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 간다 / 글· 김태형
주말에 계획 없이 나선 산행에서 조우한 봄꽃들.
꽃비가 되어 날리는 벚꽃, 무리지은 개나리, 화전을 떠올리게 하는 진달래. 은은한 향으로 걸음을 잡아두는 매화, 그리고 이름 모를 들꽃들.
가만히 돌이켜 보면 나 역시 봄꽃인 적이 있었다.
두려움과 기대감으로 설레던 그 시절. 결혼을 하고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 누구의 며느리로 살면서, 그 작은 손에 여러 가닥 역할의 끈을 팽팽히 그러쥐고, 어느 것 하나도 놓칠 수 없다는 긴장감으로, 차차 나의 향기도, 나의 색도, 심지어 내가 꽃이었음도 잊고 살았다. 내가 하고 싶은 일보다는 그들이 필요로 하는 일들을 하면서, 희망은 서서히 사라지고 원망만이 늘어간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원망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정말이지 슬픈 일이다. 누구의 탓도 아니다. 나에게서 비롯된 일! 어쩌면 내가 나를 사랑하는 것을 잊은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주변의 시선이나 평가에서 자유롭지 못했고 착한 여자 콤플렉스로 전전긍긍했다. 하지만 이제야 내가 행복해지고 싶은 맘이 커져간다. 세상의 중심이 나에게로 옮아옴을 깨닫는다. 늦었지만 더 늦지 않음에 감사하며 버겁게 느끼던 줄을 하나둘씩 놓을 줄도 알게 되고, 느슨히 잡는 법도 배우고, 나를 위한 새로운 줄도 욕심내 본다. 어쩌면 내 인생의 절반쯤인 지금! 앞으로의 내 미래가 나로 인해 행복해졌으면 한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그렇다! 봄날은 간다.
하지만 그다지 슬프지 않다. 봄날이 가면 찬란한 여름이 오고, 무르익는 가을이 오고, 하얀 눈으로 세상을 조용히 덮어줄 겨울이 온다. 내 인생의 봄날은 가고, 봄꽃은 지겠지만 나만의 색과 향기, 노련함을 갖춘 그윽한 한 송이 꽃으로, 그 가을도 또 그 겨울도 찬란하게 만개할 것을 나는 오늘 간절히 희망한다.
김태형 님은 ‘천천히, 조금씩, 쉬지 않고, 앞으로… 이처럼 살아왔고 살아가고 싶은 나를 사랑하는 나! 너를 사랑하는 나!’를 외치는 언니입니다.
독립 잡지 "언니네 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