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 방송사

주간曺選

by Telos

대한민국의 교육제도는 치열한 입시 및 취업 경쟁 속에서 우리에게 삶의 철학적 토대를 제공하지 못했고, 이 빈자리는 물질만능주의와 외모지상주의 같은 왜곡된 가치관이 빠르게 메우고 있다. 그런 가운데 젊은 세대의 가치관을 가장 은밀하고 강력하게 형성하는 주체는 다름 아닌 "예능 방송사"다. 젊은 세대는 뉴스를 보지 않더라도, ‘나 혼자 산다’나 ‘유퀴즈 온 더 블록’ 같은 예능은 여전히 놓치지 않고 챙겨 본다.



SNS가 대중문화의 중심이 되기 전까지만 해도, 예능은 트렌드와 밈을 선도해 왔다. 인터넷에 떠도는 대부분의 개그 코드와 밈은 TV 예능에서 파생되었고, 지금도 ‘미운 오리 새끼’, ‘나는 솔로’ 같은 프로그램이 매주 수백만 명의 대화를 이끈다. 현재는 플랫폼 다변화로 일부 트렌드 생산 기능이 SNS와 OTT로 옮겨 갔지만, 지상파 예능의 영향력은 여전히 강력하다.



시청률과 인기가 모든 것을 좌우하는 예능 제작 환경에서는 자극적이고 파격적인 연출이 유혹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상파 예능의 공적 책임은 여전히 크다. 무료로 전파할 권한을 국가로부터 부여받은 만큼, 방송사는 시청자에게 재미뿐 아니라 긍정적 관념도 함께 전해야 한다. 단순히 욕설을 삐 처리하고 흡연 장면을 모자이크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이상의 관념 형성에 책임이 있다.



시대별 예능 포맷을 살펴보면(본인이 인지한), 요리→음악 경연→여행→관찰·리얼리티→소개팅→육아 리얼리티로 변화해 왔다. 하나의 포맷이 티핑포인트를 만들면 유사 프로그램이 우후죽순 등장하다가 곧 피로감을 유발하고, 새로운 장르로 이동하는 모습이 반복된다. 이런 예능 사이클이 우리 사회에 남긴 관념은 무엇인지 돌아보면 여행 예능은 욜로 라이프를 부추겼고, 관찰·소개팅 예능은 외모지상주의와 상대적 박탈감을 강화했다. 육아 리얼리티는 ‘결혼과 육아는 고달프다’는 인식을 심어 결혼회피와 저출산 분위기를 조장했다.



그런 점에서 최근 유튜브에서 EBS 다큐와 과거의 예능이 역주행하며 인기를 끌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만하다. 시청자들이 여전히 ‘재미와 함께 교훈과 통찰을’을 제공하는 예능의 가치를 갈망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예컨대 과거의 ‘1박 2일’ 한 회차가 유튜브에서 2,000만 뷰를 달성한 것은 단순한 웃음 유발을 넘어 전국 관광지를 알리고 지역 주민의 삶을 조명하면서 재미와 가치를 동시에 전달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예능도 충분히 재미와 의미를 동시에 담을 수 있다면 자극적인 소재에만 의존할 이유는 없다.



따라서 지상파 예능은 다음 세 가지 혁신을 통해 존재 의의를 회복해야 할 것이다.



첫째, 사회적 가치 공백을 메울 부분들을 발굴하고 공공성을 담은 콘텐츠를 제작해야 한다. 예컨대 청년 취업의 고충과 보람을 보여주는 청년 취업 리얼리티나, 결혼과 육아의 가치를 조명할 수 있는 새로운 형식의 결혼·육아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긍정적 관념을 형성하는 것보다 부정적 관념을 형성하지 않는 것이 더욱 중요할 것이다.



둘째, 스타 연예인에 의존할 것이 아닌 전문 크리에이터·일반인들과 협업하여 콘텐츠의 질적·양적 성장을 도모해야 한다. 일반인들의 평범한 자취일상과 거주지를 조명한 유튜버 자취남은 86만 구독자를, 지역별 취직자들의 인터뷰를 통해 현실 연봉을 알리는 유튜버 캐치 TV는 33만 명의 구독자를 모았다. 스타 연예인 의존에서 벗어나면 콘텐츠의 폭이 넓어진다.



셋째, 자체 OTT 서비스를 UX 친화적으로 생성 혹은 개선해 시장의 흐름에 대응해야 할 것이다. OTT와 지상파의 큰 차이점은 영상을 멈출 수 있는지, 돌려볼 수 있는지, 찾아볼 수 있는지에 있다. 젊은 층들은 시간에 맞춰 영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날 때 영상을 찾아본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자체 OTT 서비스를 개발할 여력이 안된다면 대형 OTT에 전략적으로 콘텐츠를 공급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이러한 변화를 통해 지상파 예능은 단순한 ‘웃음 제공자’를 넘어 사회의 긍정적 가치를 확산하는 공적 플랫폼으로 거듭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더욱 자극적인 콘텐츠를 큰 규제 없이 생산할 수 있는 거대 OTT에 밀려 존재 이유를 상실할 날이 머지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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