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낸 사람: 그리고 봄 / 받는 사람: 그리고 봄
안녕하세요...
우리…… 참 오래 알고 지낸 사이인데 이렇게 생각지도 못한 연락을 주셔서 처음엔 당황했어요. 어쨌거나 제 안부를 걱정해주신 데 대해서는 감사합니다. 지난날 저에게 보냈던 것들... 그 시절에는 다 그러잖아요. 그 무렵에는 다들 교과서 한 귀퉁이, 일기장, 좋아하는 스타의 팬레터에 스스로도 정리할 수 없는 엉킨 마음의 일부를 풀어내곤 하는 거죠. 웃기도 잘 웃고, 울기도 잘 울던 그 시절을 부끄러워 마세요. 무엇보다 당신이 제 표정 하나에 이렇게나 마음을 쓰시다니, 다른 사람을 살피고 돌보느라 정작 제 자신을 살피지 못한 스스로를 다시 돌아보게 되었네요. 제 자신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답니다.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날씨로 치면 구름 한 점 없는 청명한 날입니다. 그런데 그거 아세요? 너무 맑은 날은 우울해진다는 거.^^ 제게서 본 표정이 그리움, 슬픔 같다고 하셨는데 어떤 것인지 알 것 같아요. 흔히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반복적인 일상을 지루해하잖아요. 그런데 아마 한 번이라도 그 ‘일상’이 무너져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그저 그런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 거예요. 느슨해 보이기만 한 똑같은 일상이 사실은 얼마나 견고하게 짜여 있고, 얼마나 쉽게 부서지며,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물처럼 다시 담기가 얼마나 힘든 것인지 안다면요. 그래서 행복한 순간, 너무나 기쁜 순간 저는 주책 맞게도 ‘이런 순간이 다시 내게 올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바로 그 순간부터 1초 전의 행복을 그리워하기 시작하는 미련함이라니.
참 이상하죠? 제가 계획한 대로, 제가 노력한 만큼 이룰 수 있다고 자신만만해하던 시절이 있었어요. 그런데 인생이라는 것이 어디 그런가요? 제게도 내게 왜 이런 일이 있어났는지 누구에게로 향하는지도 모를 혼자만의 물음과 침묵뿐인 대답으로 보낸 시간들이 있었어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TV를 보며 웃고, 때가 되면 밥을 먹고 잠을 자고... ‘괜찮다. 지나간다. 괜찮다. 아무 일도 아니다. 괜찮다. 괜찮다.’ .....
그렇게 저는 거기 있었지만 또 거기 없는 채로 살았었답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곁에서 누군가는 자고, 먹고, 일터로 나가고 돌아오는 일을 쉼 없이 하고, 또 누군가는 자고, 먹고, 밥을 짓고 빨래를 하고 아이를 돌보는 일을 쉼 없이 하더군요. ‘진짜’는 없이 ‘습관’만 남아 움직이고 있는 저의 ‘일상’이 무너지지 않도록 버티고 있었던 그들 덕분에 저는 다시 일상 속으로 돌아올 수 있었어요. 그리고 그때부터 스쳐 지나가는 모든 순간들이 제게는 어쩌면 다시 오지 않을 수도 있는 것, 내일이 꼭 오늘 같으리란 법칙 따위는 없으며 세상 모든 크고 작은 불행이 나는 피해 가는 행운 같은 건 없다는 것을 아는 사람의 “그리운 순간”입니다. 행복한 하루도, 그저 그런 하루도, 지금 이 순간마저도.
제가 잘 보이지도, 닿지도 않아 걱정이라고 하셨는데... 사람이 원래 그런 거 아닌가요? 어느 누가 자신을 다 드러내고 사나요? 마음의 막, 마음의 벽이 없다면 자신과 타인이 구분이 되지 않는 거잖아요? 저는 여러 사람들과 자주 어울리는 게 힘들어요. 대부분의 만남들이 우리가 배웠던 중1 영어 교과서의 “Hi! How are you?”, “I’m fine. Thank you. And you?”처럼 틀에 박힌 의미 없는 말과 행동들을 요구하거든요. 물론 이 단계가 지나서 서로를 알고 깊어지는 관계로 발전하지만, 굳이 여러 모임을 쫓아다니며 여러 사람을 만나지 않아도 끌리는 사람은 끌리는 모임이나 장소에서 금방 알아볼 수 있으니까요.
사람의 마음에는 크든 작든 자신을 비춰볼 수 있는 거울 같은 것이 있는 것 같아요. 거울처럼 선명하고 명확하게 보이지는 않으니 물이 담긴 그릇 정도로 해둘까요? 옛날 어머니들이 장독대에 올려두었던 정화수 그릇이나, 숲 속의 옹달샘, 마을 사람들이 모이던 우물... 윤동주의 ‘자화상’이라는 시나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마지막 장면에도 심연, 깊은 마음의 물 위에 자신을 비추어 보는 장면이 나오거든요. 가끔 자신을 비춰 보세요. 어디에 어떻게 비춰 볼지는 자신이 찾아야겠죠?
이 정도로 어떻게 답이 되었는지 모르겠네요.
마지막으로.....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가끔 외롭고, 가끔 그립지만.... 지금 행복합니다.
“저는 괜찮습니다.”
그리고 봄 언니는 굽은 허리와 짝짝이 어깨를 가진, 찬바람 부는 가을부터 시작되는 수족냉증으로 겨울을 죽어라 싫어하여 언제나 봄을 기다리는 봄 바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