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 공허의 시대
‘나는 왜 태어났을까?’, ‘내가 제일 잘하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어떤 직업을 골라야 할까?’. 서로 다른 질문처럼 보이지만 결국 하나로 수렴한다. 바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란 질문이다. 인간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 물음표를 피할 수 없었고, 그 답을 찾으려 애썼다. 어떤 답이라도 붙들어야만 불확실하고 고된 삶을 견딜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회는 대체로 합의 가능한 답을 만들어 왔다. 그 합의가 굳어지면 곧 성공의 기준이 됐다. 고대에는 번식과 공동체, 중세에는 종교, 근대에는 이성과 과학, 그리고 현대에는 돈과 자본. 기준이 생기면 공식도 생겼다. “이렇게 살면 성공한다”는 경로가 양산됐고, 사람들은 이를 교육받아 자신의 삶을 설계했다.
특히 현대 자본주의는 이 구조와 궁합이 좋다. 연봉, 아파트 가격과 평수, 팔로워 수처럼 성공이 명확한 수치로 환산되기 때문이다. 숫자는 삶의 이유를 간단히 제시해 준다. 더 높은 숫자를 위해 계획을 세우고 달려가도록 힘을 준다. 이 자체로 장점은 분명하다. 모두가 노력하고, 사회는 빠르게 성장한다.
하지만 완전해 보이는 체계에도 균열이 있다. 바로 ‘공허’다. 목표를 달성하는 순간은 뿌듯하지만 이내 공허감을 느낀다. 달성은 끝이 아니라 곧바로 다음 목표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좋은 대학에 합격하더라도, 좋은 직장에 취직하더라도, 승진을 하더라도 불안은 줄지 않는다. 잠깐 느끼는 기쁨은 안도감에 가깝고, 다시 열심히 해보자는 마음은 강박과 가깝다. 그러다 보니 사회 전체는 물질적으로 풍요로운데, 각 개인의 정신은 빈곤해진다.
저자는 이를 책의 제목 그대로 ‘공허의 시대’라 진단한다. 문명은 정점에 다다랐지만 인간 자체를 위한 자리는 줄고, 철학은 없다. 남는 것은 궁극적 목적으로서의 자본과, 그에 딸린 수많은 하부 목적뿐이다. 인간은 퀘스트를 수행하듯 목표를 좇고, 언젠가 끝이 보이는 미래를 어렴풋이 직감한 채 살아갈 뿐이다.
특히 목적주의가 극단으로 가면, 인간은 결국 기계와 다르지 않다. 목표를 달성하고, 곧바로 또 다른 목표를 세우는 과정의 반복. 이것이 쉽고 빠를수록 인간은 기계에 가까워진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시대는 그런 인간에게 가장 큰 보상을 제공해 왔다. 수능이 그랬고, 고시가 그랬고, 인사 고과가 그랬다.
그런데 시대가 바뀌었다. AI 기술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발전 속도가 빠를 뿐 아니라, 이미 수준급으로 올라와 있다. 자본주의가 보상해 온 것은 결국 ‘효율적으로 목표를 달성하는 능력’이었다. 그런데 그 능력의 상한선이 AI로 넘어간 순간, 인간은 같은 게임에서 이기기 어렵다. 목표 달성에 최적화된 인간은 더 이상 경쟁력이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공허의 시대>가 제안하는 답은 단순하다. 정답을 찾는 데 몰두하기보다, 살아가는 것 자체에 몰입하라는 것. 삶을 경험하는 밀도가 높아질수록 공허는 옅어진다고 한다. 인생의 목적을 찾지도 설정하지도 말고 그저 삶의 순간에 집중하라는 것이다.
진화론적 관점에서 우리는 어떤 목적 때문에 태어난 존재가 아니라, 우연히 살아남아 여기까지 온 존재다. 그렇다면 삶은 ‘정답’을 찾아야 완성되는 과제가 아니라, 애초에 정답이 없는 조건 위에서 벌어지는 경험에 가깝다. 유별난 목적이 없어서 허무한 게 아니라, 애초에 목적이 없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그러니 이번 생은 어쩌다 선물받은 하나의 여행과 다름이 없다. 무언가를 달성해야만 완성되는 삶이 아니라, 순간순간 우연과 운명과 숙명을 온몸으로 경험하고 느껴보는 삶. 그렇게 생을 마감할 때, 최소한 ‘내가 내 삶을 살지 못했다’는 후회는 줄어들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