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아파하는 마음
맹인 두 사람이 길 가에 앉았다가 예수가 지나가신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가 소리를 지르니 군중들이 그들을 저지하고 꾸짖습니다. 간신히 예수 앞에 당도한 그들은 결국 예수의 주목을 끌게 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要我为你们作什么)" "주여! 우리의 눈 뜨기를 원하나이다. (主阿,要我们的眼睛能看见)"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사 '그들의 눈을 만지시니 곧 보게 되었다(把他们的眼睛一摸,他们立刻看见)'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마태복음 20장)
두 맹인의 간구함을 듣고 예수님이 '불쌍히 여겼다'는 말은 중국어로 이렇게 표현을 합니다. '耶稣就动了慈心 (바로 측은한 마음이 동(動)했다. 사랑(자비)하는 마음이 생겼다.)' 측은지심(惻隱之心)이라고 해야 할까요? 한마디로 불쌍한 마음이 올라왔다고 하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국제어린이양육기구 '컴패션'이라는 단체가 있습니다. 전 세계에 퍼져있는 불우하고 가난한 어린이를 양육하고 후원하는 일을 하는 단체입니다. 홈페이지를 방문하면 이런 문구가 있습니다. '함께 아파하는 마음, 컴패션을 소개합니다.' NIV 성경에는 위 본문을 'Compassion'이란 단어로 설명합니다. 'Jesus had compassion on them' 그들을 보고 '함께 아파했다'는 것이죠.
저는 MBTI 성격유형검사에서 T(사고)와 F(감정) 사이에서 묘한 줄다리기를 합니다. T가 52%, F가 48%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 한 직원이 출근하는 길에 전화가 왔습니다. 운전하는 도중에 길도 막히고, 눈까지 오는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을 장황하게 설명을 합니다. 대충 들어주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저녁에 집에 와서 딸과 이야기하면서 '오늘의 짜증'을 이야기했습니다. "아니, 그래서 나보고 어쩌라는 건지 전화로 나한테 구구절절 설명을 하더라...." 듣고 있던 딸이 "아빠, 그냥 속상한 일을 말하고 싶은 거지 그냥 속상하겠구나! 하면 되는 거야" "......" 듣고 보니 맞는 말입니다. 그냥 속상한 일을 공감해 주면 될 것을 공감능력 제로인 제가 이 부분을 놓쳤습니다. 대화를 통해 답을 얻을 때도 있지만 정답이 없어도 듣고 공감해 주면 감정이 해소되고 해결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두 번의 따뜻한 손
우리 딸아이가 8살-9살 되던 해였던 것 같습니다. 어떤 일 때문에 실의에 빠져 침울하게 의자에 앉아있었습니다. 직감적으로 분위기를 눈치챈 딸이 제게 다가옵니다. 아빠 손을 두 손으로 잡아주더니 "아빠! 잘 될 거야~" 아! 아이의 한마디에서 눈물이 쏟아질 것 같습니다. 위로(慰勞)는 나이와 상관이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아내의 바로 위 오빠가 아파트 옆라인에 살고 있습니다. 제가 어려서부터 귀여워하는 조카딸 '소리'가 있습니다. 마음도 착한데 예쁘기까지 합니다. 지금은 '고3'이니까 이제는 제법 숙녀티가 납니다. 초등학교 4-5학년때인 것 같은데 퇴근하면서 '소리'와 외부 계단에서 마주쳤습니다. "고모부~~~!" 반갑게 달려옵니다. 겨울인지라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니 조금 춥습니다. 제 손을 두 손으로 꼬옥 잡으면서 "고모부 춥지요~!" 합니다. 따스한 온기가 작은 손을 통해 전해집니다. 아직도 저는 가족끼리 만나면 그때 일을 말합니다. 너무 사랑스러운 '소리'이야기.
예수께로 달려와 어떻게든 도움을 받고자 했던 맹인 두 사람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본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을 저지하고 야단쳤던 군중은 긍휼함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질서를 외쳤겠지요. 마음에 어떠한 동요도 없었습니다. 그들의 소원을 듣는 순간 마음이 동(動) 하신 것은 예수님이었습니다. 누군가에게 따뜻한 손을 내밀어 줄 수 있고, 함께 아파하며 공감해 주는 일이 세상을 더 아름답게 만들 수 있다고 봅니다. 맹인의 눈을 뜨게 한 것은 '측은히 여기는 마음의 동(動)함'이 먼저라는 사실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저도 F지수를 4%만 올려놓고 싶습니다. T가 48%, F가 52%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