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남금 (독립잡지 언니네 마당 Vol.09 "하자보수" 中)
자신의 ‘하자’가 무엇인지 막상 깨달아도 보수는 혼자 할 수 없어서 갈팡질팡하는 경우가 많다. 극단적이 되면 후회와 한탄으로 나아가 “이번 생은 망했어”라는 자조로 이어질 수 있다. 다른 사람들한테 말하기도 그렇고. 그럴 때 영화나 책은 좋은 보수 안내자이면서 친구가 될 수 있다.
일상이 지겨워서 몸서리날 때 일상을 사랑하는 법
열이면 아홉은 여행을 좋아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여행이란 설레기만 한 게 아니라 피로감도 상당하다. 출발 전에 교통, 숙박, 맛집, 볼거리 등등 사전 준비를 하다 보면 휴가를 가려고 하는 건지 노동을 하려고 하는 건 지 헷갈릴 때가 종종 있다. 근사한 "휴가"란 말이 주는 무의식적 압박감에 간지 나는 휴가에 대한 고정관념이 있진 않은지. 떠나기 위해 떠나는 휴가는 아닌지. 실은 휴가 때 아무것도 안 하고 방콕해서 뒹굴 거리고 싶은 욕구들이 조금씩은 있다.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은 여행이란 개념을 새롭게 정의한다. 여행지의 매력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목적지는 문제가 아니라 진짜 욕망은 떠나는 것이었다. 어디로라도! 어디로라도!” - p.52
"우리가 여행으로부터 얻는 즐거움은 여행의 목적지보다는 여행하는 심리에 더 좌우될 수 있고 여행의 심리를 우리 자신이 사는 곳에 적용할 수 있다면, 이국적 여행지만큼 흥미로운 곳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여행하는 심리적 특성을 ‘수용성’으로 본다. “수용적 태도를 취하면, 우리는 겸손한 마음으로 새로운 장소에 다가가게 된다. 어떤 것이 재미있고 어떤 것이 재미없다는 고정관념은 버리게 된다.” - p.334
우리가 살고 있는 곳, 집, 방에 대해 습관이 지배해서 하자투성이로 보이고 그 매력에 눈을 감고 있지는 않은지? 진정한 여행은 익숙한 방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다고 꼬드기는 책.
기대고 싶은 사람이 없어서 우울할 때 차라리 아무도 없는 게 낫지
살아가면서 만나게 되는 크고 작은 어려움을 헤쳐 나가는데 혼자인 것만 같아 분노 지수가 급상승한다면? 혹은 기대고 싶은 누군가를 찾는데 아무도 없어서 우울하다면 <블루 재스민>을 보면 혼자라서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들지 않을까.
<블루 재스민>은 중년 여인 재스민이 하자를 바라보는 이야기이다. 재스민은 뉴욕에서 상위 1%의 삶을 살다가 남편의 외도로 이혼을 하고 무일푼이 되어 동생집으로 오면서 악전고투가 시작된다. 그동안 소비자로서만 살았던 재스민은 갑자기 생계를 위해 일해야 하고 모든 환경의 변화가 낯설기만 하다.
급격한 환경 변화 속에서 재스민의 희망은 전처럼 재력 있는 남편을 만나는 것. 재스민은 자립적 존재가 아니라 결혼을 통해 배우자에 기대어 현실에서 도망가려는 노력을 한다. 재력가인 전남편과의 결혼이 가져다준 물질적 풍요를 그리워하면서 다른 이한테 안락함을 찾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하지만 재스민의 운이 다한 걸까?
자신을 신데렐라로 만들어줄 남자를 찾는 게 쉽지 않다. 재스민은 여전히 아름답지만 의존적 기질 탓에 정신은 점점 피폐해져 간다. 무조건적 사랑을 향해 몸과 마음을 내던지며 가난하게 사는 동생에게 경멸적 시선을 보내기도 하는데, 사랑을 마주할 때 조건보다는 사람을 보고 주체적으로 사랑하는 이한테 손가락질을 할 수 있을까?
차가운 심장을 녹이는 법, 아무래도 조금은 특별한 사랑
한국 사회에서는 친구 혹은 연인의 개념은 유유상종에서 벗어나질 못하는 경향이 있다. 나이 든 사람과 어린 사람이 친구가 될 수 있고 전혀 다른 상황에 있는 사람도 친구라고 말할 수 있는 사회가 가끔 부럽기도 하다. <러스트 앤 본>은 사고로 한쪽 다리를 잃은 여자와 동물적 감각에 충실하지만 성실하고 우직한 한 남자의 사랑 이야기다.
남자는 여자가 다리가 있든 없든 무슨 상관이냐는 식으로 받아들인다. 여자가 한쪽 다리가 없어서 해변에서 걸을 수 없다면 남자가 여자를 업어서 걸으면 된다. 여자는 자신의 신체적 장애에 갇혀 우울의 바닥을 긁다가 남자가 자신을 평범하게 대하는 데 놀라고, 끌린다. 남자는 감정 표현이 섬세하지 못하고 사랑이란 감정도 잘 모르는 사람이다. 두 사람은 일차원적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섹스를 하면서 전혀 다른 삶을 사는 서로를 친구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남자는 사랑이란 감정이 축복이라는 걸 잘 모르는 사람이었고, 남자와 여자는 결국 헤어진다. 그 후, 남자는 아들이 빙판 위에서 놀다가 빠져서 아들을 잃게 된다. 아들을 잃은 남자는 가슴이 찢어지는 게 어떤 느낌인지 비로소 알게 된다. 사랑하는 법을 모르는 남자가 아들을 잃고 비로소 사랑하는 법을 깨닫는 조금 잔인한 이야기다. 심장이 차가워진 사람이라면 영화를 보면서 소중한 걸 잃어버린 상상을 하면 어떨까.
작심삼일 계획에 자괴감이 든다면 빈둥거리는 것도 괜찮아
우리는 언제부터 열심히 일을 해야 가치 있는 인간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나? 빈둥거리는 걸 죄악시하는 사회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매년 연말이면 다이어리가 등장한다. 새해를 설계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이끌려 수첩 구매는 필수 행위가 되었다. 설령 빈 수첩으로 한 해를 보낸다 할 지라도. 프랭클린 다이어리는 하루를 시간 단위로 적을 수 있게 되어 있다. 우리는 왜 시간을 금이라고 여기게 되었나? 시간을 허비하는 건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가치 있는 자본을 낭비하고 있다는 생각에 빈둥거리면 잉여 인간이란 생각에 괴로워해 본 적은 없나?
그 기원이 이 책에 담겨 있다. 막스 베버의 원전을 쉽게 풀어써서 읽기도 쉽다. 읽고 나면 그동안 노동의 가치에 교묘하게 길들여져 있다는 걸 발견하고 빈둥거리고 싶어 질 것이 다. 새해인데 빈둥거리다니. 적게 일하고 적게 벌고 적게 소비하는 게 자본주의에 저항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자본주의는 노동자의 노동을 부추기고 돈을 벌어서 그걸 소비하게 하고 또 과도한 노동으로 내몬다. 결국 노동자는 자본가의 쳇바퀴에서 자신을 착취당하고 만다. 자본주의 정신을 바로 알고 저항하는 하자보수 시간을 가질 수 있게 해주는 안내서.
독립잡지언니네마당
언니네 마당 9호 "하자보수"
http://book.daum.net/detail/book.do?bookid=KOR9791196033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