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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여진 Nov 07. 2019

소심해도, 민감해도 괜찮다는 따뜻한 배려

영화 ‘메기’

1. GV

영화 '메기'는 GV가 필수적이다. 영화가 이해하기 어려운 상징물들로 가득 차서의 이유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감독 이옥섭이 이 영화와 사람에 대한 책임감과 애정이 듬뿍 묻어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꼭, 필히, 이 애정 어린 사람을 통해 영화 이야기를 들을 것.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영화를 해석하고 있으면, 나에게까지 영화와 사람이 소중해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것은 정말로 그녀의 능력이자 노력일 것이다.


'자기 손이 자기 딸내미'라고, 누구에게나 자신의 영화가 자식 같을 것이라고는 예상하지만.



2-1. 내용(줄거리)

영화는 전반적으로 '믿음'과 '의심'에 관한 내용으로 이루어진다.

여러 개의 에피소드가 인간 자체가 가지는 두 가지의 본능을 건드린다.


- 병원 내 야한 엑스레이 사진. 과연 누구의 것인가?

- 병원 사람들이 여러 사유로 출근하지 않았다. 과연 그 사유들이 사실인가?

- 메기가 튀어 올랐다. 과연 지진이 날 것인가?

- 동료가 발가락 반지를 끼고 있다. 과연 내 반지를 훔쳐 숨긴 것일까?

- 내 남자 친구의 전 여자 친구에게서 무언가를 들었다. 과연 그 무언가는 사실인가?


한 시간 반이라는 러닝타임 안에서 영화 '메기'는 이 모든 이야기들을 쏟아낸다. 이에 관해서 다양한 평들이 많지만, 그중에서 너무 많은(too much, 투머치) 것들이 들어갔다는 부정적인 의견도 보았다. 하지만, 뭐, 나는 반대다.


감히 말하는 것 같지만, 감독 이옥섭의 GV를 들으며 그녀가 세심하다고 생각했다. 저 모든 에피소드들은 우리가 필히 공감할 수밖에 없는 것들이었다. 우리가 소심하고 찌질하다 생각했던 모습들까지 솔직하게 담아냈다. 내가 잃어버린 반지가 있다면 무엇이든 비슷한 동그란 무언가가 있을 때 내 것이라고 의심하고 찌질해지지 않겠는가.


저것들은 인생의 단편을 꾹꾹 눌러 담은 압축본에 들어갈 충분한 명분들이 있었다. 이처럼 이옥섭은 당연하지만 다뤄지지 않았던 찌질한 본능들을 '괜찮다'라고, '다들 그렇게 고민한다'라고 말한다. 고민과 이야기를 같이 하자고 손을 내민다. 얼마나 다정한 사람인가.


2-2. 믿음과 의심, 과연

일부러 라임 맞추듯 써놓은 것도 없지 않아 있지만, 에피소드들 속 물음은 '과연'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그것은 부사로, '결과에 있어서도 참으로'라고 정의되어 있다.


여기서 궁금한 점이 생겼다. 결과에 있어서'도'라는 어구에. 그렇다면 과정에 있어서는 이미 참이라고 확신을 하지만 아직 결과에 있어서만 그 참, 거짓 여부를 의심하고 있다는 것 아닌가?


당연한 이야기로, 결과를 모르는 상태에서 사건의 정황이 '과연'이라는 의심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이것은 아주 예민한 문제이다. 의심은 상대방을 갉아먹는 듯 하지만, 결론적으로는 내 머릿속의 상대방을 괴롭히는 것이기에 나를 해치는 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과연'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가 있다. 자기 검열이 필요하다. 과정에 있어서 우리가 의심을 가질 정도로 확신이 있는지를 검열해야 한다. 상상 이상으로 대담하게.


영화에서는 그 모습이 영화 속 문소리와 이주영의 이야기로 나타난다. 문소리는 어렸을 적 겪었던 정황들로 의심 장치가 빠르게 작동한다. 하지만 이주영은 반대다. 이주영은 병원 사람들이 출근하지 않은 사유들이 사실인지에 대한 '과연'을 없애자고 문소리에게 권유한다. 그리고 문소리가 머릿속에서 '과연'을 없애도록 사건의 과정을 바꿔버린다. (직접 출근하지 않은 병원 직원 한 명의 집을 찾아가 확인시켜준다.) 문소리는 그 후로 모든 병원 직원들의 사유를 믿기로 하며, 이주영의 '믿음' 공식을 되뇐다.


그래, 중요한 것은 그 사유들이 사실인지 아닌지가 아니다. '믿음' 또한 과정에서 오게 되는 '과연' 중 하나라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이주영과 문소리는 직원 한 명의 사유에 대해서만 진실 여부를 확인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그들이 모든 직원들을 믿게 되는 엄청난 작용을 일으킨다.


그렇다면 우리는 결과에 큰 의미를 둘 필요가 없지 않은가? 과정이 바뀔 수 있다는 사실. 이를 명심해야 한다. 이에 따라 우리의 '과연'은 믿음과 의심 두 갈래를 재빠르게 왔다 갔다 한다. 결과 때문이 아니다. 이걸 아는데도 스트레스받는다면 이주영과 문소리처럼 직접 과정을 바꾸는 노력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는가.


결과에 도달하기까지 우리는 수많은 '과연'의 과정들을 오간다. 결과는 오히려 간단할지도 모른다. 확실한 건 결과는 미래형이다. 앞으로의 내 대처가 어떻게 될지는 결과를 통해 나타난다. 오히려 '과연'은 천국과 지옥을 순식간에 오가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자가 검열을 하자는 이야기는 단순히 의심을 없애자는 것이 아니다. 섣불리 의심과 믿음을 가지지 말자는 것. 그 '과연'의 과정을 처연하게 걷지 말자는 것. 결과로 인해서 가지는 상처와 피해는 일시적이고, 미래의 것들을 준비할 수 있는 도약임을 깨닫는 것. 딱 이 정도일 뿐이다.



3-1. 메기

영화에는 커다란 상징물 두 개가 나온다. 메기와 싱크홀. 둘 다 완벽히 다정한 시선에서 나온 것들이다. 앞서 말했듯이, 이옥섭은 사람에 대한 배려와 고민들이 풍부한 사람이다. 의심과 믿음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그 등장인물들이 겪는(혹은 현실에서 사람들이 겪었을 법한) 어려움에 깊이 공감하려 한다. 해결까지는 못하더라도. 그것들을 상징하는 게 메기와 싱크홀이다.


메기는 사건의 모든 일을 알고 있는 듯한 타자로 등장한다. 단순히 객관적으로 내러티브를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이주영의 의심을 걱정한다. 혹은 사람 자체를 걱정한다.


'왜 굳이 메기였냐'는 질문에 이옥섭은 이야기한다. 메기라는 물고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캐릭터로써 존재하는 것이라고.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이옥섭이 의심 소재를 깊게 고민했을 때, 분명 그녀의 데이터 베이스가 기반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는 것은 의심이 다 끝난, 결과가 도출된 것들이 많았다는 것 아닌가. 그녀는 그녀의 데이터 베이스를 객관적으로 돌아볼 수 있는 타자가 된 것이고, 결국 영화가 만들어지면서 그 타자를 '메기'라는 캐릭터로 투영한 것이 아닐까.


메기는 이옥섭이 사람과 의심이라는 소재들에 대해 베풀 수 있는 배려의 캐릭터였다. 메기는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 그렇지만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에 으스대지도, 관전만 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이주영과 함께 하고 싶어 한다. 영화 후반부, 이주영이 의심의 결과를 마주하러 구교환을 만나러 갈 때, 메기를 데리고 간 것도 그런 의미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3-2. 싱크홀

그렇다면 싱크홀은? 사건이 시작하기 전 긴장되는 순간부터, 의심이 지나가고 결과가 나타나기까지의 상황들을 아울러 말한다. 그 상황이 만들어 낸 우울함, 불안함 등의 깊이 등.


싱크홀은 땅꺼짐 현상이다. 우리가 잘 다니던 바닥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것. 재해이다. 이 재해는 영화 속에 여러 번 등장한다. 그리고 재해에 무심한 사람들, 재해가 불러온 일자리 창출 등, 사회 풍자적인 요소로써도 나타난다.


내가 집중하고 싶은 것도 재해로써의 싱크홀이다. 싱크홀은 명백히 인간에게 좋은 존재는 아니다. 그러므로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피하는 것이 맞다.


이주영이 구교환에게 의심을 품고 '과연'을 계속 만들어 냈다. 결과를 알아보러 구교환을 만나러 간 이주영. 의심이 참이었단 소식을 들은 후, 어마어마한 싱크홀이 또 등장한다. 구교환은 여기에 빠지게 된다. 싱크홀은 이주영이 만들어 낸 의심의 깊이를 포함한다. 어쩌면 의심으로 인해 스트레스 받았던 것까지도. 그리고 의심이 참이 될 때 생겼던 구교환에 대한 미움까지도.


그러니까 재해다. 좋은 것들은 들어있지 않은. 하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이주영은 싱크홀 안을 당황한 듯 들여다본다. 싱크홀에 빠진 구교환을 걱정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것이다. 이옥섭 감독은 영화를 만들 당시에 마지막 장면의 이주영처럼 구교환을 걱정해야 하는지 골몰했다. 그러나 개봉 이후 다양한 대화들을 하며, 싱크홀에 빠진 구교환을 그대로 두고 이주영이 당당하게 걸어가는 모습을 이제는 그릴 수 있다 말했다.


재해는 재해이다. 현실에서 일어난 싱크홀도. 그리고 내 마음속에 생긴 싱크홀도. 우리는 이를 무심하게 힐끗 보고 지나쳐서는 안 된다. 오히려 조금은 민감하게 반응해도 괜찮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을 꺼려한다. 요즘엔 그런 사람들을 다양하게 돌려 까기 하는 것 같다. 하지만 건강하지 않은 것들에 반응하고, 피하겠다는데. 가만히 있는 너네보단 낫지 않은가. 내가 내 살 길 찾겠다는데 뭐가 문젠가. 라고 말해주고 싶다.


이옥섭은 이런 것들을 따뜻하게 말해준다. 이주영은 구교환을 끝까지 걱정하는 미련한 모습까지도 보여준다. 그리고 의심에 대한 결과를 마주했을 때, 생각보다 무서워하는 모습까지도. 그럴 수 있다. 이런 것들을 싱크홀이라는 매개체로 보여준다. 다들 그랬다고. 하지만 싱크홀은 싱크홀이라고.


반대의 상황을 가정해도 똑같다. 의심의 깊이가 만든 싱크홀이 있다. 만약 의심이 거짓이라면? 그래도 우리는 그 구덩이에서 더 이상 머물러 있으면 안 된다. 문소리의 대사처럼.


우리가 구덩이에 빠졌을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더 구덩이를 파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얼른 빠져나오는 일이다


싱크홀은 재해다.



4. 이옥섭과 구교환

사실은 너무 고마웠다. 우리 인간 자체의 본능이지 않은가. 의심과 믿음은. 이것을 영화에 담아줘서 너무 고마웠다. 게다가 메기와 싱크홀로 등장인물들을 걱정해줘서, 관객들을 걱정해줘서 너무 고마웠다. 무엇보다도 이런 것들에 예민해져도 괜찮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 감사했다.


사소한 문제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터미네이터와 핵전쟁이 아닌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에겐, 심하다면 사활을 건 문제가 될 수 있다. 초능력 히어로들의 액션이 담긴 블록버스터보다, 당장 내 눈 앞사람과의 관계 속 블록버스터가 와 닿지 않겠는가. 이를 블록버스터 급으로 담은 감독 이옥섭과 배우 구교환은 그만큼 사람에 대한 애정이 많아 보인다.



++(스포 주의)++

"어, 전 여자 친구 때렸어." 영화 속 구교환이 말한다. 그리고 싱크홀에 빠진다.


그리고 이옥섭이 GV에서 이야기했다. 자신이 예전에 사귀었던 남자들은 체격이 크지 않았다고. 그리고 또 이야기했다. 체격이 좋아 자신을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면 든든하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나에게로 향했을 때는 정말 무서운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사실은, 사실이지 않은가. 더 끔찍한 것은 현실 세계에서 우리는 영화의 이주영처럼 싱크홀에 빠진 구교환을 버리고 가도 괜찮은지 고민할 것이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일어난 일들이기 때문에.


데이트 폭력에서 '데이트'란 어구는 사랑을 뺀 무미건조한 말이다. 특정 상황에서 일어난 것임을 알려주기 위한 지시어랄까. 실제로는 그냥 폭력이다.


영화 속 구교환의 전 여자 친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만의 극복 방법을 선택한다. 다시 일어서서 잘 살아간다. 이옥섭은 그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피해자들도 다시 잘 살아간다고. 그들만의 행성을 다시 일구고, 가꾼다고. 정말, 온기가 느껴지는 사람이다.


배우 구교환이 이런 이야기를 하겠다고 선택한 것도 상당히 고마움이 느껴진다. 실상 그렇지 않은 사람일 수 있으니까. 하지만 이 민감함에 공감해줄 수 있음에 고마운 것은, 공감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절대 온전하게 이것을 자체로 '느낄' 수는 없는 안타까운 상황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 영화를 통해 이옥섭과 구교환이 정말 따뜻한 사람들이라는 것은 변치 않는 진실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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