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쿠키라도
저 멀리서 수녀님이 걸어오면, 나는 냅다 달려가 인사를 했다. 어떻게 시작이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으레 수녀만 보면 달려가 인사하는 것이 내 일상이었다. 골목 끝에 수녀원이 있던 탓에 오고 가는 분들이 꽤 많았다. 단정하고 품위 있게 걷는 모습이 다섯 살 어린아이의 눈에도 남다르게 보였던 것 같다.
"인표야, 저기 수녀님 오시네."
꼬마가 달려가 인사하는 게 귀여웠는지 이번엔 어른들이 알려준다. 잠시 한눈 판 사이 지나쳐 버린 수녀님도 놓칠 수 없었다. 멀리까지 쫓아가 길을 막아 인사를 건네고 쓰다듬까지 받아냈다. 이 정도면 거의 스토킹 수준 아닌가.
엘리베이터에서도 종종 인사성 바른 아이들을 보곤 한다. 자기보다 큰 가방을 등에 메고 엘리베이터에 들어오면서 일면식 없는 어른에게 꾸뻑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
내릴 때도 배꼽 인사를 하면서
"안녕히 가세요."
예쁨은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밤새 내린 봄비 탓에 나뭇가지들이 잎과 꽃을 내보내려고 움찔움찔하고 있다. 조급한 목련은 벌써 뛰쳐나와 하얀 속살을 드러내며 봄을 끌어안는다. 우리 집 발코니엔 이미 철쭉꽃이 만개(滿開)했다. 마치 수녀를 보면 달려 나가 인사했던 어린 시절의 나처럼, 봄을 맞이한다.
봄은 그렇게 무엇이든 피어나게 만든다. 심지어 실패한 것조차도. 딸아이가 고등학생 때 집에서 쿠키를 만들었다. 실패해서 처참해진 모습도 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웃고 있다. 가끔은 저 실패한 쿠키처럼 삶이 타들어 갈 때가 있다. 이미 부서졌고 사용되지 못할 것처럼 낙심될 때가 있다. 초보운전 차량 뒤에 쓰여 있는 글귀처럼 "난 틀렸어 먼저 가~!"라고.
어린 시절, 노란 스마일 배지를 가슴에 달고 다니던 때가 있었다. 밝게 웃고, 친절하게 행동하자는 말이 배지처럼 붙어 있던 시절이었다. 마치 환하게 웃고 있는 저 쿠키랑 비슷했다. 당시에는 웃음마저도 배워야 했던 시절이었다.
나는 오늘도 가슴에 스마일 배지를 달았다 뺏다를 반복하고 있다. 억지로 웃어야 했던 그 시절처럼. 내게 필요한 것은 배지가 아니라, 생각보다 먼저 몸이 움직이던 그 시절의 호흡인지도 모르겠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웃음을 점점 잃어버리는 것 같아 어린 시절이 더욱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