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눈을 뜨는 법
《눈 감지 마라》-이기호, 마음산책 출판
우리는 눈을 뜨고 있어야 한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현실뿐만이 아니라, 내 눈에 보이지 않는 우리 사회의 춥고 어두운 그늘의 삶도 생각하고 배려하기 위해서이다. 인간은 홀로 살 수도 없고,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것도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괜히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이 있는 게 아니다. 내 주변이 따뜻하고 밝아야 나의 환경도 그리 될 수 있다.
《눈 감지 마라》는 이기호의 짧은 소설들이 연작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짧지만 그 속에 웃음과 눈물이 같이 담겨서 독자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한다. 작가의 특기이다. 《웬만해서 아무렇지 않다》 등 그의 다른 작품들에서도 독자들을 웃기고 울린다.
이 책은 정용과 진만의 이야기이다. 총 49편의 짧은 이야기들 속에 두 젊은이의 삶이 펼쳐진다. 첫 편부터 웃음이 터진다. <어둠 뒤를 조심하라>에서 두 젊은이는 외롭고 쓸쓸하다. 개라도 나왔으면 하던 터에 비슷한 게 지나갔다. 우쭈쭈 하면서 불러냈더니 멧돼지 가족이 나왔다. 들고 있던 촛불로 집회를 하든 잔치를 하든, 멧돼지를 위협하든 중요한 것은 중도에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다.
<이사> 편도 웃긴다.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며, 낡은 이삿짐을 이리저리 둘러메고, 정류장 의자에 앉아 삶은 계란을 까먹는데, 근처에 계시던 할머니가 다가오신다. 나도 계란 좀 줘···라고 하겠지 했는데. 푸하하 웃음이 터진다. 이런 반전이라니. 짠한 두 젊은이의 생활 속 한 장면에 웃음을 부여하는 작가의 유머가 즐겁다.
<옆방 남자 최철곤>에서 옆방 남자는 딸과 통화하면서 아재개그를 한다. ‘물리치료가 왜 물리치료인지 알아? 병을 물리치려구.’ 같은. 정용은 말리고 싶은 심정이라지만 진만은 큭큭큭 웃는다. 이 옆방 남자와 진만은 비슷하다. 순진해서 남한테 속기도 잘하지만, 성격 좋고, 남을 위한다고 나름 웃긴 말도 하려 노력한다. 열심히 웃음을 찾고 만드는 것이 일면 작가 자신의 모습 같기도 하다.
<생일 편지>에서 진만은 생일날, 방 친구가 편의점에서 사다 준 미역국에 대해 말한다. “편의점에서 파는 건....... 뭐든 나쁘진 않은 거....... 최소한 나쁘진 않은 거. 그러면 된 거지, 뭐.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이사> 편에서 정용이는 생각한다. “그래도 가야지, 뭐. 다른 방법은 없었다.” 할 수 없지 뭐. 하는 수밖에. 짠한 젊은이들이 고달픈 인생을 버티는 최후의 담론이라고나 할까. 결혼도 인생도 맛도 관계도 나쁘지만 않으면 된다는 진만은 고단한 삶을 살고 있는 요즘 젊은이들의 대변인 같다.
<분노 사회>에서는 더 몸이 피곤하고, 그래서 더 울컥울컥 화를 내게 만드는 가난에 대해 얘기한다. <롱패딩 장착기>에서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여름은 고통이지만 겨울은 그냥 공포다. 더워서 잠 못 이루는 것과 추위에 덜덜 떠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일이니까.”라고 한다. 작품 곳곳에서 보이는 가난에 대한 상념들은 한편 분노를 일으키기도 하고 별 힘이 없는 일반 국민인 나에게 무력감을 주기도 한다.
<어떤 졸업식>에는 밤 10시 15분에 편의점에서 혼자 컵밥을 먹는 초등 6학년 아이가 나온다. 졸업식에 부모가 못 가서 편의점 아르바이트하는 사람에게 같이 가 달라고 부탁하는 아이다. 정용은 뭔가 이웃을 돕는다는 뿌듯함과, 졸업식이 끝나면 짜장면 정도는 먹여줘야지 라는 자부심을 느낀다. 그런데 아이는 식이 끝난 후 정용에게 10만 원이 들어 있는 봉투를 내민다. 아빠가 병원에 출근하고 엄마도 서울 병원에서 일하느라 못 와서, 대신 봉투에 조금만 넣었다는 말과 함께. 부유함은 연민의 마음을 갖고 있던 가난을 서글프게 한다. 짜장면이라도 먹여 ‘줘야지’ 하며 느끼던 작은 자부심마저도 앗아간다. 나는 누구를 안쓰러워해야 하는가.
<목걸이>는 웃음과 슬픔을 동시에 준다. 카드 결제 금액이 40만 원인데 통장에는 채 15만 원도 안 남아 있다. 리볼빙을 또 해야 한다. 그런데 길에서 주운 목걸이는 미아 방지용 금목걸이 같다. 거기에 적혀있는 전화번호로 몇 번 전화를 해도 받지 않는다. 그래서 큰맘 먹고 금은방에 갔는데.... 작가 이기호의 유머는 늘 즐겁고 반전에는 웃음이 터지지만 동시에 슬프기도 하다. 이 땅의 착한 젊은이들이 어딘가에서는 이렇게 살고 있겠지. 그들이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동안 국가는, 또 나 같은 기성세대들은 뭐 하고 있는 걸까. 그저 그들 자신의 일이라며, 그들의 무능력, 무운 탓으로 돌려버려햐 하는 걸까.
이기호의 작품들은 아주 짧은 소설들이다. 5쪽, 길어야 7쪽이다. 요즘 우리는 휙휙 넘아가는 손 안의 화면에 너무나 익숙해서 긴 호흡으로 뭔가 읽기를 힘들어한다. 그러니 그의 작품들은 안성맞춤이다. 금방 읽을 수 있으니 부담 없이 펼치고, 그러다 웃고 울며 감동받는 것은 덤으로 따라온다. 그렇지만 이 시대 가난한 청춘들의 삶을 살피기에 마음까지 가벼운 것은 아니다. 우리는 마음의 눈을 뜨고 작가가 보여주는 시대의 아픈 삶을 지켜보아야 한다. 관심을 갖고 마음에 새겨야 한다.