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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엔디 Sep 11. 2024

누군가의 미니어처로 사는 것

작품이 되어가는 단계

  건축설계를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치수'에 대한 감(感)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탓에 건축을 입문하는 사람이 우선하는 일은 자신을 둘러싼 모든 공간에 대한 치수를 몸으로 익히는 것입니다. 신체동작에 필요한 치수를 알기 위해 '휴먼 스케일 또는 휴먼 디자인'이란 도감(圖鑑)도 참조를 하면서 기초자료를 찾아봅니다. '의자와 책상의 높이는 얼마일까? 계단의 높이와 너비는? 휠체어가 통과할 수 있는 폭은? 주차구획 치수는? 경사로의 기울기는?' 이러한 자료를 통해 공간을 구성하고 계획하는데 보다 사실적인 도면을 작성할 수 있고, 데드 스페이스(Dead Space ; 불필요한 공간)를 없애면서 효율적인 최적의 공간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건축을 접해보지 못한 일반인이나 갓 입학한 건축과 학생에게 자기 집 평면을 그려보라고 하면 정말 재미있는 그림이 연출됩니다. 자기에게 익숙한 공간이나 좋아하는 공간은 운동장만하게 그리고, 관심이 없는 곳이나 잘 모르는 공간은 개미만 하게 그리는 것을 종종 보게 됩니다. 마치 '그림 심리 테스트'에서 아이가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은 크게, 그렇지 않은 사람은 상대적으로 작게 표현하는 것과 같습니다. 공간의 스케치에도 이런 심리가 나타나는 것을 보면 참 재미있습니다. ^^ 그래서 건축전문가는 그것을 도면이라 하지 않고 '그림(스케치)'이라고 합니다. 설계전 첫 미팅 시 그런 그림(?)은 사용자나 의뢰인의 니즈(Needs)를 파악한다는 측면에서 나름 의미는 있습니다. 


  그림이 설계도면이 되기 위해서는 실제적인 치수가 적용되어야 하고, 기능에 맞는 공간의 분할과 연계가 필요합니다. 때에 따라서는 철학적 사유를 포함한 건축해석이 따라붙기도 합니다. 거기까지 가면 이제 도면이 아니라 세계적인 건축가'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나 '베르나르 추미(Bernard Tschumi)'같은 거장의 작품이 되는 것이겠죠.




  컴퓨터 3D 설계가 상용화 되기 전까지만 해도 설계사무소에서는 프로젝트별로 우드락과 폼보드 등으로 대지 콘타(Contour)를 뜨고, 그 위에 건축모형을 만들어 배치하는 작업을 하곤 했습니다. 커터칼에 몇 번 손을 베이기도 했지만 설계사무소 수습생이 거쳐야 할 일련의 과정인지라 조심하는 수밖에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모형은 전체 메스(Mass)를 한눈에 볼 수 있어 좋습니다. 그런 탓에 설계자나 클라이언트 모두 작게 만들어진 모형을 보면서 의사소통을 하면 이해의 폭을 상당히 줄일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주변에 미니어처피규어를 좋아해서 수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분은 피카추만 모아서 자기 책상 위로 잔뜩 진열해 놓았습니다. 또 다른 분은 자동차며 건설장비며 비행기 모형을 수집하느라 방 한 칸을 다 할애할 정도입니다. 미니어처에 끌리는 것은 아마 전지적(?) 시점에서 독차지하고 싶은 소유욕¹에서 기인하는 심리적 행태가 아닌가 합니다.




  살아간다는 것은 전문가의 손이 닿기 전에 그린 '그림(스케치)'과 같습니다. 살아 본 적이 없는 삶을 걸어가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우스갯소리로 '죄송합니다. 결혼이 처음이라', '죄송합니다. 대통령이 처음이라', '죄송합니다. 이번 생은 처음이라......' , ‘죄송합니다. 부모가 되어 본 적이 없어서',라고 말하는 것도 어색하지 않습니다. 내게 보이는 대로 해석을 하고, 내게 닥친 일이 제일 커 보입니다. 나와 관련이 없는 것은 내 관심의 대상이 아닙니다. 우리는 세상에 태어나 처음 살아보는 인생으로 '제대로 된 도면'을 그릴 수가 없습니다. 치수를 넣어주고, 자리를 잡고, 해석해 줄 누군가²가 필요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삶이 균형이 잡히고 군더더기 없는 '시간 여행자'로 나만의 '인생작품'을 만들 수 있습니다. 때에 따라서는 '거장의 작품'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삶의 전체를 한눈에 바라보면서 나를 좀 더 사랑하고 보듬어줄 수 있는 하나의 투사물(投射物)로 만들 수 없지만, 하늘을 올려다보아 구름이 흘러가고, 쏟아지는 밤하늘의 별들을 감상하며, 지구별 속에서 오늘을 살고 있는 '나'는, 존재함으로써 누군가가 그토록 사랑하고 독차지하고 싶은 누군가의 미니어처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주 1 : 글쓴이의 주관적 해석입니다. ^^;;

주 2 : '누군가'가 '누군지'는 독자의 판단에 맡깁니다. ㅎㅎ

주 3 : 대문사진 출처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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