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면 (여성 매거진 <언니네 마당> Vol.09 중 )
유학 시절 대학 동기는 “잘생긴 백인이 아니면 교수를 하지 말라”며 외모에도 하자가 있다는 주장을 했다. 어느 집회 참가자는 ‘대통령처럼 중요한 자리에 여자가 앉으니 이 모양이지’라며 여성을 하자 성별로 구분 지었다. 어떤 사람은 ‘시각 장애인이 왜 개를 데리고 길거리를 돌아다니느냐’며 개를 공격해 상해를 입혔다.
어불성설이다.
자신들은 하자가 없고 남들에게 하자가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하자를 밖에서 찾는 이들이야말로 ‘하자’ 그 자체가 아닐까.
나 역시 내 안에서 하자를 찾지 않고 밖에서 찾았다. 남과 다르지 않았다. 그러다 여러 계기를 경험하게 되었다. 그중 가장 극적이었던 것은 동물 가족 ‘금보리지2’와의 만남이다. 금보리지2는 나와 함께 사는 고양이 이름이다. 그 아이를 통해 내 안에 숨어 있는 하자에 대한 생각, 즉 인간중심주의를 알아차리게 되었다.
<언니네 마당> Vol.09 중
내 삶이 변했다. 제일 먼저 식탁이 변했다. 햄버거와 소시지 등 육류를 더 이상 먹지 않기로 했다. 치킨을 가끔 먹었는데 더 이상 치킨을 먹지 않기로 했다. 더 이상 그 음식들이 ‘음식’으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치킨은 닭으로, 햄버거는 소로, 소시지는 돼지로 보였다. 음식 너머에 있는 동물의 일생이 떠올랐다. 금보리지2와 축산 동물의 삶은 그 자체로 모두 고귀하다. 인간은 왜 이러한 축산 동물을 가혹하게 대하고 있는 것일까.
식탁에 이어 다른 변화도 찾아왔다. 의류에서 화장품으로, 화장품에서 여가 상품까지 종차별주의에 반대하는 생각은 소비 전반에 영향을 미쳤다. 인간중심주의가 당연하다는 생각이야말로 ‘하자’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동물원의 동물들이 불쌍하다고 느끼면서도 ‘인간을 위해서 닭고기는 계속 생산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개고기를 반대하면서도 ‘아픈 인간을 위해서 동물 실험은 어쩔 수 없다’며 동물 실험을 옹호했다. 과거의 나를 떠올리면 ‘도대체 왜 그랬을까’라는 생각에 자괴감이 들곤 한다.
금보리지2를 만난 지 이제 곧 7년이 된다. 나는 아직도 하자 투성이다. 생각도 모자란다. 하지만 그전처럼 ‘동물 실험은 괜찮지만 개고기는 반대’ 라거나 ‘닭고기는 괜찮지만 동물원은 반대’와 같은 이중 잣대는 버렸다. 앞에서 말한 사람들의 생각에 오류가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변화의 가능성은 있다.
변화는 내 안에 하자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 하자를 어떻게 고쳐갈 것인지 고민하는 지점에서 시작된다.
여성 매거진 <언니네 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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