 능력을 타고났는지 파악해 이를 사회와 융화하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해야만 한다.
둘째, 나의 인격을 최대한 개선해나가야 한다. 인생은 짧고 힘들기에 가치 있는 일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 나에게 가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알고 그를 해야만 한다. 동시에 불필요한 것들을 도려내야 한다. 운이 좋은 사람이라 그 일을 조심스레 해낸다면 아마도 행복이 때때로 나를 찾아올 것이다.
피터슨의 말은 정답이 아닐 수도 있지만 행복의 대체목표들을 제시해 주는 듯하다. 개인적 가치와 사회적 현실을 알아가며 융합하는 것은 행복을 대체하는 인생의 목표가 될 수 있을 듯하다. 동시에 존재론적 회의가 드는 것은 인격 개선을 통해 봉합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두 목표를 부단히 쫓는다면, 인생의 어두운 시기가 왔을 때, 내가 타락하지 않고 견뎌낼 수 있게 해 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