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더 괜찮은 어른의 시작 / 글·김태희, 그림· 이희진
육아 5년 차. 아이들은 늘 거울처럼 나를 비춰주고 있다.
나의 하자보수는 끝이 없다. 무수히 많은 시행착오와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의 지루함, 그리고 내려놓기, 기다리기, 믿어주기. 이 삼위일체를 연습하고 또 연습하는 지난 5년이었다. 욕심부렸다가 좌절하고, 재촉했다가 처음으로 돌아가고, 화냈다가 미안해했다가 내가 혹시 다중인격은 아닌지 의심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나를 다독여주고 일깨워주는 기억이 있다. 그 순간들이 없었다면 얼마나 방황하고 후회했을까. 그때의 추억은 나를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시키고 나를 엄마로 준비시켜준 내 인생에서 가장 고마운 순간이다. 그 변화의 시작을 함께 해준 태민이는 정말 잊을 수 없는 나의 첫 선생님이다.
유아교육학을 전공한 후, 장애 아동들이 공부하는 특수학교에 종일반 선생님으로 취업했다. 모두가 고개를 갸우뚱할 만큼 보수도 적고 모두 중증 장애 아동들이라 거동이 불편해 힘쓰는 일이 많았다. 원래 약한 허리였는데 그곳에서 아이들을 안고, 들고, 옮기느라 허리에는 늘 파스가 붙어 있었다. 하지만 온전히 아이들과 함께 하는 그 시간이 참 좋았다.
그러던 중 태민이라는 한 아이를 만나게 되었다. 내가 태민이를 처음 만난 날. 태민이는 다른 선생님께 훈육을 받고 있었다. “안 돼! 그러면 안 되는 거야.” 하고 잘못을 혼내는 선생님 손에서 태민이는 어떻게든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고 있었다. 밥도 안 먹고 오로지 우유만 먹고 소리 지르는 건 기본, 누워서 발버둥 치기, 물건 던지기, 친구 밀고 때리기가 특기인 아이였다. 말은 ‘아 ~~’ 만 할 줄 알고 늘 할머니 손을 잡고 비틀비틀 걸어서 오는 아이였다. 그 아이가 우리 종일반에 오게 되었다. 자신 없었지만 나랑 이름이 비슷한 그 아이가 싫지 않았다.
처음에 태민이는 나를 보면 할퀴고 때리고 소리를 질렀다. 아이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러다 아이가 노래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아이와 같은 공간에 있을 때마다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 아이는 내 근처에 와서 서성이다 가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태민이가 내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불렀다. 비록 아~ 뿐인 노래지만 우리는 매일 함께 노래를 불렀고 학교에서 유명한 공식 커플이 되었다. 아~ 밖에 못하던 아이가 빵!, 밥!, 이라는 말도 하게 되었고 우유만 먹던 아이가 내가 먹여주는 밥을 조금씩 먹기 시작했다. 때리기만 하던 아이가 달려와 안기기도 하고 뽀뽀도 해주었다. 내 사랑을 받아주는 아이에게 나는 더 많은 사랑을 주었고 아이는 내가 준 사랑보다 더 많은 사랑을 주었다. 태민이는 얼마 뒤 엄마라는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말을 배운 뒤로 나는 태민이의 엄마가 되었다. 우리는 매일 노래했고, 매일 산책했고, 어딜 가든 손을 꼭 잡고 다니고 어딜 가든 서로를 찾았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정규 수업 시간에 나와서 자꾸 나한테 오는 녀석 때문에 다른 선생님들께 조언을 들었다. 태민이를 평생 옆에 둘 수 없으니 어느 정도 거리를 두어야 한다고.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나는 태민이의 진짜 엄마가 아닌데 영원히 엄마로 남아줄 것처럼 행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태민이를 사랑하지만 거리를 두 는 연습이 필요했다. 태민이를 사랑하는 것보다 태민이에게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가르치는 게 더 힘들었다.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처럼 약한 아이라 뭐든 다 들어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 우리가 늘 함께 있을 수 없다는 것을 가르칠 때 태민이는 제일 힘들어했다. 불안해하며 더 안기고 더 파고들었다. 그런 아이를 떼어 놓을 때는 정말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그렇게 떨어지는 연습을 하면서 잠깐 떨어져 있어도 곧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믿음이 생긴 후로 태민이는 조금씩 더 성장했다. 태민이와 함께 보낸 2년 동안 나는 아이를 깊이 사랑하는 법도 배우고, 아이와 적당한 거리를 두는 법도 배웠다. 아이에게 다가가는 법도 배우고,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도 경험해 보았다.
누군가 나에게 꿈을 물어본 적이 있다. 내 꿈은 어릴 적부터 한결같았다. 자연 속에서 음악을 들으며 아이들과 함께 하는 것.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아이들 속에서 하자보수를 하며 조금 더 괜찮은 어른으로 살기 원하는 나의 꿈은 태민이를 시작으로 이렇게 이어져오고 있고 앞으로도 쭉 이어질 것이다.
독립잡지 "언니네 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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