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빈 목소리가 그의 삶마저 투명하게 만든다는 것에 대하여
말을 한다는 것에 생각해본 적이 있던가? 어딘가 빈듯한 공허하게 울리는 목소리가 나의 생각을 잡았다. 말을 못한다면,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면 어떨까? 속이 답답해 비명을 지르고 싶은 날이 나에게 왔을 때 막상 입을 벌려 낸 소리가 주변의 공기만큼의 밀도라면 나는 어떨까. 힘껏 내는 힘 없는 소리에 나는 가슴이 찢어졌다.
여행길에 올라 복잡한 마음을 안고 오는 날은 드물다. 대게 행복에 축축 젖은 냄새의 여행과는 달리 이번 여행은 한 숙소의 강아지를 만나며 달라졌다. 멀리서 들려오는 개의 목소리. 그것을 따라 갔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목소리의 비어있는 농도는 짖어졌다. 공기를 내뱉는 듯한 소리에 발걸음을 멈췄다. 소리를 낼 수 없다는 것 그는 지금 어떤 마음일까.
감히 내가 그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내게는 선명한 목소리와 엄마에게 물려받은 우렁찬 목청이 있으니까. 하지만 그와 더욱 반대이기에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한 박탈감을 상상했을 때 나는 무너졌다. 시작은 그랬을 것이다. 듣고 싶지 않아서 시끄러우니까. 그렇게 잘려나간 목소리는 이제 영영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그의 곁에 맴돌 것이다. 공기처럼 그곳에 있을 것이다.
그런 적이 있었다. 말을 할 수 있지만, 말할 수 없었던 상황들이 있었다. 두려워서 입술과 입술을 차마 떼지 못했고 공허한 소리조차 내뱉지 못했다. 그 때의 난 어렸고 무서웠다. 나를 둘러싼 손가락들이 눈빛들이 친구들이 무서웠다. 그들의 시선에서 벗어나기만을 기다렸다. 그렇게 나는 어른이 되었다. 그런데 어쩐지 눈빛과 손가락은 다른 형태로 내게 찾아온다. 전혀 다른 사건에서도 어렴풋 친구들이 떠올랐다. 덜컥 겁을 먹는다. 그리곤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로 얼어버린다. 오랜 세월이 지난 그 때처럼.
그 때 나는 말하고 싶었다. “이제 그만해. 더 이상은 그만.” 하지만 말하지 못했다. 다가올 보복이 두려워서 차마 입을 떼지 못하고 가만히 있었다. 나에게는 힘이 없었다. 스스로를 보살 필 힘 조차도. 두 다리를 일어세울 힘도 없었다. 그저 공기 같은 존재일 뿐이었다. 누군가에게는 보이지 않는 존재로, 또 누군가는 가볍게 대하는 존재로. 그래서 그럴까. 펜션 앞에서 벌벌 떨면서도 우리를 보며 꼬리를 흔들던 개의 모습은 마치 어릴 적 내가 하지 못했던 나의 절규 같았다. 공허한 목소리로 “이제 그만. 더 이상은 그만.”
목소리란, 하나의 생명이란 소중한 것이다. 그래서 함부로 빼앗아서도, 뱉어내도 안 된다. 머리가 복잡했다. 어릴 때의 나의 모습이 떠올라서,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어서 한이 차올랐다. 결국 펜션 주인에게 한 마디 말도 못하고 돌아나왔다. 복잡하다는 말을 변명 삼아서. 이미 잃은 목소리를 되찾을 방법을 모르겠다는 핑계로. 이제와서 어쩌겠다고 생각하며. 하지만, 아직 희망은 남아있다고 감히 생각한다. 그의 목소리는 잃었지만, 앞으로 잃을 목소리가 이 글로 인해 계속 소리를 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