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의 색깔
《가재가 노래하는 곳》_델리아 오언스(살림출판, 2022)
야생과 문명이 만나는 곳, 그곳에 카야가 있다. 대서양 연안의 습지에서 카야는 혼자 자라난다. 가족들이 있었지만 아빠의 폭력을 피해 먼저 엄마가, 이어서 언니들과 오빠들이 차례로 도망친다. 그나마 간간이 집에 머물던 아빠마저 사라진 후 7살 카야는 습지에서 홍합을 따고 물고기를 잡으며 그곳의 야생 조류들과 벗이 되어 혼자서 살아가는 법을 익히며 성장한다. 조금 떨어져 있는 문명 생활지인 마을의 두 젊은 남자 테이트와 체이스를 만나면서 카야의 인생에 문명의 색이 들기 시작한다. 따듯한 색과 차가운 색이. 어느 색이 더 진할까? 야생과 문명의 조우, 청춘 로맨스, 살인 미스터리, 법정 추리까지, 흥미진진한 요소들이 넘쳐나서 페이지 넘기기를 멈추기 힘들다.
카야가 만난 두 남자, 테이트와 체이스는 카야에게 심장 가득 차오르는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도, 욕망의 감정을 갖게도, 좌절과 깊은 슬픔을 주기도 한다. 테이트가 자신의 꿈을 위해 카야를 떠난 후, 그녀는 체이스를 만나서 새로운 사랑을 기대하지만 그가 주는 것은 욕망, 폭력일 뿐이다. 체이스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끔찍한 폭행을 가하는 인간, 미약하나마 반격했다가 오히려 최후의 일격을 언제 당할까 두려움에 떨게 하는 인간이다. 일부 사람들은, 예전과 달리 지금은, 야생과 달리 문명 세계에서는, 법이 지켜준다고 말한다. 아니라는 걸 우리들은 거의 매일 언론을 통해 확인한다. 오늘도 전 세계에서 생판 모르는 남자에게, 심지어 연인에게 교제 폭력이라는 이름을 달고서 많은 여자들이 살해당하고 폭행당하고 스토킹 당하고 있다. 그렇다면 작가가 전해 주는 결말은 어떨까? 독자들은 동의할까?
델리아 오언스는 생태학자이다. 같은 대학원 학생으로 만난 남편과 신혼 시절에 야생동물들을 관찰하기 위해 아프리카 보츠와나 공화국의 야생 오지로 들어가 7년간 생활했다. 부부는 이 시절의 회고록 <칼라하리의 절규> <코끼리의 눈> <사바나의 비밀>을 공동 집필했고, 출간 즉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델리아는 일흔 살이 되어서 첫 소설 <가재가 노래하는 곳>을 발표했는데,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2019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이 되었다. 이 책에서 델리아는 자신이 직접 경험한 야생 환경을 생태학적 지식을 곁들여 아름답고 생생한 문장으로 묘사해서 독자는 그 장면을 머릿속으로 그려볼 수도 있고, 야생을 살기 척박한 곳이 아니라 아름답고 친근하게까지 여기게 된다. 그리하여 그곳에서 혼자 살아가는 카야에게 지지와 응원을 보내게 되고 카야를 도와주는 선한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안도와 기쁨을 느끼기도 한다.
일부 의아한 대목이 있다. 체이스는 카야에게 선물받은 조개 목걸이를 죽을 때까지 하고 있었다. 다른 여자와약혼하고 결혼한 후에도. 왜일까? 사건의 단서를 제공한다는 점 말고는 그 심리적 타당성이 설득되지 않아서 아쉬움이 남는다.
작가는 이 책이 ‘외로움’에 관한 이야기라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카야는 야생에서 외로움과 잘 지냈지만 문명의 감방에서 고독을 느끼며 절망한다. 그러다가 감방에서 풀려나 집으로 돌아가며 “난 사람들한테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어. 이제 드디어 나를 좀 내버려둘지도 몰라.”(433쪽)라고 생각한다. 야생의 외로움을 바라는 듯하지만 결국 테이트와 다시 만난다. 그러니 작가가 말하는 것은 우리 인간은 문명의 짙은 어둠을 이겨내고 함께 살아야 한다는 뜻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