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히 알면서도 새로운 삶의 모습

《프레너미》_심아진(강, 2024)

by 우주인

아내 윤서가 ‘헤어지자’라는 네 글자만 적힌 메모를 남기고 떠나버리자, ‘나’는 그 이유를 찾아 헤맨다. 이렇게 시작되는 심아진의 장편소설인 《프레너미》는 독특하고 잘 읽힌다. 상투적인 소재지만 그 전개가 예사롭지 않다. 매 문장에 담겨있는 사유와 비유와 통찰이 남다르다.

두 남녀가 이혼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담고 있는데 뻔한 이혼기는 아니다. 왜, 언제, 어디서, 어떻게 그들의 영혼이 부딪고 불타오르고 사그라지는지,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독자는 때로는 신선함을, 때로는 절절한 공감을, 또 때로는 아련한 추억에 젖기도 하다가, 종국에는 뒤통수를 맞는다. 그리하여 익히 알고 있었던 어떤 ‘ 앎’이 새로운 깨달음으로 다가온다. ‘사랑과 결혼’에 대하여 우리는 너무나 많은 ‘앎’을 갖고 있다. 인류의 역사 동안 거의 같이 있었을 저 둘에 대하여 우리는 많이 들었고 많이 읽었고 많이 보았고 또 이리저리 겪어왔다. 그래서 새로울 게 없는데, 작가 심아진은 거기에 새로움을 만들어냈다. ‘프레너미 frienemy’는 friend와 enemy가 합쳐진 말이다. 그러니까 친구와 적이 섞여 있다는, 그 둘이 별개가 아니라는 말이다. “나쁘게 해석하면 친구인 줄 알았는데 적이라는 뜻이고, 좋게 해석하면 적인 줄 알았는데 친구라는 뜻”(286쪽)이다. 사랑과 결혼에 대한 그런 식의 해석은 새로울 게 없겠지만, 이 소설의 흡입력 있는 전개, 조금은 낯선 지식과 정보들, 우리 곁에 붙어 다니는 또 다른 우리 자신에 대한 묘사 등, 작가의 남다른 해석으로 독자는 새로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아쉬움도 남는다. 우리의 상상은 원하는 대로가 더 많겠지만, 현실에서는 원하는 것과 다르게, 어쩌면 그게 진짜로 원하는 것일지도 모를, 삶들을 꾸려가고 있다.

“끝내 솔직하지 않았더라면,... 어떤 외부로 시선을 돌렸더라면,... 각자의 취미에 빠져 시간을 교란시켰다면... 아이 가질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다행히 윤서도 나도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무책임하지는 않았다.”(219쪽) 작가는 사랑이 식어버린 현실을 인정하고 그에 맞게 정리하는 것이 솔직하고 다행이라고 하지만, 여기 나오는 ‘만약’이 오히려 삶의 지혜일 수 있다. 모든 게 끝까지 같을 수는 없다. 순간의 감정에 매번 솔직할 필요도 없다. 때로는 벗어나는 지혜가 필요하다. 또 분명 아이가 생기는 건, 단순히 도피가 아니라 새로운 삶의 길이 될 수 있고, 방향 전환이 될 수도 있다. 책임감만 확실하다면.

“신이, 선택한 인간을 기만하기 위해 소개한 그 세계에는 잘 어울려 노는 아이들이 있었다. 바로 사랑과 결혼이었다. 사랑과 결혼이 아이들인 까닭은 그들이 아직 반역자를 모르는 철부지이기 때문이었다.... 반역자의 이름은 ‘시간’이었다.... 반역자의 농간으로 수많은 결혼과 사랑이 원수처럼 으르렁거렸다.”(278쪽) 젊었을 때야, 늙어가는 것도, 사랑이 변하는 것도, 실감이 안 날 수 있겠지만, 나이 들면서 그게 삶의 진리라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 시간은 반역자가 아니라 안내자가 아닐까. 그 안내에 따라가면서 다만 타인뿐만 아니라 자신도 배려하고 책임지려는 마음으로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많은 문장에 비유가 들어가 있는데, 작가의 관찰력에 감탄하기도 하고 적절한 비유로 몰입을 돕기도 하지만, 과하다 싶다. 어휘도 그렇다. 작가가 새로이 만들어 쓰는 단어들이 상당히 많은데,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 생경스럽고 굳이 필요한가,라는 생각이 든다. 작가 마음대로 쓸 수 있겠으나 독자 마음대로 읽히지는 않고 걸리적거리는 느낌이 들어서 몰입을 방해하기도 한다.

이 소설을 읽다 보면 아일랜드 더블린에 가보고 싶어진다. 그곳의 독립투사이자 순애보의 주인공인 파넬의 동상도 보고 싶다. 또 <사랑에 빠지는 아주 특별한 법칙>도 보고 싶어진다. 이 소설에서 자주 언급되는 영화인데, 아일랜드를 배경으로 줄리안 무어가 여주인공으로 나온다.

독자마다 호불호가 갈릴 것 같다. 일부 독자는 많이 공감하며 신선하게 읽을 수 있겠고, 삶을 이리저리 겪고 중년에 접어들었다면 좀 뻔하다 싶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분명 재미있게, 여러 부분 빠져들며 읽고 나서는 자신의 삶도 돌아보게 될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