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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답게 사는 법, 코긴 자수

글· 사진 김병두

by 이십일프로


흔히 남자라면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이미지가 있다. 외향적이고 대범하고 리더십이 있어야 하는 것.



나는 안 그렇다. 소심해서 내 의견을 당당히 밝히기보다 거의 듣는 입장이다. 그래서 나 자신을 항상 못났다고 생각해왔고 스스로를 책망하곤 했다. 진짜 내 모습을, 그렇지 않은 척 감추곤 했다. 너무나 어색하게.



살아가다 보면 그동안 걸어온 길을 돌아보고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갈지 고민하는 갈림길에 선다. 이전 직장에서 내가 하는 일의 의미를 찾을 수 없었고 미래는 더더욱 그릴 수 없었다. 다른 사람이 지시하는 대로 사는 게 아니라 내가 진짜 좋아하고 평생 몰입할 수 있는 일이 뭔지 찾아 나서기로 했다. 어릴 적, 계단에 앉아 조립식 장난감을 뜯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한 자리에 앉아 만들었다. 처음 만들어도 곧잘 따라 만들었고 손으로 무언가 만드는 것에는 은근한 자신감이 있었다.



그럼 과연 무엇을 만들 것인가, 고민이 깊어졌다. 그때 책에서 본 글귀대로 행동했다.


“이것저것 직접 만들어 보고 경험해 보면서 소재가 내게 맞는지, 그 소재로 어떤 형태든 만들 수 있는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부터 해보는 게 좋다. 처음에 눈동냥으로 익혀서 뭔가를 만든 것처럼 '할 수 있는 것'이 분명 사람마다 있을 것이다. "

- 다가와 미유의 『만드는 것, 일로 삼았습니다』 중에서

봤을 때 끌리고 만들고 싶은 것을 하나씩 해보았다. 이 과정에서 일본 공예 사이트에서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이 바로 운명의 코긴 자수이다. 보자마자 첫눈에 사로잡혀 당장 만들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보아도 당시 국내에는 코긴 자수를 아는 사람도 없고, 코긴 자수를 배울 수 있는 그 어떤 자료도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일본에서 출간된 책을 주문하고 일본 코긴 자수 작가들과 재료 판매하시는 분들에게 메일로 하나씩 물어가며 정말 하나하나 익혀왔다. 당연하지만 재료도 일본에만 있어서 동대문 원단시장과 남대문시장 등을 뒤져가며 비슷한 재료를 공수하곤 했다. 이렇게 시작해서 어느덧 2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그 시간을 돌이켜보면 무에서 시작해서 그런지 지금은 스스로 대견한 마음도 든다.



처음 사람들의 반응을 보기 위해 삼청동 풍문여고 돌담길에 좌판을 열었다. 나는 작은 의자에 앉아 자수를 놓고 있었다. 삼청동답게 오가는 사람들이 많았고 신기하게도 사람들이 내가 만든 것을 예쁘게 봐주고 칭찬과 격려의 말을 해주었다. 칭찬을 듣고 나는 내 마음 한편에 갖고 있던 부정적 생각을 깨달았다. 만약 다른 사람이 나를 본다면 '무슨 남자가 한심스럽게 바느질이야?'라고 할 것만 같았다. 그런데 오히려 연세 지긋하신 할아버지께서 자수를 놓고 있는 모습을 보시곤 대단하고 멋지다는 말씀에 큰 충격과 감동을 받았다.



나조차 나를 인정하지 않았으며 그동안 내가 나 스스로를 가두고 있었구나, 하는 깨달음의 순간이었다.



한 시간이 지났을까, 들뜬 마음으로 자수를 놓던 중 갑자기 어떤 아저씨의 다급한 말소리가 들려왔다. "단속 왔어! 단속!" 좌판을 벌이고 있는 게 불법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순식간에 다가온 단속반한테 아무런 하소연도 하지 못한 채 내가 만든 물건은 물론 테이블까지 모두 압수당해버렸다. 생전 처음 겪은 일이라서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그야말로 멘붕이었지만 나는 오히려 기쁨과 자신감으로 가득 차올랐다. 내 손으로 만든 것을 다른 사람들이 보고 좋아해 주다니... 심장이 팔딱팔딱 뛰면서 살아있다는 걸 온몸으로 느꼈다. 가끔씩 지치거나 방향을 잃을 때 그때의 가슴 벅찼던 순간들을 떠올리면 다시금 힘을 얻곤 한다.



행복이란 무엇일까. 행복의 정의는 주관적이어서 각자 다 다르겠지만 내게 행복은 진정한 나를 인정하고 나만의 즐거움과 만족을 추구하며 균형있게 살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내가 아닌 채로 살아왔던 과거를 털어내고 나만의 행복을 찾기 위해 코긴 자수란 새로운 시도를 했다. 그 과정에서 소심한 내가 진정한 나라는 걸 인정하게 되었다. 그동안 나를 다른 사람들이나 사회적 관념과 비교하며 ‘하자’라고 생각했던 것이 결코 진짜 ‘하자’가 아닌 그저 나라는 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플리마켓에 나가서 판매를 하고 있을 때 찾아오신 고객에게 인사처럼 항상 하는 말이 있다. "일본 전통자수인 코긴 자수라고 하구요. 제가 직접 자수를 놓았어요. 남자가 자수라니 흔치 않죠?" 이렇게 이젠 나 자신을 남 앞에 당당히 밝힐 수 있게 되었다.


아직도 나는 하자 아닌 하자 투성이지만 나답게 살아갈 것이다. 쭈욱~!



김병두

일본의 눈이 많은 북쪽 지역 아오모리에서 에도시대 때부터 전해져 내려온 코긴 자수로 한 땀 한 땀 수를 놓아 생활 속 소품을 만들고 있답니다.

블로그 : blossommary.blog.me




독립잡지 "언니네 마당"

http://book.daum.net/detail/book.do?bookid=KOR9791196033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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