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잘해도 티가 나지 않는 게 인생!

너무 애쓰며 살지 말자!

by 홍당무

아주 오랜만에 브런치에 글을 쓴다. 가끔은 하고 싶은 말이 떠오를 때면 일기장에 글을 적거나 아이패드 굿노트에 내 마음을 적는다. 오늘 갑자기 생각지도 못한 일이 발생했다. 함께 청소를 하며 최선을 다해 노력하던 우리 단톡방 "일단 뜨겁게 청소하라"에 톡글이 하나 올라왔다.


"일하는 방식이 달라서 함께할 수 없다"는 내용이다. 이야기인즉슨, 나는 제주에서 숙박 업으로 7~8년을 했다. 하루 종일 청소하고 빨래하며 힘들었지만 고객이 주는 돈을 소중히 여겼고 화장실 청소할 때마다 기쁜 마음으로 닦았고 이불커버를 매일 널고 걷을 때마다 즐거움이 가득했다. 하물며 하루에 그 많은 이불커버를 다림질까지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다림질을 안 해도 구김이 잘 가지 않는 소재들이라는 걸 알았다.


이웃의 소개로 알게 된 분들에게서 청소 요청을 부탁받았다. 별로 하고 싶지는 않았다. 할 생각도 없었을뿐더러 나는 1월에 한 달간 떠날 중국여행에 들떠 있었다. 그런데 일단 집에서 가까웠다. 차로 1분 거리다. 그리고 기간도 길지 않았다. 대략 10일 정도의 기간이었다.


하기로 했고, 나 없는 1월 한 달 동안 대신 청소해 줄 언니도 소개해줬다. 그 민박집이 1월이면 종료되는 집이었기에 계속해야 하는 부담은 없었다. 작은 방 3개가 있는 숙소다. 월정리 바닷가 앞에 있어 손님들은 좋아하겠다 싶었다.


나는 처음부터 혼자 청소하는 게 싫었다. 1월에 맡아서 해줄 언니와 내 친한 친구 이렇게 셋이서 함께 하자고 했다. 방이 1개 일 때는 나 혼자 했고 2개 이상 방청소를 할 때는 꼭 셋이 모여 청소를 했다. 청소 후 빨래하고 건조까지 돌려야 해서 시간을 꽤 잡아먹었지만 나는 집이 가까워 한 두 번 정도는 왔다 갔다 하며 건조시간을 기다렸다.


그렇게 셋이 청소를 하고 나면 빠르게 청소가 끝나고 덜 피곤하다. 혼자서 방하나 청소하는 것보다 셋이서 방 3개 청소하는 것이 훨씬 덜 힘들다. 그리고 함께 도와준 언니와 친구는 청소하는 시간을 매일 기다렸다는 듯이 행복한 표정으로 청소준비를 시작한다. 누가 이렇게 기쁜 마음으로 청소를 하러 오는지 우리끼리도 웃음이 날 정도였다. 그래서 난 함께해 주는 사람들에게 정말 고마웠다.


나 없이 둘이 하는 날일 경우에는 빨래가 다 마를 때까지 집에 가질 못한다. 둘 다 집이 멀기 때문이다. 그럼 커피를 마시며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얘기하며 자기 시간을 투자해 가며 빨래를 기다린다. 워낙 가성비 숙소여서 방 한 개당 청소비도 얼마 되지 않는다. 단지 나를 도와 청소하는 일을 함께 즐거워해주는 시간을 함께 즐겼을 뿐이다.


한 번은 주인이 몇 가지 지적사항에 대해 문자가 왔다. 나는 함께 그 내용을 공유하며, 이러이러하니 더 꼼꼼하게 신중히 마무리까지 깔끔하게 잘합시다 하며 의기를 투합했다. 그 후로 더 열심히 꼼꼼히 크로스체크까지 해가면서 청소를 하고 빨래까지 마무리했다. 나 또한 몇 번을 오르내리며 체크하고 또 체크하고 신중 더 신중히 살피고 살폈다.


1월엔 손님 예약이 없다 하며 내 대신해줄 언니한테 미안함의 문자까지 보냈었는데 아직 시작도 안 한 상태에서 어제 숙소환기를 위해 주인이 숙소를 방문했었나 보다. 무엇을 보고 청소에 대한 판단을 내렸는지는 아직도 의문이다. 별로 물어보고 싶은 마음도 없다. 문자에는 우리와 일하는 방식이 다르니 안 하고 싶다는 내용만 있었다. 나한테 온 문자도 아니고 1월부터 맡아서 해줄 언니한테 그렇게 메시지가 왔다.


전달받은 그 내용은 나에게도 좀 황당할 뿐이었다. 그동안 청소는 내가 책임을 지고 했고 언니와 친구는 와서 도왔을 뿐인데, 그럼 나에게 전달해야 맞는 상황 아닌가? 난 언니한테 되려 미안한 마음만 생겼고 괜히 그로 인해 우리가 그렇게 열심히 즐겁게 했던 그 추억까지도 먹칠이 돼버린 셈이다.


아무리 청소를 잘해도 주인 입장에서는 맘에 들지 않을 수 있다. 안다. 내가 더 잘 안다. 왜? 사람을 쓰지 못하가 늘 내가 다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기 때문에 맘을 놓을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나도 처음으로 작년에 하던 숙소에 친구들에게 청소를 맡겨 본 적이 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나도 결국은 누군가에게 청소를 맡겨야 했다.


그 친구들이 청소를 얼마나 어떻게 잘하고 갔는지는 잘 모른다. 하지만 잘 못했어도 그건 그 친구들 탓을 할 수가 없다. 그리고 그냥 잘했다고 믿으면 되는 것이다. 확인할 필요도 없고 그것 때문에 다음 손님에게 컴플레인을 받아도 내 탓이다.


내 시간 다 내가면서 방 1개 청소비 2만 오천원을 받으며 11시부터 12시 반에 청소가 끝나도 3시는 돼야 빨래까지 정리될 수 있는 그 시간에 비하면 시간이 더 아까울 뿐이다. 4시간가량 시간을 허비하며 결국 돌아온 것은 수고했다는 말보단 일하는 방식이 안 맞으니 그만 하자는 이야기에 다시 문득 지나 날들이 떠올랐다.


도와주기 위해 선심을 썼을 뿐인데 돌아온 건 고소장이었다. 1년간 소송에 휘말리며 숙소에 미련을 다 떨쳐 버렸었는데,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하는 동안 정말 열정을 다 바쳐 청소했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돌아 온건 상처의 말뿐이었다.


작년 몇 군데 청소알바도 했었지만 사실, 청소 잘했다고 칭찬하는 대표는 하나도 없었다. 눈에 거슬리는 뭔가 하나에 대해 지적하기 바쁠 뿐이다. 갔더니 뭐가 안되었던데요, 거기 좀 신경 써서 다시 봐주셔야겠어요. 물론 웃으며 이야기한다. 듣는 나도 그렇게 기분 나쁠 정도는 아니다. 청소라는 것이 정말 상대적이다. 내 맘처럼 쏙 맘에 들게 할 수는 없다. 그 수많은 구석구석의 먼지, 내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머리카락 한 올 그런 것들은 분명 잘 보이겠지, 하지만 지워지지 않던 대리석 위에 오래된 자국을 말끔히 없애주고, 곰팡이를 싹 제거해줘 봤자 그런 것들에 대한 칭찬은 돌아오지 않는다.


나 혼자 애써봤자 알아주는 건 나 자신뿐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