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에서 밖으로의 표출
군대 일병 때 부대 내에서 춤 경연대회를 한 적이 있습니다. 단체 춤 '군무(群舞)'와 군인들이 추는 춤 '군무(軍舞)'중 어떤 말을 지칭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군무대회'가 열렸습니다. 우승하면 포상휴가가 걸려있으니 쉬는 시간이면 분대별로 5-6명씩 춤연습 하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스트리트 우먼 파이터'같은 댄스를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춤'이라기보다는 건전가요를 틀어놓고 부드러운 '체조'를 한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습니다. '하늘엔 조각구름 떠있고~ 강물엔 유람선이 떠있고~ ' 가수 정수라의 '아! 대한민국'을 배경음악으로 해서 같은 동작의 춤을 추는 것입니다.
팔과 다리가 같이 올라가는 몸치였던 저는 자대 배치받은 지 얼마 안 된 상태에서 희한한 군무대회가 열렸으니 부담감이 백배였습니다. 더욱이 신입병사인지라 선임병들 기(氣)에 바짝 주눅 들어있는 상태에서 단체 춤동작을 따라 하려니 정말 하루하루가 고난의 연속입니다. 대회를 마치고 우리 팀이 우승을 했다면 1년 치 무용담을 만들 수 있었겠지만 예상대로 결과는 탈락입니다. 좌절한 선임병들이 제게 무언의 눈총을 보냅니다. '힝~ ' 눈물이 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래 다 내 잘못이다!! 됐냐!' (속으로 ㅠㅠ)
'무용이란 인간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감정이나 욕구들을 몸이라는 신체를 통해 표출해 내는 '몸짓의 언어'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형체 없는 감정과 욕구를 형체를 가진 몸의 움직임으로 정확히 표출할 때 관객들은 공감과 감동의 갈채를 보냅니다. 몸의 언어야말로 진정한 커뮤니케이션이기 때문이죠.'
< 최재희 안무가 인터뷰기사 중 >
최재희 안무가의 말처럼 형체 없는 감정과 욕구를 형체를 가진 몸의 움직임으로 표출하는 것이 '무용'이라 할 수 있듯이, 언어로 전달할 없는 다양한 표현방식이 각 종 '예술'이라는 형태로 표출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말로는 전할 수 없는 감정을 그림으로 나타내고, 느낌을 음악으로 나타내며, 욕망과 욕구를 몸짓으로 드러내게 됩니다.
어떤 의미를 전달하기에는 '글'이라는 것이 갑갑할 때가 있습니다. 같은 단어를 사용해도 뉘앙스에 따라 다른 해석이 되기도 하고, 한 가지 논리로 복합적인 상황을 풀어낼 수 없을 때 '이걸 어떻게 전달하지?' 하면서 다른 형태의 분출구를 찾아내려고 합니다. 그래서 시(詩)를 쓸 수밖에 없고, 소설(小說)이 비유적으로 설명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직설적으로 말하기에는 감추고 싶은 이야기도 있습니다. 비밀스러운 이야기며 공개할 수 없는 사적인 영역도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마치 '가면극'처럼 시대를 풍자하고, 권력자의 횡포를 고발하고 싶을 때 '탈'을 쓰는 것과 유사하다 할 것입니다. 어렸을 때 많이 읽었던 '이솝 우화(寓話)'도 그런 의미에서 동식물이나 사물을 주제로 비유적 의미전달의 한 방법으로 사용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요즘 들어 언어적인 갑갑함을 많이 느낍니다. 무엇인가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적당한 표현방법이 없습니다. 사실에 근거한 에세이나 논리적 기고문 같은 형식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영역이 있습니다. '그래서 소설을 쓰고, 시(詩)를 쓰게 되나?'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런 쪽으로는 문외한(門外漢)인지라 잘못생각하고 있다면 너그럽게 용서를 부탁드립니다.
성경에서 예수님도 수많은 비유를 들어 천국을 설명합니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다.(마 13:44) 천국은 마치.... 천국은 마치....',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꼬(마 11:16)'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예수님도 천국을 설명하기 위한 갑갑함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실체를 보여주고 싶은데 갖고 있는 언어로는 설명이 부족합니다. 비유를 통해서, 그림을 통해서, 기적과 예표를 통해서 전달해 주고 싶은 것이 아니었을까? 급기야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설명해 주고 싶은데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고난'이 필요했던 것은 아닐까?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로마서 5:8)'는 성경말씀을 보면 제 생각도 일견 타당성이 있어 보입니다.
TV 채널을 돌리다 문득 보게 되는 '스트리트 우먼 파이터 댄서'들의 몸놀림이 낯설고 어색하지만, 그 얼굴에 있는 진지함 속에서 나타내고자 하는 감정과 욕구를 읽어내고 싶습니다. 문학작품 속에 깃들어 있는 말 할 수 없는 '언어의 진지함'을 들여다보고 싶습니다.
뭔가 뜻이 있겠죠. 제가 아직 모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