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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엔디 Nov 04. 2024

먹(墨)은 폰트라고 해야 하나?

신문인시대

  하~ 또 암기사항 체크시간입니다. '군인의 길'은 멀고 멉니다. 저녁식사 후 티브이 시청시간에 우리 4명은 침상 끝에 차렷자세로 서서 '군인의 길'과 각종 '군대 수칙'을 외워야 합니다. 당연히 얼차려는 병행됩니다. 두 다리를 상단 관물대에 올려놓고 깍지 낀 두 손으로 몸을 버텨야 합니다. 손가락은 부러질 것 같고 피는 거꾸로 쏠립니다. 팔은 후들거리고 이마의 땀은 침상 장판으로 투두두둑 떨어집니다. 그때 또 하나님이 구원자를 보내주셨습니다. 기술장교 한 분이 내무반에 들어오면서 우리를 일으켜 세우고 명령합니다. 선임병들에게 가혹행위를 하지 말라고 경고한 후, 저를 지목합니다.


"네! 일병 아무개"

"자네 행정반으로 따라와!"


  본부행정반에 들어가니 아까 그 장교가 앉아있고, 서너 명의 행정병이 책상에서 업무를 보고 있습니다.


"자네! 나랑 일할 생각 있는가?"

"…… "


  다음날 아침 오전에 본부 행정반 기술장비계로 전보 발령이 났고, 그 후로 저는 속칭 군생활이 풀리게 됩니다. 사건이 있기 며칠 전, 본부 행정반에 펜을 빌려 글씨를 쓰고 나온 적이 있습니다. 마침 중대본부에서 행정병 1명이 더 필요하던 차에 제가 눈에 들어온 것이었습니다.




안평대군의 글씨

  세종의 3남 안평대군 이용(安平大君 李瑢)은 서예와 시문, 그림, 가야금에 능하였으며 한석봉과 함께 명필로 여겨집니다. 중학교를 졸업한 어머니의 필체는 자음, 모음, 받침이 따로 놀았기에 성적표 확인 서명란에 가끔씩 엄마의 필체로 사문서 위조를 자행(?)하기까지 했습니다. 반면에 일제강점기 때 초등학교도 못 나온 아버지는 진짜 명필이었습니다. 특히 어깨너머로 배운 한자 필체가 안평대군의 필체보다 조금 못했지 않나 싶습니다. 일필휘지(一筆揮之)로 써 내려가는 아버지의 글씨에 감탄한 공장장이 갓 입사한 신입에게 자재과를 맡겼을 정도니 공부깨나 한 사람으로 오해할 법합니다. 그 피가 일정 부분 제게 흐른 것은 다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릴 때는 악필로 서예시간에 공개망신을 당한 일도 있으니 저로서는 개과천선(改過遷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손글씨보다 컴퓨터 워드(word)를 좋아합니다. 생각의 흐름이 끊어지지 않도록 일단 원고에 쏟아붓고, 글의 흐름과 논리에 맞춰 수정 편집하는 방법을 자주 이용합니다. 워드프로세서가 '글 쓰는 도구'로써 최적화된 툴(tool)이 아닌가 합니다. 사실 개인용 컴퓨터가 보급되기 전까지만 해도 일기조차 못 쓰던 저였지만 워드프로세서의 매력에 빠지고 문서를 작성하는 습관이 들면서 자연스럽게 글을 쓰는 일이 익숙해진 것을 보면 분명 '펜'을 대신한 '새로운 도구'의 영향이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마 전통적인 붓으로 그림을 그려본 적이 없는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컴퓨터 그림에 재능을 발견하고 컴퓨터 화가로 활동하시는 분도 있을 거란 추측도 해봅니다.


  예전에 문인(文人) 또는 소설가(小說家)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담배연기 가득한 허름한 단칸방에 재떨이엔 담배꽁초가 가득하고, 쓰다 버려진 원고지가 바닥에 널려 쓰레기통에서 반은 넘쳐납니다. 며칠을 안 감았는지 까치머리를 한 작가가 긴 펜을 들고 조그마한 책상에 가부좌를 하고 있고, 밖에는 끼니를 걱정하는 아내의 원망과 신음이 차마 남편작가의 귀에 들어갈까 숨죽이는 서러움이 부엌에 가득합니다. 한강 작가가 인터뷰하면서 이런 말을 합니다. " 어릴 때 아버지는 유명한 소설가셨어요. 그 말은 우리가 가난했다는 것을 의미하고, 여러 번의 이사를 했습니다. 가구는 별로 없었고 집에 책만 많이 있었습니다. " (정확한 워딩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 의미는 이런 뜻이었습니다.)


   오전에 카페를 가면 브런치를 즐기며 노트북으로 무엇인가 열심히 글을 쓰는 분을 보게 됩니다. 여유롭고, 우아해 보입니다. 옷매무새는 세련되고, 자세는 반듯합니다. 다다다닥 다다다닥 자판 소리만 간간이 들리고, 주변은 잘 정돈되어 있습니다. 요즘 제가 느끼는 작가의 이미지입니다. 물론 그 이미지를 일반화시킬 수 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지필연묵(紙筆硯墨)을 현대의 도구로 바꾸면 어떻게 될까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다. 종이는 워드프로세서, 펜은 자판, 벼루는 전원(電源),  먹은 폰트라고 해야 할까요? 동양문화의 핵심적인 가치를 표현하는 문방사우(文房四友)도 이제는 격세지감(隔世之感)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도 시문과 서화를 사랑했던 조선시대 안평대군이나 서점가에 가득 메운 책을 좋아하고 문화를 즐기는 젊은 문인들은 예나 지금이나 함께 소통하며 창작의 기쁨을 누리고 있으니 그야말로 신문인시대(新文人時代)를 맞이하는 듯합니다. 그 속에서 살짝 숟가락 하나 올려놓아 봅니다. 엔지니어로서 브런치작가라는 타이틀 하나 거머쥔 것이 제가 오늘 하루를 즐길 수 있는 힘이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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