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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쭈물하다 삽질할 줄 알았지

다시 인생을 리셋하다! /<언니네 마당> Vol.09 중, 글· 준강이

by 이십일프로
공자는 불혹(不惑)을 정의하기를
'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겨 갈팡질팡하거나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게 되었음'을 뜻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공자는 현대에 이르러 수많은 마흔 둥이들이 여전히 고군분투하며 세상일에 이리저리 휘둘려 수많은 삽질을 하고 흔들리며 또 흔들리는 것을 전혀 몰랐나 봅니다.


77년 생. 네! 딱 한국 나이로 전 마흔에 들어섰습니다. 12월생이라고 해도 저는 아직 30대라고 앙탈을 부려도 그저 마흔이었습니다. 저는 2015 년 12월 31일에 다시 인생을 리셋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마침 백수였고, 자식도 남편도 없었고, 덜렁 혼자만의 삶이 큰 숙제처럼 펼쳐져 있었습니다. 이대로 가다 어렸을 때부터 시시껄렁하게 생각했던 인생으로 누군가를 원망하는 삶으로 흘러갈 게 뻔했습니다. 내년엔 이러지 않겠노라, 다짐을 깊이 새겼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됬냐고요? 2016년 현재도 백수고, 남편도 자식도 없고 여전히 제 방 안에 혼자 앉아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사실 1년 만에 어떻게 드라마틱하게 인생이 변할까요? 그러나 전 정말 많이 변했거든요. 그간의 많은 일들 중 일부를 나열하자면 연기를 배웠고, 작곡을 했고, 철학을 공부하고, 예전부터 마음속 깊이 담아두었던 글을 쓰겠다는 오래 묵혀둔 소망도 실천했습니다. 그렇게 하는 가운데 일명 ‘여자들의 사춘기’라는 것은 계속 저를 괴롭혔습니다. 희망에 부풀어 의욕 있게 이것저것을 슈퍼맨처럼 처리하다가도 어느 때는 밥 수저 들기도 힘들 만큼 무기력에 시달리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만약’이라는 가정이었습니다. 매우 단순한 발상 일 수도 있지만, 내가 기혼이었다면 고학년의 사내아이를 키우고 있고 무미건조하게 결혼 생활을 하고 있다면 난 어땠을까?, 하는 상상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지금 이 시간을 불평하며 툴툴거릴까 하는….



일을 그만둔 시기에 거둔 가장 큰 수확은 저 자신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관성대로 살았던 틀에서 벗어나자 갈피를 못 찾아 한동안 힘들었지만 마음과 몸은 하고 싶었던 일, 가고 싶었던 장소, 만나고 싶은 사람들, 참여하고 싶은 모임, 그리고 배우고 싶었던 것들을 차근히 할 수 있었습니다. 과거의 저는 스스로 '무채색이자 단순한 사람', '매력 없는 수동적인 사람'이라 칭했지만, 지금은 온전한 나만의, 나만을 위해서 향유할 수 있는 취향을 조금씩 찾아가면서 순수한 열정 같은 것이 제 안에서 숨 쉬고 있는 걸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강제로라도 멈추지 않았다면 아마도 몰랐을 것들입니다.


다가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걱정을 미리 당겨서 했더니 불안이 젊은 날의 저를 갉아먹었습니다.


그 결과 아쉬움만 남은 대충 인생이 되었습니 다. 이제는 내 심장이 시키는 일만 하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랬더니 지금은 스트레스도 안 받고 잘 먹고 잘 살고 있습니다. 인생을 너무 몰아붙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나 생긴 꼴답게 살기로 했습니다. 딱히 행복하지도 않지만 과거처럼 불행이 내 등짝에만 딱 붙어있다는 피해 의식은 없어졌습니다. 인생은 늘 그렇게 삽질만 하다 끝날 것입니 다. 그래도 삽질을 해서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하자보수라면 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아직도 불안해하는 습관은 남아있지만 현재를 충실히 보내고 그 느낌에 충만해져 있는 저는 많이 넉넉해져 있습니다. 지금 제게 필요한 말은 페스티나 렌테(Festina Lente, 천천히 서둘러라, 급할수록 돌아가라)가 아닐까 싶습니다.





여성 매거진 <언니네 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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