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비 효과
비정형의 둔탁한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서 기울어지고 비뚤어진 담장 위로 유리조각과 철조망이 둘러져 있고, 벗겨져 너덜거리는 페이트자국 위로 덧칠된 조각들이 가까스로 숨을 쉬고 있을 때, 이름 모를 어느 미장공의 능숙한 기교로 거칠게 흩뿌려진 시멘트 가루가 담장표면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7-80년대 산동네를 올라가면서 볼 수 있는 흔하디 흔한 담장의 모습입니다.
종석 긁기, 종석 뜯기 같은 공법은 종석과 몰탈을 혼합하여 벽면에 바르고 표면을 긁거나 뜯어내면서 거친 질감을 유도하는 미장 마감입니다. 7-80년대를 살아온 우리들이라면 동네 담장에서 많이 본 듯한 질감을 느끼실 수 있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약간 고급스러운 느낌이랄까 뭐 그렇습니다. 유행은 돌고 돈다는 말처럼 산동네 담장에서나 봤던 그 질감을 이제는 고급 건축물에서 보게 되었습니다. 내후성강판 ¹처럼 표면의 녹이 피막작용을 하여 부식을 방지하는 방법으로 일부러 녹을 발생시켜 마감재로 사용하는 것을 보면 낡은 것이 오히려 디자인의 소재가 되었습니다.
녹슨 철판, 깨진 돌조각, 썩은 목재, 빈티지 (Vintage)한 마루, 해진 천, 엔틱 (antique) 제품들이 새것과 조화롭지 못할 것 같지만 강한 대비를 통해 멋스러움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종석 뜯기 같은 거친 마감에 개미도 미끄러질 듯한 깔끔한 유리의 조합은 강한 대비로 고급스러운 멋이 나기도 하고, 노후된 건물에 최신식 주방을 강한 대비로 배치하면 나름 괜찮아 보입니다. 영화 <건축학개론>의 '서연의 집'에 있는 '우물'은 '새것'가운데 '옛것'이 어울려 새로운 감흥을 가져옵니다. 루브르 박물관 앞의 유리 피라미드 조형물인 루브르 피라미드는 근대에 건설된 것으로 한때 어울리지 않다는 평이 많았으나 현재는 루브르를 대표하는 조형물 ² 이 되었습니다. 주의할 점이 있다면 '양념반 후라이드반'이 아닌 낡은 것과 새것이 서로 포인트 효과를 가져올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습니다. 마치 색상 디자인을 할 때 주조색, 보조색, 강조색이 있는 것처럼 말이죠. 노후된 건물을 리모델링하거나 대수선함으로 건물의 가치를 올리고 싶다면 낡은 것과 새것, 엔틱과 모던의 강한 대비를 이용해 보는 것도 추천해 드립니다.
팍스 로마나(라틴어: Pax Romana)를 빗대어 학부시절 제 졸업작품에 '팍스 미디어(Pax Midea)'라 이름 붙인 기억이 납니다. 요즘은 실로 팍스 카페(Pax Cafe), 카페의 전성시대라 할만합니다. 요즘 카페는 이름 없는 생활 디자이너들의 아이디어 각축장이 되었습니다. 짬나는 시간에 커피 한 잔 하며 저비용으로 고효율을 노린 카페 인테리어를 감상하는 것도 하나의 재미입니다. 작은 점포와 주택을 개조해 만든 동네 카페가 정겹습니다. 유명한 디자이너는 없습니다. 3차원 모델링의 인테리어 도면과 거창한 컨셉 스케치북도 없습니다. 오롯이 카페 주인장의 감각이 디자인을 만들어냅니다. 디자인 뭐 별거 있습니까? 컵 하나 올려놓고도, '예쁘다'는 소리 들으면 그게 멋이지요. 오늘도 동네 카페 주인장의 '나대로 건축학'에 응원을 보냅니다.
주 1 : 저 합금강으로 일본에선 코르텐강(Cor-ten Steel)이라고 부릅니다. 우리나라 POSCO에서 1980년대 후반 고내후성 압연강재를 생산하면서 코르텐이라는 용어대신 내후성강판이라는 제품명을 사용하게 됩니다.
주 2 : 위키백과 설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