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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당무 Aug 03. 2022

바비큐는 이제 그만.

어제저녁 바비큐 파티가 있었다. 제주에 내려와서 가장 많이 한 게 있다면 아마도 바비큐일 것이다. 제주에 정착하면 3년 동안은 손님을 치러야 한다는 말이 있다. 처음엔 바비큐 파티하는 것이 즐거웠다. 맛있는 고기와 술 그리고 사람들.


바비큐를 하기 위해서는 사실 고기만 구우면 되긴 하지만 소소하게 손이 가는 것들이 있다. 쌈장 만들기부터 마늘, 청양고추 썰기, 파무침, 상추도 씻어야 하고 밥도 해야 하고 은근히 손이 많이 간다. 좋아하는 것도 오래 하다 보면 싫증이 나는데 이제는 고기가 싫어지려고 한다.


제주살이 이제 9년 차. 그동안 바비큐만 200번은 더 한 것 같다. 하다못해 혼자 숯불 피워 고기를 구워 먹은 적도 있으니. 숯불고기를 엄청 좋아하기는 했나 보다. 어제도 여전히 바비큐를 준비하면서 간단히 해야지 하면서도 자꾸 심심한 테이블이 걱정돼 샐러드도 준비하고 된장국도 끓였다.


사실 얼마 전에 사촌동생 가족들이 열흘간 머물다 갔을 때도 바비큐를 했었는데 그땐 고기만 궈줘서 좀 미안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난 고기를 잘 먹었다. 하지만 어제는 고기 딱 한 점 먹고 샐러드 두 접시로 저녁을 때웠다. 술도 안 먹으려 했으나 분위기상 한 캔 정도 마셨다.


사람들을 좋아하고 술과 고기를 좋아해서 일상처럼 바비큐 파티가 항상 즐거웠지만 2~3년 전부터는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한 사람들과의 시간은 즐겁지만 나는 또 오늘 말하고 싶다. 바비큐를 하기 싫어졌던 그때부터 지금까지 난 지금 마음의 여유도 경제적 여유도 없다. 마냥 즐거워할 수 없는 내 상황이 바비큐 하기 싫은 탓으로 돌리는 건지도 모른다.


지난주부터 술을 좀 안 마셔 볼까 해서 저녁마다 술 마시던 습관을 참아보기 위해 일주일간 먹지 않았다. 술 마실 시간에 다른 곳에 집중하기로 했으니 더욱 술이 당기질 않았다. 이대로 술을 점점 멀리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몸도 더 가벼워졌고 건강해진 느낌이 들었다. 밤에 집중이 안되던 내게 밤 시간을 활용할 수 있는 정신이 생겼다는 것이 가장 큰 수확이다.


이번에 제주 내려와 좀 길게 머물면서 나 자신이 자꾸 변해감을 느꼈다. 그동안 살아왔던 과거의 나의 패턴들을 하나씩 고쳐나가고 싶어졌다. 이제 진짜 미안하지만 바비큐 파티는 정말 안녕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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