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푸름 / <언니네 마당> Vol.09 "하자보수"
나는 지금까지 딱 두 번 부모님과 떨어져 장기간 생활한 적이 있다. 물리적인 거리만 따지자면 이미 대학 때 이후 20년 가까이 따로 살고 있다. 정확히 표현하면 부모의 직접적인 영향력에서 벗어난 상태가 두 번이라고 하는 게 맞을 듯하다.
엄마는 우리 세 자매가 어렸을 때부터 우리를 ‘쥐 잡듯’ 하는 존재였다. 엄마의 끊임없는 참견과 잔소리를 겪는 것은 나 혼자인 줄 알았다. 언젠가 외국으로 떠난 언니들의 이야기를 듣고는 언니들도 나 못지않게 엄마에게 시달려왔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큰언니는 엄마한테서 벗어나고 싶어서 남들보다 빨리 결혼을 했고, 작은언니 역시 마음속에 엄마에 대한 불만을 간직하고 있었다.
언니들이 자신들도 엄마를 힘겨워했다고 내게 말했을 때, 나는 난생처음으로 ‘엄마를 미워할 용기’를 갖게 되었다. 나는 엄마 말을 잘 안 듣는 아이였다. 대학에 가고 나서도 말 그대로 미친 듯이 놀았다. 당연한 결과로 성적은 바닥을 기었고, 졸업 후에는 거듭되는 취업난에 치이다 결국 집안의 애물단지가 되고 말았다.
고심 끝에 나는 엄마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외국 행을 택했다. 외국에서 살고 있던 친구가 마침 내게 함께 ‘과외방’을 운영해 보자고 제안했다. 엄마 아빠가 말리거나 말거나 나는 이민 가방을 끌고 비행기에 올랐다. 내게 자유를 줄거라 믿었던 친구는 엄마 이상으로 나를 통제하려 들었다. ‘네가 이곳 언어를 잘 모르고 이곳은 서울에 비해 위험한 곳‘이라는 것이 친구가 통제하는 명분이었다. 처음에는 친구가 나를 걱정해서 그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간섭이 더욱 심해지자 나는 차츰 피폐해지기 시작했다. 엄마를 피해 외국으로 나갔지만 그곳에서 엄마와 같은 캐릭터를 만나게 되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다시 한국에 돌아왔다.
한국에 돌아와 취업을 했다. 그리고 얼마 후 친하게 지내던 후배의 도움을 받아 좀 더 좋은 회사로 옮길 수 있었다. 후배는 회사에서 나에 대해 좋지 않은 소문만 들어도 내게 전화를 하거나 찾아와 끊임없이 사실 여부를 따지곤 했다. 자신이 소개했으니 참견할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3년 전 외국에서 겪었던 악몽이 되살아났다. 후배는 인터넷 카페에 내가 올린 글까지 전부다 찾아보고 따지는 등 스토커 수준으로 나를 간섭했다. 이러저러한 사유로 회사를 그만두기로 했을 때 그녀는 나에게 말했다. “내가 언니를 소개한 건데 이렇게 나가면 내 체면이 뭐가 돼?” 나는 그때 진심으로 남을 걱정하는 인간이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인간은 다만 상대방을 통제하고, 옭아맴으로써 자신의 우월감을 확인하려고 할 뿐이다.
내 책임도 없지 않다. 나는 회사생활 내내 외로웠기 때문에 그 후배에게 심적으로 의존했던 것 같다. 물리적으로는 엄마한테서 독립했을지 모르겠지만 정신적으로는 홀로 서지 못한 느낌이다. 내 곁에는 항상 엄마 노릇을 자처하는 누군가가 있다. 내가 진정으로 자유로워지기를 원한다면 고독까지도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 두 번의 시행착오를 겪고 난 뒤 ‘자유라는 달콤함을 얻으려면, 고독이라는 씁쓸함을 견뎌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아직도 고독하지만 고독에 치이지는 않으려고 노력한다.
여성 매거진 <언니네 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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