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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약과 May 24. 2022

집착을 버리세요

집착을 했던가요?

매주  번씩 그림을 그리러 간다. 그곳에 가면 벌거 벗겨지는 기분이 되곤 하는데, 그림에서 나의 일부가 투영되기 때문이다. 가령, 내가 꼼꼼하게 스케치를 따고 있으면 선생님은 “느낌! 분위기! 내면 되요라고 한다. 그런데 나는 그런 것에 대해 아는  고개를 끄덕이곤 몰라서 다시 꼼꼼하게 스케치를 한다. 그러면 “! 좋아요!” 하고 말하는데 뭐가 바뀐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냥 허허 웃고 만다.


오늘은 저번 주에 작업했던 유화를 계속 이어서 했다. 한쪽 면만 채워진 강아지의 다른  얼굴을 채워야 했는데 한참을 하고 멀리서 보니 눈이 어딘가 엉성했다. 오늘은 선생님이 “집착을 버리세요라고 했다. 내가 집착을 했던가? 라는 생각을 하다가.  사실은 굉장한 집착을 가진 사람인건가? 하는 생각에 돌연 불안해졌다.  번은 사주를 보러 갔는데 이런 말을 듣기도 했다. “집착이 있네. 집착이, 스토커야.” 나는  말에 굉장한 상처를 입고 내가 스토커인지, 누군가를 쫓은 적이 없는데 어떻게 그런 사주를 가지게 되었는지 망신스러웠다. 그런데 이번에도 집착이라는 단어가 내게 들어왔고, 그것은 마치 그림을 넘어서 스스로가 집착하는 사람이 되는 것만 같았다. 돌연 붓을 내려놓고 도망을 가버리고 싶었지만, 조금씩 완성되는 그림 앞에서 포기할  없는 노릇이었다. (이것도 집착이라   있을까?)


오전부터 집착이라는 단어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나는 (이것도 집착인가, 나는 여전히 집착이란 단어를 집착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결국 애인에게 오늘 이런 일이 있었노라고 토로했다. 애인은 되려 그림에서의 집착은 좋은 것이 아니냐며, 세밀한 작업이 필요한 그림을 그리는 사람에게는 최고의 덕목이고 칭찬이 아니냐는 말을 했다. , 그런가. 어떻게 저런 해석이 가능한가. 나는 해석에 감탄했다.  머리에서 나올  없는 해석으로 집착이라는 단어는 굉장한 덕목이 되었다. 이제 나는 집착을 나의 강점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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