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매거진 <언니네 마당> 창간호 중 / 글·쿠크다스
온전히 사랑이었다.
이 남자와 결혼을 해야 하는 이유보다 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세상 사람들에겐 더 타당하게 들렸겠지만, 그때의 나에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남자와의 결혼이 최선이자 최상의 선택이었다. 그렇게까지 이 남자에게 끌렸던 이유는 무엇일까? 드라마의 주인공처럼 그 순간만큼은 인생의 주인공이고 싶었던 어린날의 치기였을까? 이유가 어찌 되었든 지금 다시 돌이켜보아도 그것이 사랑이었다는 것만큼은 명백하다. 나는 그에게 내 남은 평생을 맡길 수 있겠다는 확신이 있었다. 긴 연애 기간, 오래된 연인으로 지내면서 우리의 결혼 생활이 순탄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나는 지극히 현실적인 여자이다.
결혼에 골인하기까지의 여정은 드라마틱하였으나 나에게는 결혼에 대한 환상이 애당초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결혼하면 변한다더니 이 남자 단숨에 변해버렸다. 물론 그가 느끼기에는 내가 변했을 것이다. 아시다시피 결혼은 '생활'이지 않은가. 이 변화들을 예상 못한 바는 아니다. 일찍이 존 그레이님께서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를 통해 지구 남녀 외계인설을 설파하시며, 남자와 여자가 어떠한 환경에서 살아왔는지, 그리고 남자와 여자의 사고방식이 어떻게 다른지, 남자와 여자의 의사소통의 차이점에 대해 과학적 근거와 실제 사례 및 해결법을 조목조목 알려주시지 않았던가. 나는 지성과 교양을 갖춘 여자로서, 그 남자가 동굴로 들어가면 나올 때까지 기다려주었고, 나와는 다른 별에서 온 이 남자와의 교감을 위해 애썼다. 그러나 왜 그와 소통되지 않는가?!
서당개도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데!!!
화성에서 지구로 온 지가 몇 해인데 매번 반복되는 이 상황과, 내가 그에게 맞춰주어야 평화가 유지되는 이 불편한 관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도대체가 화성에서 온 자들은 다 이 모양일까? 당최 말을 듣지도 않고, 말이 되지도 않고... 이제 그의 마음이 아니라 내 마음도 뭐가 뭔지 모르겠다. 우리 부부의 심리적 거리는 화성과 금성만큼이나 멀어져 갔다. 다른 화성 남자와 금성 여자도 우리 같을까? 어쩌면 그는 화성이 아니라 깐따삐야에서 온 도우너 절친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화성인과의 대화법을 적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서로 엇나갈 수 있단 말인가! 사랑이 끝난 것일까? 아니다. 매번 격한 싸움이 반복되는 생활의 전장에서도 나는 한 번도 그와 헤어지고 싶지는 않았다. 그저 이 남자는 도대체 왜 나와 이렇게 다른가, 왜 우리는 서로 닮아가지 못하는가, 이 평행선은 영원히 만나지 못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 그리고 그에 대한 가장 나쁜 답으로 그가 나를 향기로운 연인의 자리에서 끌어내려 같이 살며 볼 꼴, 못 볼 꼴 다 본 사이로 강등시켜 (이렇게까지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지만...) ‘나를 무시하고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반복되는 이 싸움과, 그로 인한 자괴감이 쌓일 대로 쌓인 어느 날 지인에게서 화성인도 다 같은 화성인이 아니고, 금성인도 다 같은 금성인이 아니라는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말을 듣게 되었다. 지인은 우리 부부에게 듣기에도 생소한 MBTI 검사를 제안하였다. 처음 이 검사에 대한 나의 반응은 “이건 뭔가요?” “MB..?? 맨 인 블랙의 약자인가요? 헉! 역시.... 외계인...”이었다. 여러분의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을 듯하니 MBTI에 대해 간단하게 알아보도록 하자.
검사 결과 16가지 성격 유형 중 나는 ESTJ 유형이었고 남편은 ISFJ 유형이었다. 서로를 나타내는 알파벳 4개 중 ‘S(감각형)’와 ‘J(판단형)’가 겹친다. 다르게 해석하면 나머지 두 개의 성향은 전혀 다르다. 그렇다. 우리는 서로 다른 별에서 온 외계인들이 아니라 다른 듯 닮은, 닮은 듯 전혀 다른 지구인이었던 것이다. ‘화성인’ 또는 ‘금성인’으로 뭉뚱그리지 않고, ‘남자’와 ‘여자’로 일반화시키지 않고, ‘한 사람’으로서 나 자신을, 그리고 나와 함께 살고 있는 그를 인정하고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우리 부부의 다툼은 예전보다 많이 줄어들었고, 다툼으로 인해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일도 줄어들게 되었다. MBTI 검사를 통한 서로에 대한 이해가, 나에게는 이 남자와 함께 지구인으로서의 행복한 삶을 다시 꿈꿀 수 있는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 아직 완벽히 그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들 어떠한가! 내가 나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순간들도 수두룩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별에서 사랑하며 살아가고 있다.
독립 매거진 <언니네 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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